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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15: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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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금주법 이전에는 보통 마시는 술은 "청주"였고, 싸게 마시는 술은 막걸리였습니다. 용수라는 필터로 잘 거른 맑은 술이 청주니까 그거에 대비해서 대충 막 거른 술이 막걸리가 되는 거지요. 소주는 자주 접할 수 있는 술은 아니었을 거에요. 그래서 60년대 영화 보면 양조장에서 거른 술을 주전자에 담아와서 "약주"라고 부르는데 이게 동네마다 마시던 청주고 한국에서 제일 흔한 술이었죠. 당시에는 청주든 막걸리든 소주든 술은 당연히 쌀로 만드는 거였습니다.
박정희가 쌀로 술을 못 만들게 하니까 고구마로 만들어야되는데 고구마로는 청주를 못 만들어요. 그래서 발효된 고구마에서 수분과 향을 다 날리고 알콜만 정제한 뒤에 거기에 다시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널리 퍼졌어요. 이게 60-70년대입니다. 실제 70년대 이전에는 소주 점유율이 높지 않아요. 60년-70대 과도기에는 노인들은 청주를 선호하고 20-30대 젊은이들이 소주를 마셨어요. 싸니까 그랬겠죠.
청주가 보통 16도 정도 되고 소주는 증류한거라 40도 정도 되죠. 하지만 소주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술이 되다 보니까 모든 사람이 독주만 마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소주 도수가 35도, 30도로 내려왔다가 21도에서 한동안 머물렀다가 점점 더 내려와서 이제 17도가 됐어요. 청주 도수랑 비슷해졌죠. 옛날에는 16도 청주를 마셨고 지금은 17도 소주를 마셔요. 달라진 점은 맛과 향이죠. 지난 50년이 흐르는 동안 꽃향이 나는 달달한 술이었던 청주가 없어진 자리를 소독약 냄새 나는 소주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소주는 타피오카로 만든 주정을 95프로로 정제한 뒤에 합성 감미료를 타서 먹죠. 지역마다 맛과 향이 개성이 있던 청주가 씨가 다 말랐으니 소주에 아스파탐과 아세설팜칼륨을 어느 비율로 넣느냐 가지고 브랜드가 달라지는 거에요. 맛과 향이 없는 술이니까 취하는거 말고는 술 마시면서 찾는 재미도 없고 이게 과음 문화의 한가지 원인이라고 봅니다.
추가로 여기서 말하는 "청주"는 주세법상 청주와 달라요. 전통적으로는 청주와 약주가 같은 말이고, 쌀로 만들어서 거르는 술이었는데 지금 우리나라 법에서는 일본의 사케와 비슷한 특징이 있는 술만 청주라고 부르고 일반 청주는 약주로 부르도록 돼 있습니다. 청주를 청주라고 못 부르는 개족보가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