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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 2015-05-14 09:15: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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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카뮈의 표현에 따르자면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에게 삶이란 죽음에 반항하는 가장 큰 대목이며,
당장 내일이 될지 모래가 될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비단 그를 볼 때 뿐만 아니라 많은 철학사상가들을 보면
실제로 신을 믿지 않고 거부하며, 종교를 거부한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들이 가진 논리와 설득력으로 철저히 자기주장을 변호했다.
그들의 말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의 말에 동의하면 된다.> 이 된다.

이 믿음에 대한 아이러니는 사실 깨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대목이 된다.
그것이 깨지면 다시금 절망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 현재를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설령 그곳으로 들어간다 하여도 흔한 범죄영화의 뻔한 레파토리처럼
우리는 반드시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더 큰 위험부담을 안고 더 큰 문제를 저지르고야 말 것이다.
그곳에서 성공한 자는 씁쓸한 웃음을 짓고, 실패한 자에게는 코앞에 닥친 두려움을 직면하는 순간이다.
이렇듯 삶에 있어서 이분법으로 보는 흑과백 양자의 믿음이 구축되어가는 것에 대하여 나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것이 과연 온전한 너의 의지와 선택이 만들어낸 현상인가?>

삶이 아름답다고 누가 그랬는가?
누가 우리에게 동의하라고 말을 하던가?

성공한 자의 눈에는 무엇이던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고,
거짓된 행복에 취한 자에겐 세상은 즐거울 뿐이다.

노인들은 왜 반항하지 않는가?
잃어버린 젊음에 대하여 누구 하나 보상을 바라지 않으며 순종적이다.
이 당연한 비극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오직 젊은이들 뿐만은 아니다.

반항이란 무엇인가?
이 심오한 한 단어에 나는 수없이 많은 것을 보았다.
욕심과 복수, 의지와 선택.
그 모든 것을 통튼 삶.

나는 자살을 거부하지 않는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삶에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아직은 말을 아낄 뿐.
1678 2015-05-13 12:15: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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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먼저 현대인들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언제나 묻는 난해한 질문들에 대하여 해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쳐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해답이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계속해 꼬리를 물지만 사실 그 연장선상에는 이미 세워진 한계점으로
우리를 미리 차단하고 있는 벽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에 대하여
현대인들은 크게 반증을 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연대감을 갖는 것, 그 속에서 나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
비록 자본주의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고통이 있지만
그것에 비하면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

우리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 탐구하는 '중독자'들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붙여도 어울리는 중독자에게 이중, 삼중 잣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스꽝스럽습니다.

본론으로 들어와 제가 진짜 묻고 싶은 것은 그렇습니다.
나를 사회에 속하게 만든 것과 나를 사회에 구속시키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스스로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이 증명할 이유는
복잡한 문제에 해결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보다야 그것을 인정하고 나를 구속시키는 편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잣대를 펼치는 우리를 보자면,
그런 문제의 본질은 당연 반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법을 어기고, 도덕관을 상실한 비이성적인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우리는 말합니다.

"그것은 명백한 잘못이야."

처벌을 해야 할지, 용서를 해야 할지보다 우리는 그 죄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 연민의 감정과 분노의 감정이 뒤섞이던지 따로 놀며 서로 소리치겠지요.

물론 국가와 사회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은 당연하지만,
저는 이것에 대하여 우리가 스스로 동의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일종의 선언이나 약속도 하지 않은 반강제적 동의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합니다.
선택권은 없습니다. 그 속에서 보장하는 것을 누리고, 소리쳐야만 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완벽을 꿈꾸는 저야말로 가장 사치를 꿈꾸는 망상가라고도 할 수 있죠.

모든 것은 당연하다는 명목 하에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정치적(난장판)으로 파면을 당하고 이단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어떤 사상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어느 것은 멸시당하고 어느 것은 환대 받죠.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 즉 사회에 대하여 사람들의 시선은 점차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갖게 해달라는 주장을 펼치고,
저마다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사람들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과연 시대적인 비극으로만 보아야 할 것은 아닙니다.

예로부터 마약, 도박 중독자들에 행위는 '하등한 인간'으로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가두고 있는 그 벽을 허물어보십시오.
우리 모두가 결국 같은 처지에 시달리는 불쌍한 인간이 아닙니까?

