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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 2015-04-18 23:54: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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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인간의 본성을 숨길 수 없다고 말하는 의심.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순하다고 말하는 원초적인 믿음.
뭐 이것도 모순이지만.

긍정과 부정의 어원은 곧 믿음과 의심으로부터 시작한다.
긍정의 힘이란 결국 믿음의 힘이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세우는 것이다.

부정의 힘이라는 말은 왜 없는가?
의심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눈치를 가진 사람이다.
척 보아서 저것은 해서는 안될 행동이다! 여기는 사람의 모순은
바로 의심하는 것마도 믿음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믿음의 탑이 순수한 모순이라고 인정해버릴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그러면서도 부정하는 이유는 바로
죽음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

나는 의심한다. 왜 의심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온전히 '합리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100% 올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믿음 없이는 의심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이유가 사실은 신이 존재한다는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온전히 그가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나는 그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결국 긍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긍정을 요구하는 것에는 너무나도 큰 대가가 따른다.
게다가 그 긍정을 손쉽게 내것으로 만들려고 했다가는
너무나도 큰 부정의 힘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결국 그 쌓여진 믿음의 탑이 거짓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
우리는 부정적인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 무엇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가짜 가면을 써가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이 아이러니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의심도 의심도 아니다.

그러면 너는 무엇이고 그것은 무엇인가?
너무나도 큰 문제다.
1633 2015-04-17 23:04:25 0
인터넷 강의로 논리학 배울수 있는곳 있나요? [새창]
2015/04/17 19:50:24
굳이 인터넷이 아니어도 도서관에가면 책은 많지요 ㅇㅅㅇ
1632 2015-04-16 19:55: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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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나약한 한 인간이 말하기를

흐르는 강물을 억지로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니

상류로 역류하는 법도 없고 그렇다고 장애물에 걸려 그 자리에 항시 서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다 자연스럽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는 철없는 물음에 이 나약한 인간은 말한다.

애초에 자연스러운 것이 없지만 그만큼 부자연스러운 것도 없으니

자연스럽다는 말이 바로 부자연스럽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나는 조용히 생각해본다.

이 당연한 진리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순간,

흐르는 강물이 왜 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이었다.

나는 단지 어리석은 행동을 그만두고 강물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세상이 미소 짓고 있다.

나지막하게 떠있는 이제는 곧 질 태양을 보며 나는 물었다.

왜 세상이 미소 짓고 있느냐고.

그러자 나약한 인간은 말한다.

그것은 네가 미소 짓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세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하였다면

과연 네가 강물에 몸을 맡길 수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의심을 다 거두어버릴 수는 없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 나약한 인간이 말했듯,

내가 믿는 것이 옳은 것이며, 곧 진리가 된다.

나는 누구인가?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빠른 것처럼,

나는 누구였고, 앞으로는 누구가 될 것이다.

오직 그것 뿐.
1631 2015-04-15 00:15:34 0
일식집 실시간 [새창]
2015/04/13 12:35:08
하필이면 출출할 때;; 왠 회가 눈앞에 -ㅅ- 맛있겠다...
1630 2015-04-14 17:35:32 1
bgm)나눔(?) 제 1회 오유 롤게문학 대회 [새창]
2015/04/14 11:04:05
- LOL을 끊었다.

전쟁을 멈추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다른 한쪽이 굴복시키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전쟁을 멈추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승리도, 패배도 그 무엇도 아닌.

"에라이 비겁한 새끼야, 열댓살 먹은 애도 너보단 철이 더 들었겠다."

처음 전쟁에서 도망쳤을 때, 이곳은 낯설었다.
낯설다는 말이 무엇이냐하면, 이것이 내가 아니라는 이질감을 느꼈다는 것이 맞다.
도망치지 않는 나, 전쟁에 맞서 그것이 비록 승리를 가져올지, 패배를 안겨올지 한치 앞도 모르는 비극을 겪는 것.
그리고 도망치는 나, 끊임없이 방황하며 내가 내가 아님을 부정해야만 하는 더 거대한 비극.

"네 인생 네 거잖아. 이제 너도 어른이잖아? 왜 아직도 어린애새끼처럼 구냐."

무릇 어른이라 한다면, 주어진 삶의 무게를 지고서 그 책임을 소신껏 등에 업고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고 어린애처럼 떼를 쓰고 싶지도 않다.
그러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고 결국 무엇도 아니었다고 말할 뿐이다.
분명 사람들은 말한다. 이도저도 아닌 줏대 없는 인간아, 그렇게 살아서 뭐할래?

