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 비판이 아니라 혹독한 비난을 받더라도
정확히 짚고 넘어갈 것은 짚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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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1950년이고
프랑스는 1944년까지 잘 아시다시피 독일점령하에
있었습니다. 허수아비 정부가 서 있었죠.
연합군의 프랑스 수복이후 4공화정 시기로 들어가는데
드골은 이때 정부수반이었다가 혼돈속에서 1946년에
전격 사퇴하죠. 이때부턴 더욱 점입가경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식민지에 대한 고집은 알제리와 튀니지를
말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2차대전 종식이후 연합국이
전쟁의 승리자로써 땅 나누기 하는 것을 뼈아프게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프랑스 정말 노력많이 했죠.)
잘 아시죠. 소련의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가 8월8일
즉, 이제 원폭투하 이틀 뒤였죠.그런데 이것으로
소련이 취한 이득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는 것.
즉, 승전국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이죠.
특히,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에게 양도하다시피한
인도차이나에 대한 회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죠.
반공을 빌미로 하여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에선
미국이 전쟁비용의 40%를 댔으니까요.(결국 패배함.
사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이 직접 개입하죠.)
6.25에 태국은 프랑스의 2배정도의 인원이 참전했고,
필리핀은 태국보다 천명이상 더 참전했습니다만,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일본강점을 거쳐 6.25가
일어나기 4년전에야 독립했습니다.
근본적으로 해외에 식민지를 두고있던 프랑스의
계산된 행보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물론 친미 반공
정권이라 또 그만의 입장이 있었겠습니다만.
즉,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국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때문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한국민들을 위해서 참전했다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것 참 로맨틱하게 세상을 바라보시는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조선일보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겠죠.
저는 조선일보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가 장정들을 모집할 때 뭐라고 했는지는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