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fishCutlet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2-03-17
방문횟수 : 2864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15889 2020-03-27 21:57:50 0
[새창]
줄넘기가
팔십기가
15888 2020-03-27 21:55:54 2
이와중에 용감한 사진작가 [새창]
2020/03/27 21:34:56
일본 맥주 광고 모델을 찾기가 아직도 어지간히 힘드니까 이제 안유명한 비연예인을 쓰는 모양이네요.

이미지 장사인 연예인 하고 다르게 어차피 이미지 타격 받아봐야 잠깐이고 본업에는 별 지장이 없을테니..

뭐 어차피 티비 광고 한다고 일본 맥주 수요가 오를것 같지는 않고, 한국에서 돈써주는 일본 기업은 환영입니다.
15887 2020-03-27 21:36:28 0
예술과 의식에 대한 잡담, 주체와 창작의 허상 [새창]
2020/03/24 02:29:28
사실 순수미술이라는 구분 자체가 상당히 구시대적인 개념이긴 합니다.
애초에 자본주의와 미디어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상업적 목적이나 정치 선전 목적의 실용미술이 부상하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재현한다는 목적에서는 사진에 그 영역을 빼앗기면서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순수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런 구분들이 점점 더 모호해 지고 있으니까요.

순수 미술이라는 개념의 정의를 약간 구분해 본다면,
한가지는 의뢰를 받아 의뢰인의 (정치적 또는 상업적일 수 있는) 의도에 따라 그림을 그려주는 장인으로서의 미술가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예술가 스스로의 예술적 의도만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경우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세상의 묘사를 통한 사회적 소통은 사진의 영역으로 넘기고,
미술가는 추상의 영역으로 들아가 오로지 미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을 순수하다고 말하는 경우.

의뢰인의 정치적, 상업적 목적에 따라 그림을 그려주는 기술적 장인으로서의 미술가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작가의 삶과 체험, 사상을 담는 것을 순수미술이라고 할 때, 순수미술이 고립된 예술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흔히 진로로써 디자이너가 아닌 전업작가를 말할 때 위의 개념으로서 '순수미술'이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전업 작가로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예술성을 추구했던 고흐를 두고 고립되어 있다고 비판하지는 않잖아요. 고흐가 추구한 예술성 속에는 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은 고흐가 겪었던 시장판 같은 현실적 체험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전업 작가 역시 전시를 열고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이상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미술이라 부르는 것은 분명 어폐가 있긴 하죠.

한편 작품에서 작가의 사회적 의도마저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히 '미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이 고립된 순수미술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예를들어 추상화가로 유명한 몬드리안의 경우
사물의 구체적 형태를 배제하고 색상, 비례, 구성과 같은 지극히 추상적인 요소로부터 미를 찾아내는 것을 추구했죠.
이런 분야를 '순수 미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은 현대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다 못해 거의 시초라고 볼수 있는게 몬드리안입니다.

몬드리안의 사상은 최초의 디자인 학교인 바우하우스의 설립에도 영향을 끼쳤고, 복잡하고 화려한 세공과 장식을 넣던 과거의 공예 개념에서, 그런 장식적 요소들을 배제해 심플하고 제품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색과 비례, 구조를 통해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현대적 디자인 개념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순수미술이 기초과학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하는 거죠. 그건 미학의 역할이라고 하셨는데, 물론 미학도 그런 역할을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미학과 순수미술은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마치 기초과학인 물리학이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으로 나뉘어 있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순수미술을 통한 미적 실험과 미학을 통한 이론적 이해는 상호의존적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의 순수미술은 소위 실용 미술인 디자인과도 연관이 있기에 단순히 고립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두가지 관점에서의 '순수' 미술의 개념은 둘다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어서 현시대에 잘 맞지 않고,
굳이 '순수'라는 말을 강조하는 의도에는 순혈주의적, 엘리트주의적 태도가 녹아있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순수미술' 또는 '현대미술'이라는 장르를 비판하기 보다는, 폐쇄적이고 고식적인 집단으로서의 '미술계'를 비판하고, 전반적인 작품의 경향 보다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과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현업 미술가나 관계자가 아니면 쉽지 않은 부분이긴 하겠지만요.

