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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3 11: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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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되도, 지금처럼 나 사랑해 줄 수 있어?"
오후 5시, 막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 시간.
덜컹거리며 한강철교위를 지나는 지하철 안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한강을 바라보며 있던 바로 그때, 텅빈 7호칸에서 고요한 적막을 깬건 그녀의 이 한마디였다.
"지금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서 말이야. 한 50년 뒤쯤? 그땐 피부도 주름져서 하이힐도, 자기가 좋아하는 치마도 못입고 그렇겠지? 그래도 지금처럼 나 예쁘다 해주고 사랑란다 해줄 수 있어?"
어깨에 기대고 있던 조그맣고 동그란 머리를 떼고선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 크고 까만 눈동자로 날 쳐다본다. 내 눈속에서 진실을 읽어내고야 말겠다는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세어나오며 사랑스럽다 라는 말이 절로 입가에 맴돈다. 심장이 간질간질 발끝까지 기분좋은 감각이 전기를 타듯 흘러간다. 이런 널 위해 내가 못할것이 무엇이겠는가. 지금이다. 바로 이순간. 모든것이 완벽해야만하는 이날을 위해 몇일을 기다렸던가. 대답대신 조용히 왼팔을 호주머니에 넣어 작고 반들거리는 반지를 꺼내기 위한 마지막 준비 동작을 마쳤다. 심장박동이 조금씩 빨라진다. 긴장 된 순간 잘못하면 목소리가 갈라져나올듯 한 기분에 배에 가득 힘을 준다.
"사랑해. 이거 하나만은 약속할 수 있어. 니가 호호할머니가 된다 해도. 그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너만을 사랑할게. 너에겐 조금 부족한 나일지라도.. 이런 나를 믿고 평생 함께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