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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0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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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지 않으면 머리가 아니라 대가리가 된다고, 내 고등학교때 담임선생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대가리와 머리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대가리는 짐승의 머리를 일컫는 말이란다.
그러니까, 공부 안하고 잉여인간으로 남으면 금수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된다는 그런 우회적인 표현이다.
...그냥 짐승새끼 되기 싫으면 공부해라 그렇게 돌직구를 던졌어도 될 법하지 않았나...
우리 담임선생님은 그랬다. 어찌보면 은사님께 이런 말씀을 올리는 것도 그렇지만 생긴것만 본다면
진짜 세상 막살게 생겼다. 경찰청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형사 느낌?
그런 정도의 비주얼이지만 담당과목은 무려 화학이였다.
우리가 열심히 화학식을 연성하고 있으면, 선생님께서는 그저 인자한 얼굴로 다가오셔서 난감해하는
우리들의 구렛나룻을 한쪽씩 붙잡고 '어디서 이런 새끼들이 내 제자들이라고 왔냐' 라는 말로 우리의
자존감을 팍팍 낮춰줌과 동시에 화학식을 푼 애들이야 그럭저럭 넘어갔어도 문제를 새로 창조하는 수준의
학생들은 불러다놓고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내가 지금도 이과를 저주하는 이유다.
아무튼 그런 선생님의 가장 큰 특징은 구렛나룻을 잡고 흔들고 일장연설을 하고 했어도 매는 절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시 '저 떡대를 봐라. 자기도 아는거지. 저 덩치로 우리 때리면 우리가 죽어나간다는 걸' 하며 낄낄대곤 했다.
선생님은 때때로 우리를 공부시켜놓고 항상 어디론가 가곤 했다.
저새끼 또 땡땡이 친다고 볼멘 소리를 했지만 사실 나는 이과에는 굉장히 흥미가 없었기에
때로 오는 그 시간이 참 좋기도 했다.
학생들이 가끔 선생님보고 어디가냐고 물으면
"니네 보기 싫어서 쳐 자러간다 이새끼들아!" 했고, 우리는 "에이~" 하면서 웃고, 그게 다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뭐, 그때 선생님은 땡땡이치러 간게 아니라 암투병중인 사모님이
학교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해 있어 틈날때마다 찾아간다는 것이였다. 그렇다고 수업 도중에
나갈 사유가 되냐고 묻는다면, 이 이야기는 안할 수가 없는데...
선생님은 그때까지도 삐삐를 가지고 다녔다.
사모님이 평소보다 조금 더 아프거나 상태가 이상하면, 간호사가 선생님의 삐삐로 연락을 하곤
했다는 것인데, 내가 학년이 올라가면 갈 수록 선생님은 교단에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고
내가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를 치르고 난 뒤에 선생님은 더이상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구렛나룻을 잡고 "이 폐기물놈들아" 하고 웃는 일도 없어졌고,
일장연설을 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저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는 한 선생님이 되었다.
나중에 학적부를 떼러갔을 때 나는 선생님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마치 뭐가 하나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업무를 보고 계셨고 나는 그 위화감 드는
조용함에 내가 알던 선생님이 아닌 것 마냥 모른척 지나올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