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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12: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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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강희석 대위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상관 김정필 대령에게 따지듯 물었다.
김정필 대령은 아무말이 없었다. 단지, 깊은 신음을 내며 눈을 천천히 감을 뿐이였다.
"그냥 감기 바이러스도 아니고, 독감 바이러스를 이 지역 전체에 뿌리겠다고요? 그건 비인도적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문명지의 개척이지 종족의 말살이 아니란 말입니다!"
"꿈같은 이야기를 하는군 중대장. 필연적으로 모든 문명의 시작은 한 종족의 말살에서 비롯되는 것이야.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이 시작될 수 없다네. 그렇게 말하는 자네도 항상 이 지휘소에서 중대원들을
지휘하고 때로는 총을 들고 앞에 나가 싸우지 않는가."
화성 C 섹터에 마련된 지구연합군 대한민국군 29기갑사단 67 전차대대 지휘막사는 깊은 침묵과 신음에 잠겨있었다.
화성 테라포밍, 이른바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화성 식민지를 개척하는 일은 예상치 못했던 화성인의 등장과 함께
뜻밖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구인보다 약간 떨어지는 기술력을 가진 화성인은, 그러나 많은 수와 결속력으로
번번히 인간과의 전쟁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전투를 치러왔다.
지구연합군 사령부는 핵무기와 궤도폭격, 상륙전으로 상황을 바꿔보려 했지만 숫자도 많은데다가 번식력과 성장이
인간의 네 배를 훌쩍 뛰어넘는 화성인은 숫자로 인간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인은 우연한 기회에
감기바이러스가 화성인의 몸에 침투하게 되면 인간과 달리 수 분내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점을 살려 폭탄에 감기바이러스를 실어 융단폭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생화학전입니다! 과거 지구의 악독한 테러범들도 생화학무기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지지부진하게, 그래... 자네가 말하는 그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지루하게 전투를 이끌어
더 많은 인간이 죽고 더 많은 함선이 추락해야만 만족할텐가? 화성인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는게 비인도적이라고?
그렇다면 이 전쟁에 자원해 가족과 연인을 두고 온 지구인들은 어떤가? 유로파와 타이탄의 공전주기에 맞춰
떠있는 저 이순신함과 문무대왕함이 얼마인줄은 아나? 얼마전 추락해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함은!"
"우리는 식민지 건설을 위해 선택을 해서 이곳으로 온 겁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러지 않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함선과 우리 무기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우리는 충분히 그런 비용과 희생자를 내지 않을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침략을 하지 않았다면요! 그러나 저 화성인들을 보십시요! 선택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들은 막아낼 뿐이고, 그러지 않고서 평안하게 지낼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유없는 침략으로 비겁한 수를 써가며 식민지를 개척하는 침략자라고 선동하는군 중대장?"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시 상관 명령 불복종에... 항명이라. 게다가 적군을 비호하는 태도라. 자네는 혹시 뭇 인권단체처럼
화성인의 편으로 돌아서고 싶은건가? 그렇다면, 자유롭게 그러도록 하게. 하지만 군형법에 의거한 총살형에서
까지도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군."
"지금이라도 좋으니... 제발...! 폭격을 한번만 더 재고할 수는 없겠습니까?"
"난 자네가 좋네. 이렇게까지는 하고싶지 않았어. 자네가 죽은 내 친구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에서는 아니였다네.
아버지를 닮아 정의롭고 국가와 지구에 헌신하는 모습이 좋았지. 그러나 기억하게. 비열하고 비인도적인 방법이
자네의 월급을 보장하고, 계급을 보장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이봐!"
김정필 대령이 고갯짓을 하며 누군가를 크게 부르자, 밖에서 대기중이던 경비병력 두 명이 들어와 강희석 대위의
양 팔을 붙잡았다. 그들은 정중하지만 강한 힘으로 대위의 팔을 뒤로 오게 만들어 줄을 묵었다. 그가 약간의 저항을
하며 분노와 슬픔에 찬 표정으로 김정필 대령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며 뒷짐을 지었다.
"일주일간 구금하도록. 자네가 나에게 항명하고 화성인의 편을 든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네. 이게 내가 해주는
최대한의 호의일세.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강희석 중위는 끝까지 그를 노려보며 입을 다문채 경비병력들에게 끌려나갔다.
잠시 후, 멀리서부터 북울리는 듯한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전등위에 있던 먼지가 스스스-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지휘막사가 조금씩 흔들렸지만, 소리와 진동은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았다. 밖에서 뭔가 소리를 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김정필 대령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