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
2016-01-05 22:29:08
0
전입.
"야 어디사냐?"
꼿꼿하게 손 모아 고참들 담배피는 모습에 곁눈질하기 바쁜 신병에게 분대장의 한 마디는 컸다.
반가움, 동시에 엄습해오는 높은 벽을 마주친 두려움이었다.
"저 부천 어디에 삽니다."
으례히 묻는 당연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학연, 지연으로 보다 편한 군생활을 하길 바라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희망이었다.
이 딱딱한 곳에서 사회에서처럼 담배 하나 나누어피며 친해지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오 그래? 야 거기 좀만 나가면 슈퍼있잖아."
분대장은 뭔가 아는 눈치였다.
신병은 그를 제대로 쳐다보는 것자체가 두려웠지만 용기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자 분대장은 눈썹까지 씰룩거리며 타지에서 고향 후배라도 만난냥 신나게 신병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거기서 좀만 더 나가면 정류장 하나 있고."
반가움이 엄습했다. 분대장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어 신병에게 주었다.
당연하다는 듯 받아든 신병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뒤졌지만 가진 것 없는 그는 어쩔 줄 모른다는 듯 분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분대장은 살갑게 그에게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야... 여기서 이런 인연을 다 만나네."
신병은 더 확실해진 상황에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디에 사느냐고, 학교는 어디 나왔냐고 마치 소개팅에서 만난 어여쁜 아낙네를 만난 오징어마냥 묻고 뜯고 씹고 맛보고 싶은 말들이
담배연기를 따라 튀어나올 뻔 했지만 그는 간신히 그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어... 실례지만 혹시 거기 사십니까?"
갑작스럽게 분대장은 신병을 와락 안아주었고 영문은 모르겠지만 감출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신병은 버럭 안겨버렸다.
"너 어디학교 나왔어?"
"저 OO학교 나왔습니다!"
"이야..."
"어... 왜 그러십니까?"
"나 거기 맨날 가거든. 야 거기 근처에 빌라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엇!!!!!!"
신병은 비록 옆소대이긴 하지만 같은 동네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헤어질 수 있었다.
다음 번에는 더 친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삭막한 군대 안에서 한시름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피어오를 군생활에, 펼쳐질 미래를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점차 신병에게 무관심해지는 분대장을 보며 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에게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아무리 같은 동네 사람이라도 뭔가 잘못했거나,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처음과는 다르게 점차 건조해지는 생활이 힘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는 짝사랑하는 여인을 쫓아 스토킹하듯 분대장에게 잘보이려고 열심히 뒤치닥거리도 했다.
짬이 나는 대로 소대원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그와 다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분대장은 그에게 귀찮은 뉘앙스를 풍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옆소대로 도망친다며 소대원들에게 욕을 잔뜩 먹고 나온 그는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분대장에게 묻고 싶었다.
아니 꼭 물어보려고 했다.
'분대장님, 저한테 왜 그러시는 겁니까?'
TV 앞에 누워있는 분대장의 뒷모습을 조용히 훔쳐보며 그는 망설였다.
따지고보면 사실 그들이 서로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왜 이렇게 유치하게 집착해야 하는지 자신의 대한 회의감이 엄습해왔다.
막 군생활에 적응하고 편해질 시기에 곧 전역하면 남남이되고, 설령 친하다 하더라도 본인이 전역하고 나서야
사회에서 만나려면 먼 이야기의 일이라는 생각에 그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둘은 서로가 친하다고 여긴 적도 없고 친해진 적도 없다. 일방적인... 짝사랑하는 소심쟁이의 한탄에 불과했다.
그렇게 그는 그곳에서 도망쳐나와 복받쳐오르는 서러움에 또 창피함에 소리내지도 못한 채 화장실 구석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날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잊겠다며 마음의 짐을 덜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소대에 신병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으례히 들리는 고참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신병을 보며 얼마 전의 본인을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러자 그 문제의 분대장은 똑같은 레파토리로 신병에게 물었다.
"야 어디사냐?"
"어, 니네 집 앞에 슈퍼 있지?"
"좀만 나가면 정류장 있고."
화색이 돋는 신병은 반가움을 지우지 못한 채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수원 어디에 사십니까?"
"아니, 그냥 거기 놀러간 적 있어서."
그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저 하릴없는 분대장의 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리고 진지하게 임했던 본인의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분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