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1
2017-11-16 21:25:30
2
송상국 일병은 손에 쥔 수류탄을 한번 보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북한군을 한번 봤다.
'죽어, 죽을거야. 아니, 내가 죽을거야. 쟤네가 죽고, 내가 살면, 람보처럼 멋지게!'
송상국 일병의 손에 쥐인 수류탄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폭발 직전의 감정처럼 그의 마음과 공명하는 듯
떨리는 수류탄은 사실 오래전 안전핀이 뽑힌 상태였다. 안전클립만 제거하고 던지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누가 끝나도
끝나는 상황이였다. 던지면 그만이였다. 그러나 쉽사리 손이 떼어 지질 않았다.
수류탄 투척은 굳이 훈련병때가 아니더라도 수없이 해 왔다.
바로 옆의 동료... 자신의 선임병이였던 김희수 상병이 죽어갈 때도 두산베어스의 김성배처럼 언더핸드로 던지며 수많은 북한군을
사살했던 그 수류탄 투척이 지금에 와서야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그때와 지금과 다른 것이라면, 내가 완전히 죽을 상황에 처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 아닐까?
그런 송상국 일병의 생각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총번까지 외울만큼 애정을 가졌던 k2c 소총의 탄알집은 없는것을 떠나 탄알집 자체를 모두 잃어버린지 오래고,
착검돌격을 하고 백병전을 하기까지는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필 왜 전방이냐! 그것도 철원 아오 이 씨!'
송상국 일병은 언론과 군 수뇌부를 저주했다.
북한군이 쳐들어 오기 전 자주포와 MLRS가 북한 보병의 진격로를 차단해 줄 것이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던 그들이였다.
그러나 현대전은 변수가 너무 많았고, 국지도발로 시작된 침공은 결국에 전면태세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나는 아직 스물 한살인데...!'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1년이나 넘게 했으니 이제 어른이 다 되었고 전역하면 나만의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품었던 그런, 그러나 모든것은 부질없이 이제는 '나는 어린데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해?' 하는
어리광 섞인 투정만이 남아있다.
멀리서 거센 사투리 섞인 외침이 들려온다 '남조선 국방군 아새끼들이래 조지라우야!' 그런 외침이 들려오는 가운데
'아 제발, 살고싶은데 어떻게
사과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국방일보를 믿은 내 잘못이지. 엄마는... 날 걱정할까.
동생은 좀, 그만 나대고 집에나 일찍 들어갔으면...!'
이제는 송상국 일병의 선택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안전클립을 제거하고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몰려오는 북한군 보병을 향해 던졌... 으나 타이밍 좋게 날아온 AK-74U 소총의 탄환에 하릴없이 팔뚝이 터져나가고, 그의 몸은 퍽 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참호선 아래로 힘없이 몸이 무너져 내렸다.
송상국 일병은 실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내장이 쏟아지는데, 주워 담을 힘도 용기도 없었다. 잠이 왔다.
잠이 들면 모두 꿈이겠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한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