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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0 2012-12-05 10:05:54 13
박사모에 가서 6억의혹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명해보라고 했더니 [새창]
2012/12/05 11:23:56
그들에겐 종교 니까요.
그들은 증거를 보고 싶은게 아니라 증거를 들이대다 포기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고 싶은 거겠죠.
3209 2012-12-05 09:51:25 23
죽이는 언론(하) [새창]
2012/12/05 09:36:36
유명한 '대통령 못해먹겠다' 발언 파동도 있었죠.
하지만, 그 실제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략
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아 노무현은 5월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
일단의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대통령 일행의 차량 행렬을 막으면서 소란이 벌어졌다. 노무현은 이날 어렵게 묘역에서 참배할 수 있었다.

5월 21일 5ㆍ18기념재단이사장 강신석 목사와 정수만 유족회장 등 5ㆍ18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이 망월동 묘역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사과하고자 청와대를 방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념식과 참배를 마친 뒤 후문으로 나와 전남대 강연을 위해 차에 오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자리가 자리였던만큼 백악실(청와대 접견실 ㅡ 필자) 내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다소 어색하고 무거웠다.
강 목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번 기념식에서 불미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의도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런 결과가 나타나 마음이 아픕니다. 언짢은 것이 있으시면 푸시고….”

간곡한 사과의 말이 건네졌다.

“그런 것은 아니고…”라며 노 대통령이 잠시 말을 받았다.
강 목사는 ‘젊은 학생들이 혈기가 있어 다소 실수가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너그럽게 생각하셔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라며 재차 선처를 부탁했다. 노 대통령은 “(마음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분이 상하고 안 상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라며 길게 말을 이어갔다.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고충을 호소하는 노 대통령의 말이 이어지자 접견실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당한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언급할 수 있는 발언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은 잠시 후 “모두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하니 이러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듭니다” 라는 다소 직설적이고 거친 화법으로 자신의 심정을 토해냈다. (주석 10)

노무현의 이 발언이 앞뒤 잘리고 변조되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로 언론에 보도되고 족벌신문과 야당으로부터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에 대한 인격 모독의 언사까지 공공연하게 신문 방송에 보도되었다. 이 ‘발언’은 한때 세간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은 실제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신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저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제가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고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지고, 말은 위엄있게, 행동은 기품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대통령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못 했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 있어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어디 행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주석 11)

노무현은 다른 책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말이 문제였다. 나는 구어체 현장 언어를 구사했으며 반어법과 냉소적 표현을 즐겨썼다. 원래 그렇지는 않았는데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이런 언어 습관이 생겼다. 그 때는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이 필요한 시대였다. 언로가 막혀 있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는 데는 그런 어법이 효과가 있었다. 야당을 할 때에도 억울한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격앙된 때가 많아서 그렇게 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고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언어습관을 고쳤어야 했다.(주석 12)

권위주의적 대통령 문화는 극복해야할 문제였지만, 국민들에게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일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나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2003년 5월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NEIS 시행과 관련해 전교조와 인권위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승만과 군사독재자들의 폭군형 권위주의와 민주화운동을 지도하면서 쌓인 민간정부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적인 권위에 식상해온 국민과 언론은 탈권위주의 지도자를 원했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난 정치사회적 배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의 탈권위주의적 언행, 구어체 언어에 대해 금방 비난이 쏟아졌다. 언행이 가볍다, 감정적이다, 즉흥적이다 등의 비난이었다. 탈권위주의와 ‘맛사지’되지 않은 말을 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말하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세뇌된 이중성’이였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발언의 현장에 있었던 서갑원의 증언이다.

이날 터져나온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푸념은 일종의 감칠맛 나는 사투리성 표현이었어요. 정말 힘들어 때려치우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시골에서 ‘위에! 힘들어 정말 죽겠네’ 하는 식의 생활적인 표현을 하신 것인데…. 그리고 대통령의 그 말씀이 있었을 때 참석자들은 대통령의 그런 표현에 모두 파안대소하며 웃고 넘겼어요. 그 전까지는 분위기가 조금 딱딱하고 무거웠는데 오히려 그 발언 한 마디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했어요. 언론이 이런저런 정황을 무시하고 오직 그 대목만을 강조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게 파장이 컸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주석 13)

이것이 노무현의 발언이 아니고 독재자나 권위주의 대통령의 말이었다면, 족벌신문들은 위트, 유모어, 해학, 여유, 넉넉함, 설득력 ‘분위기 맨’ 등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썼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이 약점은 정말 집요하게 공격했다.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비틀어 보도하고 인용했다. 현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던 말도, 언론에서 앞뒤를 잘라내고 보도하면 아주 품위 없는 이상한 말이 되어버리곤 했다. (주석 14)

노무현은 천성적으로 위선이나 가식, 권위주의를 싫어한다. 소탈한 성격, 평민의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국무회의실에서 손수 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도 한 사례이다. 다시 서갑원의 증언이다.

