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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4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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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재밌는건 올해 경향에서 나온 4.3에 대한 뉴스는 조금 다르네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032108425&code=990100&s_code=ao154
발췌
-제주 4·3사건은 미 군정 치하이던 1948년 4월3일, 좌익정당인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군과 경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이 최소 3만명, 최대 8만명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을 말한다. 남한 전역은 당시 5월10일로 다가온 단독 총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경향신문 1948년 4월7일자는 ‘제주도에서 또 좌익 폭동, 사망 13명, 부상 39명, 물적소비도 막대’라는 제목으로 제주도 4·3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 4일 만에 처음 보도가 된 것이다. 신문은 제주도에서 좌익계열의 폭동이 일어났다며 미 군정 경무부 발표문을 인용해 사건 개요와 피해 상황을 전했다. 발표문은 공산계열의 파괴적, 반민족적 분자들의 지도 아래 총기, 수류탄, 그외 흉기를 가진 무뢰배들이 작당하여 경찰관서, 기타 관공서 습격, 경찰관과 그 가족의 살해, 선량한 동포 살해, 방화 폭행과 약탈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고 덧붙였다. 훗날 남로당 제주도당은 남한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뜻에서 350여명의 무장대를 조직해 경찰지서를 습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미 군정 경무부가 집계한 피해 상황은 경찰지서 습격 11곳, 경찰 사망 4명, 부상 7명, 행방불명 3명, 경찰 가족 사망 1명, 공무원 사망 1명, 부상 2명, 전화선 절단 4곳, 도로·교량 파괴 9곳이었다. 조병옥 미 군정 경무부장은 김정호 공안국장을 현장에 파견하는 동시에 전남에서 응원 경찰대를 급파해 진압 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당시는 정부 출범 전이어서 군대가 없고, 국방경비대와 경찰이 치안유지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과연? 어째 4일만에 발표한 국내언론과 미군정이 발표한게 다르네요(다른 사건인가?)
제가 잘 모르겠으니 작성자분께서 설명좀 해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