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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 2015-05-25 19:09: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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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먼 미래에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어 나라의 경기가 수령에 빠졌다고
뉴스 1면을 매일 아침을 장식할 때,
모두가 떠나 이제는 노인들의 지팡이 소리만이 허허벌판에 바람 소리와 함께
떠들어 댈 때,
그 때에 나는 비로소 이 평화로운 곳으로 돌아와 자유롭게 걸어다닐 것이다.

어떤 이는 사람이 적어 사람이 그립다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것에 대한 대책을 갈구하며 사람들에게 요구할 것이며,
다른 어떤 이는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며 그의 의견을 반박할 것이다.

모두가 싸움박질 하며 왜 태어나야 하는지를 묻지 않고
어떻게 태어나게 하고 태어나지 못하게 할지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이곳을 거느리며 사라질 우리들에게 안녕을 고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태어나고 죽는 모든 생물들은 같은 운명을 지닌다.

어떤 생물은 하등하고, 어떤 것은 우월하다는 이 불합리한 진리는
이 세계에서 합리화로 모든 것을 무마하고 통용한다.

태어나야 할 이유가 있는가?
누군가 축복이라고 말하거늘 그것을 자신에게 증명해보이라고 말하라.
그가 열심히 자신을 증명하면서 진실된 행복을 그대에게 보여준다면
비로소 인정하라. 공감하지 않아도 인정해도 된다.
다만 그것이 나의 행복이 아님을 알아라.

대게 십중 여덟 아홉은 방법을 들먹거리며 너에게 왜 그러지 않느냐는
어리석은 물음을 던질 것이다.
그에게 행복은 보이지 않으며 철저한 자기주장의 힘을 실기 위한
'증명'을 위한 변호를 할 뿐.
그들은 아마도 과거의 나였으며, 앞으로 될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유일하게 현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의 내일의 행복을 바라지 않으며 지금 당장의 행복을 갈구하는 것 뿐이다.
동시에 내면 세계를 깨뜨리지 않는 그 거대한 탑.

위의 둘의 공통점은 서로가 가진 자신의 세계를 철저하게 지키고 변호하는 습관이다.
인간이란, 삶이란 결국 자신을 변호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얼마나 잘 사기치는가가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어줄 수 있는가와 연관될 뿐.
자본 앞에서 인간은 결국 노래하는 기계일 뿐.
기계화가 두렵거늘, 자신의 머리가 기계화가 되었지 않는지 먼저 확인해보시길.
차갑고 단단한 스테인레스를 왜 외면에만 비유하는가?
1693 2015-05-24 10:10: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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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남모바일인디 이따가 글수정할게요
1692 2015-05-23 21:50: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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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존경이란 괴물과도 같은 것이거늘,
우리는 늘 작고 귀여운 고양이로 비유하곤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잡혀먹힐 그 괴물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란 한편으론 좋은 것일지는 몰라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죠.

내가 누구보다 뛰어남을 증명하여 되려 존경을 받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우리는 방법을 들먹여 선의와 악의를 나누곤 하죠.

작고 이 귀여운 존경이라는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어느새 물불 안가리는 황소가 되어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는 법을 들먹이고, 윤리를 들먹여 그것이 잘못됨을 다시 증명하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진실된 답을 줄 수 있을까요?
1691 2015-05-23 21:47:2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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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제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설움이다.

나도 누군가처럼 웃음이 끊이질 않았으면하는 설움이며,
남들이 보여주는 그 미소를 자랑하고 싶은 하찮은 욕구일 뿐이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처지에 대해서
누가 도대체 나를 위로해주리?

고작 손가락 하나 잘려나갔다고 그 천한 자유마저도 빼앗아간 처지를 욕할까?
나도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데 내가 기댈 공간은 어디에도 없더라.

그런 설움을 빈 잔에 가득 채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잔을 비우면, 그 자리에 또 다시 설움을 채우겠지.

나약한 몸뚱아리가 버티지 못해 잠에 들고
잠에서 다시 깨면 말짱해진 정신이 말랑말랑한 세상을 못이겨 잠에 들려하고,
그렇게 또 잠에 들려니 딱딱한 콘크리트가 머리맡에 있더라.