언젠가 백악실(청와대 본관, 10인 이하의 손님이 방문할 때 사용하는 방)에 나온 대통령께서 의자에 앉으시더니 ‘왜 이렇게 내 의자는 높게 해놓았느냐’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참모들이 일부러 대통령의 의자만 조금 높여 놓은 것으로 생각하고, 의자 높이를 다른 자리 의자와 맞춰 낮추라고 했어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대통령은 또 ‘손님들과 같아야지 내 것만 높아서야 되겠느냐 그러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하시더군요. (주석 15)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399417
에서 퍼옴
3208 2012-12-05 09:51:25 55
죽이는 언론(하) [새창]
2012/12/05 13:11:27
유명한 '대통령 못해먹겠다' 발언 파동도 있었죠.
하지만, 그 실제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략
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아 노무현은 5월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
일단의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대통령 일행의 차량 행렬을 막으면서 소란이 벌어졌다. 노무현은 이날 어렵게 묘역에서 참배할 수 있었다.

5월 21일 5ㆍ18기념재단이사장 강신석 목사와 정수만 유족회장 등 5ㆍ18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이 망월동 묘역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사과하고자 청와대를 방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념식과 참배를 마친 뒤 후문으로 나와 전남대 강연을 위해 차에 오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자리가 자리였던만큼 백악실(청와대 접견실 ㅡ 필자) 내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다소 어색하고 무거웠다.
강 목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번 기념식에서 불미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의도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런 결과가 나타나 마음이 아픕니다. 언짢은 것이 있으시면 푸시고….”

간곡한 사과의 말이 건네졌다.

“그런 것은 아니고…”라며 노 대통령이 잠시 말을 받았다.
강 목사는 ‘젊은 학생들이 혈기가 있어 다소 실수가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너그럽게 생각하셔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라며 재차 선처를 부탁했다. 노 대통령은 “(마음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분이 상하고 안 상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라며 길게 말을 이어갔다.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고충을 호소하는 노 대통령의 말이 이어지자 접견실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당한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언급할 수 있는 발언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은 잠시 후 “모두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하니 이러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듭니다” 라는 다소 직설적이고 거친 화법으로 자신의 심정을 토해냈다. (주석 10)

노무현의 이 발언이 앞뒤 잘리고 변조되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로 언론에 보도되고 족벌신문과 야당으로부터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에 대한 인격 모독의 언사까지 공공연하게 신문 방송에 보도되었다. 이 ‘발언’은 한때 세간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은 실제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신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저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제가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고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지고, 말은 위엄있게, 행동은 기품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대통령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못 했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 있어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어디 행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주석 11)

노무현은 다른 책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말이 문제였다. 나는 구어체 현장 언어를 구사했으며 반어법과 냉소적 표현을 즐겨썼다. 원래 그렇지는 않았는데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이런 언어 습관이 생겼다. 그 때는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이 필요한 시대였다. 언로가 막혀 있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는 데는 그런 어법이 효과가 있었다. 야당을 할 때에도 억울한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격앙된 때가 많아서 그렇게 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고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언어습관을 고쳤어야 했다.(주석 12)

권위주의적 대통령 문화는 극복해야할 문제였지만, 국민들에게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일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나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2003년 5월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NEIS 시행과 관련해 전교조와 인권위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승만과 군사독재자들의 폭군형 권위주의와 민주화운동을 지도하면서 쌓인 민간정부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적인 권위에 식상해온 국민과 언론은 탈권위주의 지도자를 원했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난 정치사회적 배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의 탈권위주의적 언행, 구어체 언어에 대해 금방 비난이 쏟아졌다. 언행이 가볍다, 감정적이다, 즉흥적이다 등의 비난이었다. 탈권위주의와 ‘맛사지’되지 않은 말을 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말하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세뇌된 이중성’이였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발언의 현장에 있었던 서갑원의 증언이다.

이날 터져나온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푸념은 일종의 감칠맛 나는 사투리성 표현이었어요. 정말 힘들어 때려치우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시골에서 ‘위에! 힘들어 정말 죽겠네’ 하는 식의 생활적인 표현을 하신 것인데…. 그리고 대통령의 그 말씀이 있었을 때 참석자들은 대통령의 그런 표현에 모두 파안대소하며 웃고 넘겼어요. 그 전까지는 분위기가 조금 딱딱하고 무거웠는데 오히려 그 발언 한 마디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했어요. 언론이 이런저런 정황을 무시하고 오직 그 대목만을 강조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게 파장이 컸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주석 13)

이것이 노무현의 발언이 아니고 독재자나 권위주의 대통령의 말이었다면, 족벌신문들은 위트, 유모어, 해학, 여유, 넉넉함, 설득력 ‘분위기 맨’ 등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썼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이 약점은 정말 집요하게 공격했다.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비틀어 보도하고 인용했다. 현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던 말도, 언론에서 앞뒤를 잘라내고 보도하면 아주 품위 없는 이상한 말이 되어버리곤 했다. (주석 14)

노무현은 천성적으로 위선이나 가식, 권위주의를 싫어한다. 소탈한 성격, 평민의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국무회의실에서 손수 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도 한 사례이다. 다시 서갑원의 증언이다.

