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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0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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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앞애서 100원 주고 병아리를 사왔다고
엄마한테 호되게 혼이 났다.
곧 죽을텐데 뭐하러 사왔느냐고...
그래도 죽기 전까진 키울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
곧 죽을 녀석이라 이름도 없이 그냥 ‘병아리’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아리’는 신통하게도 말을 알아들었다.
“병알아~”하고 부르면 뽀르르 달려와
내품에 쏙 안기는 녀석이 여간 이쁘지 않았다.
곧 죽을 거라던 병아리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중닭 정도 크기가 되었다.
그 즈음엔 녀석의 활동 반경도 커지고
활동량도 무척 늘어났기 때문에
마당이 없는 우리집에서 키우기엔 무리가 있었다.
엄마와 상의 끝에 이웃마을 외갓집에 맡기기로 했다.
그날 이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외갓집을 들러 ‘병아리’를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병아리’는 내가 외갓집으로 통하는 지름길인
논두렁에 발을 디디자마자 쏜살 같이 달려와 내앞에 섰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논두렁길을 폴짝거리며 앞장서 뛰었다.
신이 나서 폴짝 거리다 보면 으레 너무 앞서 가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병아리’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곤
느린 걸음으로 걷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야트막하던 논두렁길의 벼가 어깨높이 만큼 자랐을 무렵,
여름방학을 하면 매일 ‘병아리’랑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들 떠 있던 때였다.
이상하게도 ‘병아리’는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병아리’와 함께 걷던 논두렁길을 혼자 걸으며
‘병아리’를 애타게 불러봤지만
외갓집 마당에 들어설 때까지 ‘병아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당이며 뒤란을 샅샅이 찾아봐도 ‘병아리’는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외갓집 안방문을 열자
백숙을 드시던 외삼촌이 놀란 토끼눈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설마 하는 마음에 ‘병아리’의 행방을 물었지만
외삼촌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외삼촌의 입에 물려 있는 저 고기가
‘병아리’의 다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감히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닭똥 같은 눈물 한방울을 뚝! 흘리고는
외삼촌에게 인사도 없이 뛰쳐 나왔다.
집에 도착해 외삼촌을 원망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는 아무 소리 없이 그런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그때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내 머릿속에는 ‘닭으로 만든 음식은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음식’이란 생각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30년 쯤이 지난 어느날,
노쇄하고 병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던 외삼촌은
내게 나지막히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의 ‘병아리’가 외삼촌의 하늘 가시는 길에 마중해 주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