사람들의 가증 섞인 위로도, 한 잔의 설움을 나누는 술자리도,
그 무엇도 나를 채워주지 않더라.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시간은 언제나 찾아오지만
영원한 시간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안다.
안다고.

잠깐의 취기는 잠에서 깨어나면 사라지고,
나는 또 다시 그떄의 말 못할 감정을 찾아 술자리를 나서겠지.

오직 그것만이 목표가 되어 나는 그 순간을 보다 많이 보다 더 길게.
영원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다시 한 잔의 술 잔을 비우고,
다시 이 밤이 지나기를 바라며 영원한 잠을 꿈꾼다.

다시 오지 않으리란 허황된 생각은 버려라.
모른 척 해라.
아니 모른다고 믿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하거든,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리라.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마라.
오직 너 하나만을 믿어라.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웃어라.
너의 잘남을 보여주고 나의 관대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알려라.

그것 마저도 통하지 않다면
너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언제나 피해를 보는 것은 나였다고.
무엇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즈음
벼랑 끝에서 너는 선택해야만 한다.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방법은 묻지 말고, 오직 그 이유를 망각하여
승리자가 되기 위해.
1690 2015-05-20 00:33:22 0
소설읽기 [새창]
2015/05/19 23:43:37
구조적인 면으로 접근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이야기는 사상의 충돌로 빗어지는 하나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훌륭한 작품일 수록 다양한 사고를 하도록 만들어주곤 하죠.

물론 화자가 제시하는 주제와 이야기의 공간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다른 공간 안에 그 공간을 맛물려 해석하는 맛도 있긴 합니다.
설명이 이상한가 싶기도 한데

단순히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시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던가요?
1689 2015-05-20 00:24:0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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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애초에 방법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대학에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지식의 접근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시대입니다.
취업준비생이 아니라면 대학은 불필요한 요소에 가까울 것입니다.
어쩌면 단순히 시간적 여유를 필요로하거나 학과생활에 대한 로망 정도 단순한 이유때문일 수도 있고요.

방대한 지식을 접근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서 곧대로 머리속에 입력하는 행동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봅니다.

학교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것을 배우기 위해 찾아가는 곳입니다.

내가 그것을 증명해보이지 않는 한, 교수들은 내가 틀렸다고 말할 것이고,
그런 곳에서 내가 배울 것은 없게 됩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필요하거나 혹은 가도 안가도 그만이겠죠.

저는 문득 사색을 통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제시하는 방법론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과연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어차피 우리는 그곳을 거치지 않으면 낙오자라는 시선이 이미 강한데,
뛰어 넘어 낙오자가 되지 않거나, 낙오자가 되거나,
낙오자이면서 스스로 합리화시키는 사람이 되거나.
아이러니하죠?

결국 그 부차적인 이유라는 것들도 삶이란 이름 앞에서 부질없는 것들인데..
1688 2015-05-19 15:54:4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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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야만 하는 인간.
바다 한 가운데에 떨어져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성이 결코 진실될 수 없음을 느꼈다.

1+1에 대해 2라고 대답하는 것을 교육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2라고 대답하거나,
그것이 2가 될 수밖에 없음을 교육 받으며 인정하거나.

생각하는 능력? 사리분별을 가리는 판단력?
결국 저마다 휩쓸려가는 인간들을 보면서
판단력을 상실한 채 사회에, 윤리관에, 법에 의해 붙들려 사는 자들을 보라.

손과 발을 자유자제로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누리는 한정된 자유마저도 빼앗아
인간 스스로 규율이란 이름 아래 가혹한 심판을 행해왔다.

그들의 의지와 이성의 충돌은 죄의식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에 대해 물을 때에는 의지건, 이성이건 중요하지 않다.

오직 왜 내가 그것에 대해 짊어져야 하냐는 물음만이 존재할 뿐.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된다는 의견에 대해선 묵살할 수 없다.
이성은 원래 반쪽자리 진실이었다.
철저한 의심과 믿음의 붕괴가 만들어내는 쌓여가는 하나의 탑.

다만 이것을 온전한 한쪽이라 믿어버리는 행위에 대해 지적할 뿐이다.
왜 휩쓸리는가?
반쪽에서만 노는 판단력은 당연 상대쪽을 까내리는 수밖에...