그런 생각들은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록 나는 고통이 무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들을 잊으려는 나는 나를 컴퓨터 책상 앞에 박제시켜 버린다.
LOL을 켜면 신난다. 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부정하는 나와, 내가 부정하는 내가 무슨 차이일지 나는 떠올려본다.
책상 앞에서 헤어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의 존재와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짓는 세련된 현대인의 존재 중 무엇이 '옳은' 것인가?

LOL을 처음 접하고 난 뒤, 오기가 생겨 시작한 것이 재미를 넘어 열정을 갉아먹고 갈망했다.
30레벨을 달성하고 처음 랭크게임을 뛰었을 때,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것이 분했다.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처럼은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인정받는 정도.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사실 이 전쟁의 목적은 단순한 승리를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규칙이고 섭리이며 진리였으니까.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더욱 무자비하고 횡포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계급의 탑을 쌓아가고 쌓아가 승리를 쟁취한다.
오직 그것만이 내 목적이 될 수 있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승리 그것 하나만.

"남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제대로 씻지도 생활하지도 먹지도 않는 새끼가 사람이냐? 짐승이지."

아침 혹은 밤. 중요한 건 일어나는 시간이 아침이고, 자는 시간이 밤이다.
눈을 뜨면 컴퓨터로, 눈을 감고 싶을 땐 침대로.
같이 플레이하는 게임 친구들이 하나 둘 게임을 떠난다.
이유는 다양하다. 학교, 직장 때문에, 연애나 공부, 다른 문제들 덕분에.
물론 다들 상위권 랭크에 있다보니 다들 게임이 조금 질리는 모양이었다.

저마다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식당에서 조촐한 식사를 함께하고, 술자리에서 알딸딸하게 취해 고성도 지르는,
저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엇비슷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지만, 처음으로 나도 그런 자리에 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같은 놈이 그런 걸 한다고? 작심삼일이라고 얘, 말을 말아라."

방 안에 쳐박혀있는 나의 모습은 이제 당연시된 일.
뭔가 사람들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다시 방구석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도망치는 것, LOL을 하는 것 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상위권 랭크에 도전하고, 나는 그들을 보며 말한다.

"상위권 랭크도 별 것 없어요."

달려온 목적에 비하면 이곳은 단순한 애벌레의 욕심이 만들어낸 욕망의 탑에 불과했으니까.
LOL을 보면서 생각한다. 게임을 하는 것도 짜증스럽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죄스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내가 남들처럼 될 수 없다는 절망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게임을 하면서 무뎌져가던 고통의 무게가 다시금 떠오른다는 것을 알기에,
이것을 그냥 단순히 지나가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무엇도 할 수 없는 고장난 자동차를 타고 있는 내가 이 무의미한 전쟁을 참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남을 짖밟고 올라가야만 하며, 그러지 않으면 내가 떨어져야만 하는 약육강식의 세계.
저 높은 탑 위에는 무엇이 있을지 상상을 그리며 그것이 무엇이던 내가 바라는 것 이상이라고 여겼다.
그 작은 희망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이미 거대해진 희망은 모두 거짓이었음을 말해주는 탑의 꼭대기에서 나는 깨달았다.

도망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내가 삶에서 도망친 이유처럼, 이 작은 세상에서 마저도 도망친다면
내가 숨을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드러난 나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보고 싶지도 않다.

세상은 여전히 드러나는 나에 대해서 손가락질 하지만,
나는 이 방구석을 피난처삼아 그들에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 작은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숨길 수 있다.
이름, 나이, 성별, 심지어 성격까지도.

"오늘 바깥에 날씨가 좋아졌던데, 이런 날에 드라이브하면 분위기 짱인데."

아무 것도 없는 내가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도, 패배하지도 않아도 되는 곳.
그런 사소한 규칙에 위배되지도 않으면서, 내가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곳.
나를 속박하는 세상에서 무엇도 나를 속박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LOL을 끊었다.
그러나 이 작은 세상은 끊지 못했다.

// 게임중독이 문제일까? 그렇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일까?
그 사람이 문제일까? 그 사람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문제일까?
재밌는 세상^_^
1629 2015-04-14 16:49:34 0
bgm)나눔(?) 제 1회 오유 롤게문학 대회 [새창]
2015/04/14 11:04:05
11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628 2015-04-14 02:39:31 0
스팀오유그룹초대-23 [새창]
2015/03/29 12:08:58

http://steamcommunity.com/profiles/76561198098146018/

가입부탁드려요
1627 2015-04-12 23:28:22 1
예전 시즌 골드가 더잘하는것 같아요... [새창]
2015/04/12 22:56:08
시즌3가 그랬죠 ㅋㅋ 그당시 골드플레면 정말잘하는 축에 속했음
1624 2015-04-11 19:57:09 9
책 선물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물입니다. [새창]
2015/04/11 17:55:25
단순히 시 좋아한다고 했다가
달달한 시를 읽어보이는 상대에게 뭐라고 해주어야 할지 난감했던 상황이 떠오르네요.