보수적이고 나발이고 그런 '가르기 위한 기준'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자신을 변화시킨 어떠한 생각의 충돌, 예술 작품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발전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지적인지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스스로 지금까지 쌓아올린 삶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삶이 그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기계라면 적절한 비유일까요?
'기계화'가 단순히 단단하고 차가운 스테인레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차갑게 더 단단하게 굳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고 봐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쌓여진 가치관에 대하여 우리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당연하기 떄문입니다.

'선생님이 나를 훈계하는 것은 당연해.'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해.'

이런 불합리한 것들(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맹목적인 반항을 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이유 없이 소리치고 대들지 않습니다.

'저런 가난한 노동자가 되면 안된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
'고작 그런 이유로 넋두리를 늘어놓는 거야? 세상에 너보다 불행한 사람 많아!'

그렇다고 이런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입 다물고 스스로 구속시키라는 소리도 아닙니다.
괜히 사람들이 스스로 구속시키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문제의 중심엔 언제나 돈이 존재합니다.
돈이란 무엇입니까? 욕심입니다.
욕심을 갖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우리는 그 근원적인 문제를 바로 옆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까 합니다.

돈을 어떻게 소비하고 저축하고 벌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만,
그 돈이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교육이란 없습니다.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하여 과연 우리가 동의했는지 다시 한 번 물어보십시오.

언제나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는
이러한 것들에 스스로를 구속시켜, 스스로를 합리화시킨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리광을 피우고, 철없이 뛰어놀기도 하며, 대들고 반항하는 그런 시절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를 사회에 구속시킬 수밖에 없는 거대한 책임의 늪에서
이미 엎질러진, 돌이켜진 삶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냐는 물음에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싸워 이기는 것만이 세상에 전부입니다.
경쟁사회에서 이겨 올라가는 것 뿐입니다.
짖밟히면서 시기와 질투를 배우고,
짖밟으면서 성취감과 승리감을 배웁니다.

무리에서 벗어난 짐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손가락이나 빨면서
모두가 하는 '일반적인 것'에 대하여 욕심을 거둬버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머리를 깍고 산에 들어가 중이 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도대체 이런 생각의 꼬리를 무는 것에 대하여 왜 우리는 저평가를 하는 것입니까?
지극히 당연하다는 잣대로 왜 튀어나오는 생각을 죽여가고 있냔 말입니까?

신 앞에 평등한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만인이 죽음 앞에서 평등할 터인데 우리는 왜 짖밟고 짖밟히는 것에 고심합니까?

우리가 금전거래를 하는 것처럼 '약속'을 하고 지불하고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일방적인 요구에 스스로를 끼워맞출 뿐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떻게' 벗어날지 찾아보는 것뿐입니다.

철없는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대드는 것은
주체의식과 선택에 대하여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현대인들의 절망스러운 모습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려 모두 거둬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 봐야 마땅할 것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잣대에 우리는 그 권리를 스스로 찾아헤매고 있습니다.
완전한 자유를 보장할 수 없는 불완전한 틀 속에서
자유를 찾아 헤매는 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이맘 즈음에서 너무나도 많이 온 탓에 익숙해진 것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 속을 여행하는 기분은 참으로 묘할 것입니다.
샤워장이 있고, 식사를 할 가게가 있는 그런 곳으로 가기를 원할 뿐이죠.

하지만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지금껏 해왔던 선택에 대하여
그것이 온전한 스스로의 의지가 만들어낸 것인지에 대한 의심 말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을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누구가, 무엇이 될 것입니까?

어떻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의식선상에서 익숙해진 것에 대한 믿음의 틀을 깨드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믿음의 탑을 부슬 수 있는 자만이 세상의 승자는 아닙니다.

카뮈는 말했습니다.
"패배감을 뒤집어 쓰더라도 나는 마지막까지 웃겠다."
누구나 거짓된 승자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먼저 패배자임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구속하게 만든 사회를 원망하고,
다시 조용히 사회로 돌아가 안락을 바라는 자를 동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그에게 훈수를 두지 마십시오.

과연 당신은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극히 당연한 것에서 벗어나십시오.
합리적인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만 존재할 뿐.
1677 2015-05-12 01:09: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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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시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나의 실존에 대한 문제 뿐이다.
이성은 변했다. 믿음은 흔들렸다.
주름살이 생긴 외모도 변했다.
넘어져 다친 상처로 벗겨진 살갗이 쓰라린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면 지금에 비하면 더욱 거대한 삶의 무게가 나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다고 후회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를 만든 것은 모든 이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매는 존재의미에 대해 깨달음을 주었고,
그를 향한 분노는 세상에 대한 연민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들은 나를 키워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서있다.