끝없는 싸움에서 속출하는 피해는 소리 없는 폭력이지만,
이렇게 폭력에 관대한 세상에서 물리적인 폭력을 제한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겠는가?
1687 2015-05-18 19:13: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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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출근길, 피우기 위해 구입하는 담배 한 까치.

200원.

아저씨는 웃는다.

퇴근길, 한 달간의 노고의 가치를 인정 받는 월급.

편의점 앞에 들러 잔고를 확인한다.

나의 가치는 얼마인가?

150만원.

아침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책임감을 갖고,

회사에 순응하며 철저히 규칙을 지키며 질서를 유지해야만 한다.

지루하고 스트레스 받는 환경에서 싸워 이기면,

나의 노동은 돈이라는 가치로 환산된다.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담배의 가치는 얼마인가?

그리고 그것을 파는 주인 아저씨의 노동의 가치는 얼마일까?

가치를 메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가격을 메겨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질서다.

모두가 그 이름 앞에서 나약하고 공평해야만 한다는 명목 하에 만들어진 질서.

어떠한 질서였는가?

가진 자에겐 한없이 소박한, 없는 자에겐 사치로 다가오는 것.

그것은 바로 계층을 나누기 위한 질서다.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이념 앞에서 물질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말한다.

본래 자신은 순수했노라고.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무엇이었는가?

거대한 액수의 수표 한 장, 그것을 수없이 바닥에 깔아놓고 뛰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말한다.

순수한 가치를 지닌 사람은 없다.

가진 자에게 없는 자는 순응할 수록 부려먹기 쉬우며,

반항하면 할 수록 약올리기 쉬운 존재다.

없는 자에게 가진 자는 언제나 뒤통수에 비수를 꽃을 대상이어야 하며,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의 모호한 위치선정으로

마치 회당 공수가 전환되는 야구처럼,

정정당당한 룰을 거부한 채, 빈볼로 위협을 가하는 악랄한 생존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1686 2015-05-18 18:48:17 0
나는 생각하다 고로 존재한다 [새창]
2015/05/18 05:32:47
나는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을 실존주의 철학이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나요?
1685 2015-05-15 13:50:24 0
본능은 내 판단력에 '적'인가? 에 대한 고찰. [새창]
2015/05/15 00:53:03
1 아뇨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가.... 특별한 목적 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먼저 저는 무교에 신도 믿지 않습니다^^하하...
단지 인간 본연의 의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뿐입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우리를 욕하게 만들고,
우리를 공포로 빠지게 만들며,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뇌가 그렇게 설계되었으니 그렇다.
그건 대뇌에서 어쩌구 편도체가 어쩌구... 이런 어려운 설명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불합리하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가 그것을 싫어하는지 이런 복잡한 체계를 만들자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에서 반응하는 것을 찾으면 쉽습니다.
그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가까운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비슷하게 통하는 기준은 많습니다.
(여시 사태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기준의 잣대를 가지고 다수가 만들어져 필요악으로 치부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에 대해서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요?)

제가 말하는 부분은 인간의 의지라는 것 또한 결국엔 무언가에 의해서 철저히 다져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a와 b라는 줄기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무엇을 따르는지에 대한 선택을 보아도, 일반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하나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그 기준이 쌓여진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세워놓은 이 기준이 과연 '나'의 기준이 맞는가?
과연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고력을 갖추기 전부터 갖춘 현재까지 내 의지대로 선택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인간이 순전히 100% 선택을 하는 합리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생명의 탄생이 과연 축복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죠.
애초에 우리의 의지대로 무엇 하나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쌓아온 통틀어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성과 기준, 도덕과 윤리의 잣대까지... 수많은 것들 말입니다)
이것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본능일까?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도덕관에 대해서 지나칠 만큼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우리가 그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둑에게 연민을 베풀고, 사형수에게 인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죠.)
사회적으로 다수가 옳다고 말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당연하다는 맹신의 탑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냅두는 것이
개인의 의지를 깨뜨리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본능이란 결국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을 통틀어 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도 그 범주 안에 들어서있죠.
우리가 합리적을 모방하는 사람이 될 순 있어도 합리적인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결국 선택하는 자에겐 하나를 버려야만 합니다.
거짓된 승리감이냐 진실된 패배감이냐, 그러나 진실된 승리감을 찾아 거짓된 패배감을 잊으려고.
그저 무엇을 수식어로 붙여도.... 그렇게 믿어버린다면 '되는 삶'에서 말장난에 불과한 샘입니다.