참고로 제가 받았던 시는 달달한 연애와 청춘에 관한 시.
그런데 제가 읽던 시들은 그게 아니었는데..
결국 한 번 펼쳐보고 헌책방에 팔았단 소문이~~~
1623 2015-04-09 20:30:52 0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새창]
2015/04/09 17:03:33
맞아요. 비로소 체감할 정도로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에만 벗어나려는 욕구가 나오죠.
사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중요한 건 원치 않는 선택으로 시작하여 애초에 불합리한 여건을 갖고 시작한 삶에서
비록 쌓여왔던 경험들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고 하더라도,
나라는 존재를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반항하기 시작하죠.
쉽게 정치적 사회적 문제 정도랄까.

사실 따지고보면 모든 건 상대적일 뿐인데, 그걸 꼬집고 다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에겐
극단적인 멸시의 눈초리와 손가락질, 깊은 한숨만이 오고갈 뿐이죠.
이유야 어떻든 그 사람은 부정적이니까.

결국 그 모든 근원적 물음에 가까운 해답은 이성에 있다고 보는데
우리가 무언가를 믿음으로써 상대적인 것을 배척하는 아이러니가 과연 이성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진 않죠.
의심하지 않고서야 해답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해답마저도 의심하는 사람은 바보가 될까요?
피로가 쌓여오니 막상 떠오르는 말들은 많은데 기억이 잘 안나서 말이죠.

왜 그런 말들을 들은 적이 있어요.
강렬한 신념,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진 그 믿음을 깨뜨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요.
자기도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나아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모순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죠.
쉽게 말해서 인정하기 싫어 발버둥치는 인간.

삶이라는 건 결국 개인의 입장에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 혹은 수단으로 보는 시선도 있죠.
모든 것은 삶이라는 거대한 줄기와 연관되어 있는데 과연 그러한 물음을 거치지 않고서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결국 실존철학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그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포기해버리는 것, 아니 배척한다는 표현이 맞으려나요.

자유의지는 가짜이지만, 그럼에도 실존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당연시 여기면서도 분열된 세상에서 이것은 아니고 저것은 맞다고 나누고 있는 상황이니까 뭐.
사회라는 허울뿐인 구조적 모순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틀에 갇혀사는 현대인들에게
그것만큼이나 큰 위로가 되는 것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차피 삶은 희망과 절망 뿐인데, 과거와 미래 사이에 바로 지금 '현재'라는 말만큼 불투명한 것도 없으니,
과거나 곱씹으면서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사람으로 불리며 절망에 허우적대느냐
그래도 살 날은 많으니 그 미래를 위해 희망을 가지며 달려가느냐 둘 뿐이죠.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하던 발버둥치는 건 마찬가지고, 그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는 것이죠.
시작부터 불합리한 강제적 선택이었음을 안 인간이 그 과정만큼은 내가 하겠다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구 말입니다.
그게 무엇이던 간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건 비겁한 선택임과 동시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요.
제가 말하는 의지란 결국 죽음을 기다리는 가엾은 인간의 몸부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고, 의심하고 있기에 그 믿음을 온전히 이어가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는 말로 해석했습니다.
마치 신의 존재유무를 따지는 것처럼, 저마다 주장하는 것이 다르듯, 저마다 가진 개념도 다르듯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모두가 승자가 되는 아이러니입니다.
법의 잣대를 두고 승패를 가릴 수 있는 상황에 패쪽이 '정신승리'한다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됩니다.

쉼보르스카는 단어를 찾아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하였죠.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믿음과 개념, 이것이 가진 모순은 실로 크나 크다는 것을 알고서는 의심병이 도질 수밖에 없더군요.
선택은 나의 몫이니까. 이게 제일 가혹했습니다.
1622 2015-04-08 20:43:47 0
저장글 [새창]
2014/11/21 22:17:37
사람들을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이건 틀린 거다.

천재와 일반인을 나누는 그 경계선처럼 그렇기에 더욱 자신을 천재라 비유하는 것처럼,

사실 세상은 누구나 천재이며 누구나 바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분류로 나눠야만 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일반인으로 어쩌면 바보로 남게 될 것이다.

진짜 머리가 비상한 수학천재는 아니어도

적어도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을 인정해주는 것처럼,

나는 그것을 높이 사줄만 하다고 여긴다.
1621 2015-04-03 05:53:55 0
모스트 바이어런트, A Most Violent Year [새창]
2015/04/03 01:04:58
great!
1620 2015-04-02 17:32: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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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불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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