어제도, 앞으로 다가올 내일도 아닌 제일 모호한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과연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나라는 물음에
내가 그 선택을 하였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책임이 두려울 뿐이다.
원치 않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불행은
결국 나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르게 만든다.

긴 여행 끝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단 늙은이의 쓴웃음을 보고
도저히 그들처럼 살 용기는 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며 최선을 다해 그것을 이용하라는 사람들의 조언은
결국 그것을 듣고 이해하는 지금까지도 낭비되었을 뿐이다.
정말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있는가?

모든 것을 끝내며 합리적인 이유를 명목상 붙여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추구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에 대하여,
나는 또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제도 오늘도 당신이 이겼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찍어 누르는 순간이 온다면,
오직 그것을 바라며 내가 살아가길 원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내가 왜 이겨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럴 가치가 분명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겨야만 한다.

이렇게 나의 시간은 또 허비된다.
결국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지나치게 많이 달려온 나에게 되돌아갈 시간은 없으며,

앞으로 달려갈 지금보다 지나치게 멀리 떨어진 그곳의 시간도
결국엔 짧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어쩌면 오지 않는 미지의 시간일 수도...

분명한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얼마나 머리를 굴려 앞 질러보더라도
내가 패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1676 2015-05-11 19:21:10 0
h1z1 스샷 조금 [새창]
2015/05/11 17:38:10
1 좀비서바이벌겜인데... 얼리엑세스라 잡오류도 아직 많고 무엇보다도 핵이 넘 많아요.
한방이나 조준핵은 금방 잡히는데 맵핵은 잡을 수가 없어 문제가 좀 큽니다 ㅠ...
1675 2015-05-11 18:12:26 1
헉 무도게시판이 따로 있었네요 [새창]
2015/05/11 13:47:19
그녀석..
1674 2015-05-11 17:50: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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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출처에 대하여 그것이 자신의 머리 속에서
온전한 생각과 선택으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인정하겠다.

그 전에 너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사색하지 않았다면,
그 기본적인 것조차 외면하고 있었다면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B-D사이에 choice가 있다는 것만이 알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람은
고작 떠돌아다니는 인위적인 AI만 못하다.

그것이 순전한 당신의 선택이었는가?
세상에 완벽은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완벽을 추구해야만 한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1673 2015-05-11 00:51:23 0
[새창]
공카에서 사람 구하셔도 되요 검색하면 나와용~~
근데 핵쟁이가 많아서; 사람 많이 가려서 받으셔야 할 겁니다.

파밍섭하세욬ㅋㅋ 사람 적당히 있는 곳은 진짜 재밌게해요
같이할 사람들도 있으면 더 재밌고
1672 2015-05-09 10:32: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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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술렁이는 바람따라 훨헐 날아가던
뭍으로 달려오는 파도소리가 바위를 덮쳤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네.

흰 구름을 밀치는 저 사악한 속삭임이
구름의 눈물을 쥐어짤 때에도,

수풀 사이에서 배회하는 딱정벌레를 밟아버린
나의 발에서 느껴지는 이 부스럭거림이

고작 한낱 세상에서 버려져야 할 존재에 대한
작은 메아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저 사악한 속삭임에 대한 태양의 심판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으나,
그들은 나에게 거대한 인장을 새겨넣어 버렸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언제나 공평한 태양의 신이시여,
모두가 잡아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스스로가 죄인이길 알아볼 수 있게 만든
이 검디 검은 그림자는 절벽의 끝으로 발을 오르게 만들더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 아무 것도 모르오.
앞으로도 모를 것이고, 일전에도 몰랐을 것이요.
더 이상의 발자국이 남겨지는 일은 없습니다.
1671 2015-05-09 10:16:04 1
강간의 왕국 [새창]
2015/05/09 03:14:05
공감하지 못하는 행위에 대해 개인의 권리까지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회..
1670 2015-05-07 17:54:58 0
대학을 사진한장으로 정리한다! [새창]
2015/05/07 07:10:16
111111111 저도 그럼 살포시 추천을;
1669 2015-05-07 16:56: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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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 창가에 있는 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시들어 고개를 떨군 채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누가 그들을 죽게 만들었습니까?

