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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02: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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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윌리엄 홀시 제독이 태풍 코브라에 함선도 아니고 함대를 날려먹고 군법회의 끌려갈 '뻔' 했던 사례.
홀시 제독은 이후 아시다시피 원수까지 진급 했습니다.
2.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장 찰스 B 맥베이 3세 대령이 일본 해군 중좌(한국군의 중령에 해당) 하시모토 모치즈라 함장이 이끄는 순잠 을형 잠수함 이58의 공격에 함선을 상실해서 약 5일간 생존자들과 함께 바다를 표류하다 카탈루냐 비행정이 발견해 구조된 뒤 군법 회의에 회부된 사건.
이후 맥베이 대령은 소장까지 진급한 뒤 퇴역했습니다.
그의 동기들이 대부분 중장, 대장으로 전역한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명예 전역이었고 이후 권총자살 했습니다. 사실 군법회의에서도 실형을 받았으나 잠수함에 정통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사면으로 현장에 복직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당시 미군이 맥베이 대령의 구조신호를 안일한 근무 태도로 듣지 못하거나(통신소 당직 사관이라는 놈들이 놀다가 못듣거나 술처먹고 잔다고 못들었습니다.) 무시한 정황(일개 통신소 당직사관이 '지금와서 우리 배가 당할리가 없다. 이건 일본 해군의 음모다.'라고 멋대로 판단하여 무시.) 정황이 드러남과 동시에 당시 순잠 을형 잠수함 이58의 함장이었던 하시모토 모치즈라 전 중좌가 맥베이 제독의 명예 회복을 바라는 편지를 보내 당시 상황을 증언 함으로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맥베이 제독의 명예를 복권시켰고 생존 장병 전원에게 은성 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당시 해군은 맥베이 제독의 명예를 복권하는데 반발하였으나 결국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면서 맥베이 제독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USS 인디애나폴리스의 생존 승조원들이 맥베이'함장'(당시 생존 장병들은 맥베이 제독을 어드미럴(제독)이라 부르지 않고 끝까지 캡틴(함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들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함장에 대한 존경과 예우의 표시입니다.)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하며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3.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 가토 히로하루 대장이 '훈련에는 제한이 없다'는 명목 하에 무제한 훈련을 돌리자 그 유명한 군가 월화수목금금금이 나올 정도로 함대의 피로도가 올라갔습니다.
1927년 8월 24일에 시행된 훈련에 앞서 오자와 지사부로 당시 중좌(최종계급 중장)가 불길함을 느끼고(그도 그럴게 말단 수병부터 함장급 고급 장교까지 피곤에 쩔어 있었으니...) 함대 편성을 재고 해 줄것을 상신했지만 묵살당합니다.
그리고 센다이급 경순양함 진츠, 모미급 구축함 와라비, 센다이급 경순양함 나카, 모미급 구축함 아시가 다중 충돌을 일으켰고 진츠, 아시 대파, 나카 중파, 와라비 침몰의 피해가 나왔습니다.
이후 당시 진츠 함장이던 미즈시로 케이지 대좌가 업무상 과실치사, 함선 상실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습니다만 군법회의 전에 '죽음으로 모든것을 책임지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 자살했습니다.
미즈시로 대좌가 자살한 원인중 하나로는 자신의 제자였던 와라비 함장 이가라시 메구미 소좌(이후 중좌로 추서)가 사망한것이 결정타였던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가토 대장은 자기탓 아니라고 발뺌이나 하고 있었고, 일본 해군성이 미즈시로 대좌를 소장(한국 해군의 준장~중장정도에 해당. 일본군은 장성급 계급이 소장, 중장, 대장의 3계급 체계에 원수는 명예직.)으로 추서하려고 했지만 유가족이 이를 거부하여 대좌로 안장되었습니다.
4. 공고급 순양전함 2번함 히에이가 과달카날 전역에서 거의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고 방향타까지 맛이가서 자력 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마지막까지 버티던 함장이 아베 히로아키 중장의 퇴함 의견을 받아들여 퇴함 했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뒤늦게 히에이를 부유포대로 써서 미군을 견제하라는 전문을 날렸지만 이미 히에이는 벨브를 열어 자침한 뒤였고, 히에이 자체가 난전에서 USS 래피에게 대공포로 함교를 얻어맞아 참모진이 싹쓸이되는 등 엄청난 손상을 입고 용캐도 떠있던 상태라 별다른 처벌은 없었습니다.
5. 일본 해군의 상선 개조 항공모함 히요의 마지막 함장 요코이 도시유키 대좌가 히요 최후의 순간에 히요와 함께 죽기위해 남아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자빠진거야!?'라는 생각에 근처에 있던 나무상자를 집어들고 냅다 바다에 뛰어내려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별 처벌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일은 다른 설로 요코이 대좌가 있던 선실이 파괴되며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는데, 요코이 대좌가 깔고 앉아있던 상자가 물에 동동 뜨면서 같이 떠올라서 먼저 퇴함한 부하들이 구조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단 생각 나는건 이정도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