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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 2015-04-02 17:08: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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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역병의 비수 있던 시절에 '요릭'잡으려고 공속템 올렸으나
첫귀환 여눈의 갈수록 단단해지는 녀석과의 싸움에서 fail하고선 티모를 접었습니다.

여신의 눈물이란 아이템이 그렇게 충격적이어서....
사실 ad공속티모로 전향하여 무라마나 올린 건 함정....
1618 2015-04-02 17:06:14 0
혹시 남미서버 하시는 분? [새창]
2015/04/02 16:21:40
헛..개수? 대낮...부터????

ㅎㄷㄷ
1617 2015-03-29 00:19:58 1
철학함의 기본자세 [새창]
2015/03/28 23:39:50
편견을 깨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죠.
자기가 믿는 그것마저도 편견이었음을 모른 채.
1615 2015-03-28 01:39:59 0
[새창]
결국 믿음이라는 것에 파해쳐보자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으며, 그것만큼 대단한 것도 없죠.

믿음이란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만, 그 믿음이 깨졌을 떄에는 어떻게 될까요?
독재자에겐 자신이 총을 들고 남에게 겁을 주면 따르리란 믿음이,
종교인에겐 자신이 선을 베풀고 신을 섬김으로써 사람들이 구원받으리란 믿음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삶은 아름답다고 여기며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며 늘 찾을 수 있다는 그 믿음 말이죠.

신의 존재론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쉽게 그는 죽었거나 혹은 살아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를 본 사람은 없으며, 오직 믿는 사람들만 존재한기에
결국 가까운 결론은 그가 죽었다고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신이라는 어원을 믿을 信자를 통해 설명하자면,
결국 신이란 우리 자신이며, 우리 안의 자아가 만들어낸 형상화시킨 개념에 불과합니다.
누구의 말도 정답이 아닌 세상에서 결국 추측하는 사람만 난무하고,
어떤 사람의 말이 인기를 끄느냐가 관건이죠.
게다가 우리 사회는 항상 경쟁을 통해 승자만을 따라왔었습니다.
이것이 입증해주지 않나요? 믿음의 모순을.

하지만 믿음을 부정하는 행위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삶을 이변이 없는 한 가능하면 주어진대로 끝까지 살아가길 원합니다.
평균수명 80세, 그래 딱 그정도만 살자 이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허무주의자들이란 멍청이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허무주의자들에겐 그런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뭐 그건 지금 필요한 말들이 아니니까 접어두고.

중요한 건 이 믿음이라는 것마저 모순임을 깨닫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받고 가정부터 사회라는 거대한 틀에 갇혀 지내는 우리가
그 틀을 스스로 깰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지금 1분 1초가 지나는 시점에서
삶은 비참하고 추악하며 더럽고 신은 죽었다고 믿어버리는 이 개념마저도 거짓이 되니까
그걸 깨닫는 사람들에겐 선택할 길이 죽음밖에 없는 것이죠.

누구나 믿음을 갖고, 그 개념이 쌓이고 쌓입니다.
나를 낳아준 생물학적 부모, 내가 있기 전부터 존재한 사회.
자연수 1부터 10까지 카운팅하고 더하고 곱하고 나누고 소숫점을 배우듯.

어떻게 믿었고 왜 믿고 있으며, 그것을 설명하는 것만이 삶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적인 길이죠.
최대한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고 제쳐두며 따지고 따져서
기존의 것들을 다시 정리해서 이건 그렇다라고 말할 수밖에.

남을 화나게 만드는 글만큼 유쾌한 글도 없을 뿐더러,
남을 즐겁게 만드는 글만큼 유쾌한 글도 없죠.
그 차이라고 봅니다.

비슷한 예시로 편견과 선입견이 있죠. 철저하게 내 믿음을 바탕으로 반대의 것을 내치는.
위치에 따라 다른 상관관계.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보여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말을 아끼거나, 어쩌면 지나치게 내뱉어보거나.

무엇도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재밌죠.
1614 2015-03-25 08:00:21 0
[새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니께서 당황하셨을듯 중년의 자아찾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613 2015-03-25 04:28:22 0
저장글 [새창]
2014/11/21 22:17:37
뭐라고 말해주어야 겠거늘, 남들과 똑같이 말하라.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를 떄, 공감하는 심정을 그에게 토로하라.
뭐라고 해주어선 안되거나 그러지 못할 때, 비로소 침묵하라.