언젠가 백악실(청와대 본관, 10인 이하의 손님이 방문할 때 사용하는 방)에 나온 대통령께서 의자에 앉으시더니 ‘왜 이렇게 내 의자는 높게 해놓았느냐’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참모들이 일부러 대통령의 의자만 조금 높여 놓은 것으로 생각하고, 의자 높이를 다른 자리 의자와 맞춰 낮추라고 했어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대통령은 또 ‘손님들과 같아야지 내 것만 높아서야 되겠느냐 그러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하시더군요. (주석 15)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399417
에서 퍼옴
3207 2012-12-05 09:31:36 2
대선이 시작되었습니다(일본) [새창]
2012/12/05 09:28:12
이제 표가 안전(?)하게 개수되길 빌어야지
3206 2012-12-05 09:31:36 22
대선이 시작되었습니다(일본) [새창]
2012/12/05 11:07:24
이제 표가 안전(?)하게 개수되길 빌어야지
3205 2012-12-05 09:29:22 2
솔직하게 말해보자...우리.. [새창]
2012/12/05 09:19:03
병신이란 소리죠? 대통령 못 될꺼니까
3204 2012-12-05 09:29:22 14
솔직하게 말해보자...우리.. [새창]
2012/12/05 13:47:27
병신이란 소리죠? 대통령 못 될꺼니까
3203 2012-12-05 09:28:43 0
이 아저씨 누군지 알면 썩은 사람 [새창]
2012/12/05 09:21:23
김구라?
3202 2012-12-05 09:28:14 6
동물계 찌질이 jpg [새창]
2012/12/05 09:22:37
1 크롱이는 크롱크롱 ㅎㅎㅎ
3201 2012-12-05 09:26:02 49
이땅에 새로운 신흥종교 탄생..... [새창]
2012/12/05 09:09:02
1 억지로 그렇게 갖다 붙이는 거보니까 찌질하고 졸렬해 보이는 군요.
3200 2012-12-05 09:26:02 191
이땅에 새로운 신흥종교 탄생..... [새창]
2012/12/05 12:29:21
1 억지로 그렇게 갖다 붙이는 거보니까 찌질하고 졸렬해 보이는 군요.
3199 2012-12-05 09:22:16 0
미래에서 온 택배 [새창]
2012/12/05 09:09:27
여야가 잘 합의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댓글달라 그랬는데 작성자가 시간을 잘 못본거였어 ㅎㅎㅎ 쪽팔리라고 추천
3198 2012-12-05 09:20:56 56
“궁정동 안가 불려간 여성 200명 넘었다” [새창]
2012/12/05 09:09:58
제일열받았고 안타까웠던 것이 그떄 잘나가던 신인 탤런트 분이계셨는데, 결혼하셔서 신혼이었는데, 박정희가 기어이 불러내서 남편까지 들먹이며 협박했다고 하죠. 결국 수청을 들었고 외국으로 쫓겨가섰다고 하죠. 남편분은 홀로 한국에 계시고. (뭐 그때도 한국으로 다시 발 붙일 생각하지 마라 그러고 보낸 거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독재자를 지금 몇몇 어르신들이 열광하는게 정말 한쪽밖에 못 보셔서 그런듯 합니다. 그나마 그 본 한쪽도 결국다 거짓말로 점철된 우상화지만...
3197 2012-12-05 09:20:56 182
“궁정동 안가 불려간 여성 200명 넘었다” [새창]
2012/12/05 13:52:33
제일열받았고 안타까웠던 것이 그떄 잘나가던 신인 탤런트 분이계셨는데, 결혼하셔서 신혼이었는데, 박정희가 기어이 불러내서 남편까지 들먹이며 협박했다고 하죠. 결국 수청을 들었고 외국으로 쫓겨가섰다고 하죠. 남편분은 홀로 한국에 계시고. (뭐 그때도 한국으로 다시 발 붙일 생각하지 마라 그러고 보낸 거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독재자를 지금 몇몇 어르신들이 열광하는게 정말 한쪽밖에 못 보셔서 그런듯 합니다. 그나마 그 본 한쪽도 결국다 거짓말로 점철된 우상화지만...
3196 2012-12-05 09:15:31 0
찍소의현황 [새창]
2012/12/05 09:11:25
1 휴지는 아닌거갖고 공중화자실에 있는 은색휴지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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