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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8 08: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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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말씀하시는 전반적인 내용은 저도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제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부분도 바로 조용남 같은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건 좀 용어(?) 상의 문제이긴 한데,
조용남 같은 경우는 작가적 의도란 것 자체가 존재하는지 의문인 거죠. 조용남의 경우는 '작가의 의도'가 예술이 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이름'이 예술이 된 경우입니다.
조용남은 어떤 분명한 미술적 감각이나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허영심의 목적으로 대작을 시킨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림에 대해서 어떻게 작업하라는 지시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예술이 될수가 없죠. 애초에 작가의 예술적 의도 따위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작가의 의도'를 중요시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작가의 의도'가 없는데 있는척 하는게 문제라는 거죠.
그럼 예술가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것은 문제인가... 저는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흐의 예시를 말씀드렸던 것도 그런 이유죠. 고흐가 유명세를 탄 것은 분명 그의 독특한 감각과 화풍의 작품 때문이지만, 고흐가 세기를 넘어서 위대한 화가로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된 것은 그림을 잘그려서가 아니라, 그의 불우하면서도 열정적인 삶이 우리에게 공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니까요. 고흐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예술로 다가오는 거죠.
그렇다면 뒤샹은 왜 안되는가 하는 거죠.
물론 뒤샹의 삶 자체는 고흐만큼 인상적이지 않습니다만, 그의 경우는 예술가의 사상이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례입니다.
그리고 뒤샹은 결코 사회로부터 괴리된, 비 사회적인 작가가 아니었으며,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을 신격화 하기 위해 관객을 소품화 하는 작가도 아니었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예술가를 권력화하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권력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사상이었습니다.
다다이즘으로 분류되는 그의 예술 사조는
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기존의 서구 문명이 추구해온 질서와 이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가를 목도하면서, 기존의 질서, 이성주의, 문명화를 거부하며 등장한 것으로, 허무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이었던 철학사조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님께서 비판하고자 하는 '현대미술'은 사실은 모더니즘이 아닌 포스트 모더니즘, 즉 기존의 모더니즘적 질서를 파괴하고자 하는 해체주의적 미술이죠.
님의 철학적 관점이 허무주의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것으로 생각되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감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영남 대작 사건 같은 거짓말, 사기 사건을 뒤샹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져온 해체는 새로운 질서가 아니라 혼돈만을 낳은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어떤 공동의 질서로부터 나오는 공감과 이해는 없고, 각자 누가 얼마나 틀에서 벗어나고 특이한지 겨루는 관심종자 마냥, 다들 지멋대로 그려대는 통에 기괴하지만 허무하기만 할 뿐, 아무런 예술적 감동이나 감흥이 안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죠.
너도나도 특이성만을 추구하고 누구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게 되니, 조영남 같은 예술 사기꾼이 등장하기도 하구요.
다만, 전반적으로 보면 제각각이고 질서도 공감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개별적인 작가의 사연과 이유를 들어보면 그 사람 나름의 철학과 삶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있고, 얼마든지 공감 할 만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기꾼, 관심종자들도 많죠.
어쩌면 가장 성공한 관심종자는 앤디 워홀이 아닐까 합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는 말을 그가 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가 한 말은 아니지만, 그를 아주 잘 설명하는 말이죠.
예술가를 우상화하는 흐름은 사실 뒤샹보다는 앤디워홀이 그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앤디 워홀은 성공한 예술가로 수많은 추종자를 가진 스타였죠.
아이러니하게도 앤디워홀은 순수미술이라는 벽을 붕괴시키고 예술을 시장의 영역으로 밀어넣은 사람이며, 지금의 순수미술보다는 팝아트라는 영역으로 대중문화 예술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영향의 하나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사를 쓰는 기기존의 대중음악과는 달리 지금의 케이팝은 난해하고 기괴하지만 뭔가 있어보이고 감각적인 가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님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동의할만 하지만, 작가주의가 관객을 재료로 삼기 때문에 소통이 없다는 말씀은 너무나 비약적이고 추상적인 비판입니다.
관객이 진짜로 무슨 재료일 뿐이라서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자신의 감상을 공유하고 작가를 칭찬하든 작가를 비판히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관객도 아무것도 이해를 못했으면서 아는척 할 때 발생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