말하지 않아도 그러고 있잖아?
1612 2015-03-25 04:26:04 0
감사하다는데 불쾌할수도 있다. [새창]
2015/03/24 17:09:08
요구하는 가치의 값x가 커질 수록, 감사함은 줄고, 작아질 수록, 감사함은 커진다는 말씀이시군요.
0에서 시작되는 요구의 가치가 대하는 사람의 친밀도에 따라 다르듯,
친밀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연 요구가치가 -까지 아니, -일 수밖에 없을 수도.
가령 거리에 지나가는 행인에게 붙잡아 2만원만 밀려달라면 선뜻 빌려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빌려준다면 오히려 더 감사하겠네요.
반대의 예로, 이용하고 사기치려는 목적으로 요구가치가 높아지면 당연 감사함은 -를 상회할 수밖에.
1611 2015-03-25 03:09:12 0
애초에 우리는죽은것아닐까? [새창]
2015/03/24 07:17:13
내일은 없다고 살진 못하겠고
내일은 또 오니까 야속하고
어제도 그래서 더 비참하고 내일도 그럴 거라니 더 속상하고
이미 주어진 사형선고 앞에서 발버둥 쳐보니까 뭣도 안되고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은 정해졌고
나는 왜 남들과 다른지 부모만 원망할 뿐이고
그러니 오늘이 지나가 버리고
차라리 지금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고
애초에 이런 생각을 안했으면 싶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밉고
남들과 비교하니 그러지 못하는 내가 바보같고
또 그들을 보니 가식인 것 같아 허망하고
몸은 피곤하니 잠은 자야겠고
인생은 엿같고 생각은 하는데 하기 싫고
왜 살아야 하는지 그렇다고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뭐가 옳은 건지도 모르겠고....

사실 근거없는 언행은 난해하다고 하죠.
오직 던지고 지켜보고 왜냐는 질문만 할 뿐.
그게 한 발자국 물러나는 태도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세상이 지옥같지 않나요?
"왜가 중요한 거야. 그러니까 잘 찾아봐." 라고 신이 말하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재밌어요. 정말 그렇다면 그를 엿맥이고 싶으니까.
1610 2015-03-25 02:57:00 0
저장글 [새창]
2014/11/21 22:17:37
내가 소중하면, 너도 소중해야 하고, 네가 소중하면 우리가 소중하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소중하더라.
단지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가능하면 피해를 보고싶지 않기에, 딱히 피해를 준다는 생각도 들지 않더라.
허황된 이상일 지라도 내가 너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우리는 모두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럼 너랑 내가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제3의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으면?"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게 좋다고 봐. 그것까지 관여할 건 아닌데."
"아니지, 그건 우리가 나서서 구해줘야 돼."
"하지만 왜 우리가 그것까지 도와줘야 돼? 그러다 피해를 입으려면 어떡하려고."
"도와주는 게 왜 피해가 미치지? 돕는게 당연한 거 아냐?"

누군가를 도우며 사는 삶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고, 내가 그러는 걸 당연시여겼다.
나는 그들에게 나같은 삶을 살라고 말하자 자신은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치더라.
너는 왜 돕지 않지? 나는 이렇게 돕는데? 따지자, 이제와서 왜 그러지? 나도 돕는데? 답하더라.
그러면 나는 묻지말고 그냥 하던 거나 하자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됐다.
나도 돕지 말아야겠다. 결심하자 사람들이 왜 그만두냐고 오히려 따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선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그것이 당연한 거라는 믿음의 장벽앞에 서버리고 말았다.
무엇이었던 간에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요소였음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은 실존하지 않는, 실체가 아니라고 여겼다.

"누군가를 돕자 정말로 내가 피해를 보더라."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피해를 입는다고."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할까?"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도와주는 것밖에."
"그럼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도 모르지. 그냥 오지랖이 될 수도 어쩌면 정말 운이 좋아서 영웅이 될 수도 있는 거지."

모든 걸 희생하고 영웅으로 남느냐, 두려움에 그만두느냐.
그런데 희생이 옳은 거냐고 묻는댜면 누구나 희생은 좋지 않은 거라고 말한다.
'때에 따라서'란 경우의 수를 두어 모호한 대답만 할 뿐.
우리 모두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나의 행동을 따르며 자신들도 그렇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니 기가 찼다.
내가 행동을 그만두자, 그들은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숟가락만 올려놓은 주제에 되려 쏘아붙이는 코미디다. 그들이 단순히 이상한 거라고 치자.
그럼에도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단지 상상하고 어떻게 됐음 하고 바랄 뿐.

