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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6 17: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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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이라고 할 건 없고…
당시 물류센터 숙소는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물류센터 인근 60평대 아파트였음.
거긴 한국인들만 거주할 수 있었고,
열댓명 정도 있었던 것 같음.
또 하나는 한족 아저씨들이 지내는 숙소였는데,
물류센터 내에 있는 컨테이너였음.
시설 잘 갖춰진 컨테이너 여러개가 아니라
정말 말그대로 짐 싣는 컨테이너 하나에
한족 아저씨들 20명 정도가 구겨 잤음.
조선족 포함 나머지 외국인들은
근처 동네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이었음.
한족 아저씨들은 좀 더럽게 생활했음.
열악한 숙소 문제도 있겠지만,
그냥 생활방식 자체가 좀 더러웠음.
그래서 다들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난 그냥 그 아저씨들이 궁금해서 필담을 나눠 본 거임.
그리고, 그 때 알게 된 사실이,
한족은 조선족을 소수민족이라고 무시하고,
조선족도 한족을 싫어한다는 거였음.
오죽하면 조선족 아저씨들이 통역도 안 해줬겠음.
나중에 친해진 뒤에도 조선족 아저씨들은
한족 아저씨들이랑 선을 딱 지켰음.
교감이었다는 아저씨는 정년퇴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돈 벌려고 선생 그만두고 한국에 온 거였음.
그때가 99년인가 2000년인가였는데,
한국 한달 월급이 중국 선생 월급 몇개월치라고 했음.
자기 제자한테 그 얘기를 듣고 허탈해져서
선생 때려치고 제자 소개로 한국에 온 거임.
한족 아저씨들은 자기들한테 ‘쑤쑤’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작은아버지, 아저씨 정도 되는 말임.
꽤 친한 사이에서만 쓰는 단어라고 했음.
관리자 새끼한테 맨날 10.새끼 소리만 듣다가
내가 ‘쑤쑤’라고 불러주면 엄청 좋아했음.
자기들 일 일찍 끝나면 내 라인에 와서 도와주고 그랬음.
쿠바에서 온 아저씨는 대학교수랬나?
하여간 쿠바에서는 꽤 좋은 직업이라고 했음.
파키스탄에서 온 아저씨랑 꽤 친했는데,
사실 말이 잘 안 통함.
쿠바 아저씨도 영어를 잘 못하는데,
파키스탄 아저씨의 영어는 처참한 수준이었음.
그래도 어느정도 대화가 됐던 이유는,
쿠바 아저씨가 눈치가 굉장히 빨라서
파키스탄 아저씨의 처참한 영어를 듣고
무슨말을 하고 싶은지 캐치하는 거임.
그래서 파키스탄 아저씨는 뭔가 요구사항이 생기면
일단 쿠바 아저씨한테 얘기함.
그러면 쿠바 아저씨가 알아듣고 정리해서
스페인어로 칠레에서 온 친구한테 얘기함.
그럼 그 친구가 한국말, 영어 섞어서 나한테 얘기함.
그걸 내가 다시 정리해서 관리자한테 전달하는 식임.
파키스탄 아저씨랑 얘기하려면 총 5명이 있어야 했음.
덕분에 무슬림이었던 파키스탄 아저씨는
일하다 말고 새벽에 따로 빈 사무실에서
기도를 할 수 있게 됐음.
그리고, 무슬림들은 기도하기 전에
화장실에서 꼬추를 씻는다는 사실도 알게 됨.
남미쪽 애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는데,
대학 다니다 온 애도 있었고,
집이 꽤 잘 사는 애도 있었음.
칠레에서 온 애는 아버지가 오락실을 아주 크게 하심.
오락실 규모가 우리나라 같은게 아니라
미국 영화 같은데 나오는, 10대들 모이는 아케이드 같은 규모임.
먹고 살 걱정도 없겠다, 대학도 다녔겠다
굳이 한국에 와서 험한일을 할 애가 아니었음.
걔네들은 여행하려고 온 애들이었음.
워킹홀리데이 비자 받아서 몇달 일하고
또 몇달 여행다니고 그러는 애들이었음.
그러다가 오며가며 만난 남미애들끼리 뭉쳐서
결국 흘러들어온데가 물류센터였음.
애들이 똑똑한 애들이라 그런지
한국에 온지 몇달 안 됐다는데도 한국말을 꽤 잘했음.
관리자가 외국인들한테 막 욕하고 있으면
“저 10.새끼 또 욕한다” 이러고,
우리끼리 관리자 새끼 별명 지어서 놀리고 그랬음.
‘뿌에르꼬’라고 불렀는데, ‘돼지’라는 뜻임.
근데, 좀 나쁜 의미를 많이 갖고 있음.
불결하고, 버릇없고, 무례하고 그런 돼지임.
땡땡이 치다가 관리자 새끼 발견하면
누군가가 뿌에르~꼬!!!하고 외침.
그러면 다들 일하는 척 하는 거임.
그 관리자놈은 남미애들끼리 열심히 하자고
파이팅 외치는 소리로 알았음.
물류센터 책임지는 사람 직급이 이사였던가 그랬는데,
어느날, 워드 프로세서 쓸 줄 아는 사람 있냐고 해서
할 줄 안다고 했다가 그 이사 일을 도와준 적이 있음.
군대에서 5년 동안 우리 부서 행정업무를 했기 때문에
페이퍼워크는 일도 아니었음.
나한테 외국인들이랑 허물없이 지내는게 보기 좋다며,
서류작성도 되고 영어도 어느정도 되는 것 같고 하니
여기서 외국인 노동자 담당 관리자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봄. 물론 정규직으로…
외국인들은 비자 문제라든가 여러가지 행정적인 도움이 필요하니
나보고 그걸 전담으로 하라는 거임.
근데, 그렇게 되면 뿌에르꼬가 내 직속 선임이 되는 거임.
그래서 고민해보겠다고 얘기하고 얼마 있다가 나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