물을 주지 않은 저의 탓입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에 의지해야하는 그들의 삶을 보면 너무나도 불쌍합니다.

고작 잠깐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보자고 그들의 주인인 척 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꽃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 돈 5만원에 흥이 겨워서 채 씻지도 않은 채 옷만 주섬주섬 챙겨

뒷주머니에 구겨넣어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참으로 가볍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모습에 대해 묘한 감정이 듭니다.

없으면 갈망하고, 있어도 갈망하는 이 끊임없는 욕심이란 불에 기름이 되어주는 돈에 대하여

저는 한송이 꽃과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돈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계를 가꿀 수 없으며, 돈이 없으면 허기를 채우지 못하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점차 바다 위에서 사람들과 동떨어진 뗏목에서 울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처지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어떻게든 사람들과 가까이 붙어있는 것입니다.

하얀 새치가 흑발의 머리를 덮어오고 있지만 채 염색할 시간도 모자란 중년 남성은

이른 아침에 고된 일터로 나서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그 웃음은 어떤 웃음이었을까요? 간밤에 피로를 가신 상쾌한 웃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절망 속에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망각의 웃음이었던 걸까요?

그 웃음에 대해서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이 적당히 있을 때에는 자신에게 한계를 만듭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모든 것이 한계점에 도달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고라면 돈을 벌고 저축하라고 말합니다.

책을 열면 사람들의 성공신화가 나옵니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위에 중심을 잡고 서있는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줍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을 보고 그 극악의 확률에서도 희망을 갖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이 거짓된 희망이 순전한 당신이 원한 의지가 만들어냈냐는 물음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길래 나를 불지피게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무엇이길래 갈망하게 만들고,

도대체 그것은 왜 우리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중년에 접어든 가장에게 돈이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거대한 무게이며,

사회초년생에게 돈이란 스스로의 자유를 구속시키는 거대한 감옥이며,

우리들 모두에게 돈이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돈이라는 이름의 종이조가리 몇 장에 나는 오늘도 웃음을 짓습니다.

이 웃음은 누군가처럼 길거리에서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안위의 마음입니다.

고작 작은 돈 따위에 굴복하는 나에 대한 회의감에 집어 던지고 찢어 보아도,

이미 나는 그것에 종속된, 하나된 돈이라는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제아무리 얼굴에 쓴 가면을 깨끗이 씻어버린다고 하여서 그 모습이 완벽히 깨끗해지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쓰고 있는 이 가면을 방치해둔다고 하여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벗는다고 하여서 그것이 진정한 나의 참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돈이라는 이름의 양식은 저를 춤추게 만들었고, 아름다움을 뿜내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그것이 우리의 참모습이었습니까?

"당신은 그것이 무엇이더라도 가진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습니까?" 란 물음에

모든 것을 던져버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돈으로 자유를 살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사람은 있습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까지 이르기를 우리가 그 모든 선택에 대하여 순전한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있습니까?

당장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부모의 강압을 받을 때,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달라 말하는 것처럼.

정작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는 존중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부조리한 것들에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가차없는 세상의 아웃사이더가 되는 삶에서...

갈대 밭을 휘젓는 노란 나비들에게 뛰어드는 사마귀의 꼴을 보십시오.

과연 당신이 날아다니는 나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거짓된 의지 속에서 나의 모습을 벗어던진다고 하여서 자유가 주어진다면 오산입니다.

오직 믿음만 있을 뿐입니다.

정말로 자유가 존재한다고 믿으십니까?
1668 2015-05-07 15:41:48 0
콘스탄틴에 한국어가 나오는데... [새창]
2015/05/05 18:54:35
훨리워뤄? 쉣!
1667 2015-05-07 15:39:52 0
주기적으로 한번씩 보는 영화 있으시죠? [새창]
2015/05/06 23:39:04
박하사탕이요 ㅋㅋ
1666 2015-05-05 08:15:56 17
언제나 단독자로서의 사고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새창]
2015/05/04 14:43:05
절대적 권력자인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how가 아닌 why를 찾아야.. 그제야 나는 절대적이 아니라 몹시 비굴하고 가혹했음을 알게되죠.
1665 2015-05-04 13:21:35 0
[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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