나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누군가가 비록 오지랖이더라도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그만두고 오지랖을 떨지 않더라도 그들은 친절한 도움을 받는다.
아마도 나처럼 혹은 나를 따랐던 사람들처럼 착해지고 싶어서 한 행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란게 보다 정확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돕겠지만, 순간 내가 정말 착하고 순수하기에 그랬던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저 앞에 또 다른 누군가가 거리에 나서 나와 똑같이 말한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이것 마저도 오지랖일 거라는 생각에 나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거창한 믿음은 희망과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만, 그 믿음이 깨졌을 때 엄청난 공허함을 안겨준다.
나는 당연히 좋은 행위라고 여겼지만, 그것이 다른 의미에서 그리 좋은 의미만은 아니였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부추기는데 나는 단지 옳은 것이라고 여기며 무시하고 다시 나아가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그리고 멈춰서서 에너지를 상실해가는 내가 잘못인가?
단순하게 핑계를 붙이는 거라면 왜 사람들은 나처럼 나서지 않는 거지? 내가 나서고 있기 때문인가?
따지고보면 어차피 누군가가 저기 외치고 있는 사람처럼 내가 아니어도 대신해 나서줄 거다.
게다가 나서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나 계속 나타날 거다. 나처럼 그만두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러나 한 신념만을 갖고 꾸준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자니 뭐가 옳은 건지 알 수 없다.

무엇이 옳은 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그렇게 믿는 것뿐이라고...
분명한 건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존재하는 것부터 모순이었던 것이다.
무엇 하나를 없애버려야만이 삶이 가능하다. 결국 정의와 악의를 가리는 기준에서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에,
하나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없애버렸기에 나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둘 그 이상이 존재하는 순간 우리는 멈춘다. 하나를 정할 때까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말하더라.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하나를 정해 삶을 다시 가꾸어 나갈 때, 비로소 성장했다고.
다른 의미로 하나를 버리고 희생하는게 성장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성장엔 항상 희생이 동반한다.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깨닫는다는 표현도 비슷하다)

나를 희생하여 남을 성장하게 했지만, 나도 남의 희생을 통해 성장했다.
모두가 희생하지 않고 사는 방법은 정말 있는가?
그러면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들은 왜 그래야만 하는가?
생명이 소중하자면 저들에게도 그러해야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속이는 거 아닌가?
결국 알아차리지 못하고 속은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내가 속는 걸지도 모른다. 종교에서 말하는 악마, 과연 내가 속는 걸까?
나는 분명히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데. 내가 잘못일까?
그러면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 참혹하다는 것 뿐.

분명한 건 내가 삶이 소중하다고 여겼기에 살인같은 것도 나쁘다고 여기는 믿음일 뿐.
매순간 그러한 충동이 일어나고, 수많은 소설 영화에서 드러나듯,
악은 인간 본연이 지닌, 따라다니는 그림자와같이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도, 느낄 수도.
그것마저도 이해해보려 한다면,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밖에 설명할 수 없는데,
그러자면 누구도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왜 이런 삶이 시작됐는지 찾을 수 없어 또 믿는 수밖에.
아이러니한게 남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내 생명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도,
나도 남도 소중하지 않는 내일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으며,
단순히 세상에서 사회라는 틀이 생명은 소중하다고 가르치는 것에 의해서 여겨지는 것도.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밑바탕을 깔아버리는 것도 다 뭐....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럼에도 믿어야 하는, 그래서 더 가혹하다는 말밖에.
아무래도 극과 극의 차이니까, 중간점에 머무르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라 소개해야하나?
자본주의 앞에 노동이 당연한 것처럼, 그냥 당연하다고 여기며 천국의 맛 사탕을 쪽쪽 빨아재끼는 것밖에.
어차피 죽음 앞에 공평한 인생이지만 왜 금수저 동수저가 나뉘어야 하는지에 의문과
그것이 왜 그게 금수저란 믿음이 생겼는지 묻다가 왜 다들 겁쟁이가 되어가는지 물어보고
그런 모호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인, 그러다가 그 목적마저도 빼앗기는게 인생이던가.