쓸모없는 잡소리가 길었네요.
제가 정의한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과연 일전에 읽었던 글과 책들이 저를 만든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그것들을 삼켜서 저로 만든 것일까요?
저는 그것에 대해서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를 볼 때에면 마치 거대한 발견이라도 한냥 떠들어대서 문젭니다.
사실 복습의 의미가 강한데도 말이죠. 그 부분은 제가 사과드리지요.
1684 2015-05-15 10:10:49 1
본능은 내 판단력에 '적'인가? 에 대한 고찰. [새창]
2015/05/15 00:53:03
그건 본능이 아니라 만들어진(made) 이성에 불과합니다.
누가 만들었나요?
그리고 나는 왜 그것이 당연하고 옳다 믿었죠?

과연 님이 생각하는 본능이 본능일까요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 불과할까요?
1683 2015-05-14 17:11:16 3
[새창]
사실상 구조적인 문제도 있긴 합니다.
돈...^^
1682 2015-05-14 15:52:02 0
제게서 가능성을 본 인간 있습니까 ? [새창]
2015/05/14 14:04:30
변화하란 요구로 인한 가능성을 제외하곤 없죠.
그걸 왜 우리 보고 묻습니까?
1681 2015-05-14 10:09:01 0
[새창]
레오나 캐리는 이니시에이팅으로 갈립니다.
개인탱킹 템에 취중하시는 것을 보니 공격적인 성향이신 것 같은데

스펠에 점화를 사용해서 초반에 압살하는 것과 동시에
중반 로밍을 통해 게임을 더 수월하게 끌어가시는 운영도 좋습니다.
먼저 로밍가서 와드작업한 뒤에 상대 서폿이 따라오면 다시 내려가서 원딜을 잡아주는 운영하면 더 좋구요.

아이템도 정당한 영광은 자주가지 않지만, 가끔 승천의 부적을 갈 떄가 있습니다.
도주기가 강하거나 혹은 빠른 이니시에이팅 후 합류하기 위해(팀과 시너지를 위해)
특히 아군 원딜이 시비르라던가, 시비르라던가 하면 승천의 부적과 정당한 영광가면
적 딜러진 도주기 올인빵해도 90%확률로 물립니다.

아무래도 개인탱킹템은 초중반 압살을 하였을 때, 로밍이득으로 무난한 승리를 가져왔을 때가 아니라면
살짝 포기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미카엘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상대 한방이 너무 강해서 딜러진한테 12번에 놓고 타곤산+미카엘 써주면
살려줄 수 있습니다.
물론 레오나가 탱킹 다하면서 아군이 딜링하는 상황이 나오면 최적이고요.
수비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서포터로써 딜러진 한 번만 살리고
상대 들어오는 브루저 qer로 물어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캐리각 나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레오나할때 절대로 이속신 안신습니다.
ad많으면 닌탑신고 ap많으면 헤르메스 신습니다.
이거 하나만으로 초반탱킹이 정말 좋아서 버틸만 하거든요.

레오나는 로밍갈 때 와드무시하고 r로 꽃아버릴 수 있기 때문에 참 좋습니다.
툭하면 다이브하고 살아나오는 괴물같은 녀석이라..

p.s.
레오나 정글도 되게 좋습니다.
개인탱킹템에 취중할 수 있어서 이니시에이터로 적합하고
불씨 덕분에 정글링도 준수합니다.
1680 2015-05-14 09:21:57 0
저 같은 사람 있나요? [새창]
2015/05/14 05:45:21
이야기 스포의 유무와 관계없이 저는...
연출구도랑 연기력을 많이봐서요.

물론 반전영화의 매력도 모르고 봐야 알겠지만
특별한 반전 없이 매끄러운 감정선으로 마무리된 영화라면 스포200%도 ok.

(사실 스포에 전혀 민감하지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하고 직접 체감하는데..
공포영화란 거 알고도 벌벌 떠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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