어느 것을 상상하더라도 우울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웃어야만 하는 세상이 즐거울 따름.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미 시작되어서 울고 끝은 멀었으니까 웃어야하나?
80의 노인이 글을 본다면 그도 웃어야 하나? 아직 오늘은 아니니까?
1609 2015-03-23 06:07:37 0
스포??스페이스 오디세이를 40분 봤는데요 모르겠어요 [새창]
2015/03/23 01:42:09
왜요 타이타닉처럼 유명한 영화도 아직 안본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일부러 안본다고 유명하던데 ㅎㅎ
저도 중간에 많이 끊는 편이지만 보고싶은 건 끝까지 다 보는 편이거등여 ㅇㅅㅇ
편히보세여 ㅋㅋㅋ 집착갖지맒고
1608 2015-03-23 01:08:09 0
이제 롤 안할껍니다. [새창]
2015/03/22 22:05:11
균형은 유지되어야 하기에 반대와 뒷북의 수를 맞추고 추천을 하나 올려드렸습니다.
1607 2015-03-23 00:54:23 0
[새창]
그렇네요 정말.
정보화 덕분에 간소화되었던 이유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지금이군요.

이미지 형상화를 직접 행하는 것보다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형상을 접하는 것이 확실히 빠르긴 하니까.

그러고보니 결국 죽어가는 건 예술 뿐이겠네요.
영화 이디오크러쉬에서 엉덩이만 보고 극장에서 껄껄 거리는 장면이 떠오릅니다...ㅋㅋ

표현력의 부재가 바로 설명없이 이미지로 대체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군요.
아... 그런 거였군요. 나 또한 그랬다는 생각밖에...
1606 2015-03-23 00:47:00 0
금연하고 싶은 사람은 어떨 때 자유로울까? [새창]
2015/03/22 13:34:36
그 의지마저도 거짓이라고 인정하게 된다면 설명이 가능하게 되죠.
내가 실존하는 이유가 단지 그러한 것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면,
내가 존재해야 될 이유가 없다는 깊은 허무의 딜레마가 옵니다.

결국 내가 담배를 태우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남의 것'이었고,
내가 담배를 태우게 된 요인들 중에서 '남의 것'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성장함으로써 하나의 상징처럼 나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 나는 그 일부를 나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순간에 직면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고, 무엇이 나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의문만 듭니다.
담배를 태우지 않던 내가 순수했던 건지, 담배를 태우건 아니건, 나 자체로 순수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내가 순수하지 않았던 것인지 말이죠.
어떤 것이 나라고 정해놓지 않는 한, 딜레마에 빠질 뿐이죠.

우리에게 의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굳건한 믿음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담배를 태우는 사람에겐, 다른 요인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져서,
이 굳건한 믿음에 금이 가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그 이유가 무엇이던, 지금 상황이 뒤틀려야하는 이유가 되어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그것을 끊어버리고, 또 행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겪는 고통의 무게가 다르듯, 그들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가 동일하지 않기에,
선택이라는 것이, 그 기준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이 비록 착각일 지언정 해방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16 철없는 학생이 반항의 수단으로 담배를 선택하는 것처럼,
40이 되어 체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담배떄문이라 여긴 사람이 끊겠다 말하는 것처럼,
어느 사람이건 자기가 피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기에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죠.
담배 뿐만 아니라, 수많은 것이 그렇다고 여깁니다.

사실 시작도 끝도, 내 멋대로 할 수 없는 삶에서,
다른 거라도 내 멋대로 시작하고, 내 멋대로 그만두고, 내 멋대로 해봐야지.
그런 거마저 하지 않는 삶이 가장 불행한 삶이라고 들었던 적이 있어요.

다른 예로 낙태 하지 마라, 자살을 하지 마라. 윤리적인 문제까지 끌여들여서 말하는 거죠.
그런 우리들이 결국 다른 거대한 틀에 속박되어 행하지 못하는 모습과
허구 속 주인공들을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모습은 참 모순적이지 않나요?

생각하는 나, 소프트웨어는 행동하는 나, 하드웨어 없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던 거였죠.
하드웨어를 만든 건 쉽게 부모로 보지만, 나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건 도대체 누구일까요?
크나 큰 모순입니다.
1605 2015-03-22 23:49:23 0
철학의 끝은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이다 [새창]
2015/03/22 14:28:04
요즘 사회 문제 중 하나로, 자기 사유를 갖지 않는 현상에 대해
작성자는 오히려 비판하려는 메시지를 보내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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