님께서 현대미술에 대한 어떤 체험을 하셨기에 이렇게 날선 비판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알려주신다면 님의 의견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더 도움이 되겠죠),
저도 지나치게 폐쇄적인 현대미술계를 좋게만 보지는 않지만, 철학과 미술사적 흐름에서 모더니즘의 등장은 상당부분 납득이 가는 전개이고, 꼭 이해하기 쉽고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술만이 좋은 예술은 아니기에, 좀 더 포용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5886 2020-03-27 17:47:49 5
SS 당하고 싶다 [새창]
2020/03/27 17:38:37
나치 무장친위대요
15885 2020-03-27 08:29:25 0
[새창]
저저저요!
15884 2020-03-27 05:15:52 0
예술과 의식에 대한 잡담, 주체와 창작의 허상 [새창]
2020/03/24 02:29:28
상당부분 동의하지만, 비판하는 핀트가 저와는 좀 다른것 같네요.
저는 작가의 의도를 강조한다거나 순수예술을 추구한다거나 하는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작가의 의도가 없는데 있는것처럼 포장하는 거죠.
작가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의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서요.

님께서 '사기다' '알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마 바로 그런 부분
즉, 애초에 작가의 의도가 없는데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을 지적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자의식을 키운다고 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없는건 아니라고 봐요.
단순히 말하자면, 자의식이란 개성이죠.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특성,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하는 겁니다.
그건 꼭 현대미술 뿐 아니라, 감독에게도 배우에게도 가수에게도 요구되는 자질이죠.

사실은 오히려 명확한 자의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일수록 강한 허영심을 보입니다.
흔히 자의식 과잉이라고 부르는 증상은, 사실은 과잉이 아니라 부족입니다.
심리학적으로는 자존감과 자아정체감이 부족하기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갈망이 외부로 강하게 표출되는 현상입니다.

작가가 순수성을 추구함으로서 절대화되고 종교적이고 영적 차원에 머무를수 있게 되는가... 는 글쎄요.
물론 그런걸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죠. 지도 지가 뭘 그리는지 모르면서 뭔가 그럴듯해 보이기 그리고,
평소 행실은 뭔가 구름위에 붕 뜬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자기들도 그게 뭔지는 모르면서 뭔가 있다며 찬양하죠.

다만, 이런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선 그들의 폐쇄성과 자본 종속성을 까는게 맞다고 봅니다. 작가주의나 순수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저렇지 않은 예술가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15883 2020-03-27 04:44:11 0
[새창]
복소수를 나타내는데 축이 두개 필요한데
시간축과 복소수 축으로 좌표평면을 그리는게 가능한가요? 공간좌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축 하나를 시간으로 두고...?
15882 2020-03-26 22:13:34 0
한국 패스트푸드점이나 치킨집에서 왜 없는지 의문인 소스 [새창]
2020/03/26 21:45:47
나쁘진 않은데, 그 어떤 소스보다 어울린다기엔 한국에도 맛있는 소스 많지 않나요..?
15881 2020-03-26 19:53:32 0
예술과 의식에 대한 잡담, 주체와 창작의 허상 [새창]
2020/03/24 02:29:28
현대미술이 소통을 거절하는 기조이고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엄격한 잣대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작가의 의도와 트랩(?)을 벗어나서 본다고해서, 예술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구요.

이런 기조의 시작이 뒤샹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뒤샹의 작품은 당시로서야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획기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꽤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축에 속합니다.

뒤샹의 샘은 물론 뒤샹이 처음부터 명확한 의도와 컨셉을 가지고 만든 작품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가 전시를 진행하려다 박대 받고 자신의 잡지에 실은 칼럼을 보면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그의 견해와 샘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뒤샹의 샘에 대해서 두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뒤샹의 샘이 주목 받은 것은 예술가의 역할이 장인적인 기술이 아니라 예술적 아이디어에 있다는 뒤샹의 사상이 당시 미술계에 충격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2.뒤샹이 처음에 샘에 담고자 의도한 것은 위의 메세지가 아니라, 변기라는 공산품에 담겨있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뒤샹이 원래 살던 프랑스는 하수구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낡고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한 후최신 배수 설비에 큰 감명을 받았고, 자신이 느낀 미의식의 정수(?)로써 변기라는 오브제를 택한 것이다.

즉, 뒤샹은 '예술가의 의도가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아무 공산품이나 가져와 작품으로 명명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의도는 '변기는 아름답다'인데 뒤샹이 가지고 있던 사상(꼭 장인처럼 직접 만들어야 작품은 아니다)가 더 주목 받게 된거죠.
비유해서 말하자면 달을 보라고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쳐다보는데 손가락이 황금 손가락인 셈이라고 할까요.

물론 뒤샹의 샘이 미술계에 충격을 불어넣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속임수가 있었긴 합니다만... 가명으로 작품을 제출하고 남의 작품인척 자기가 비평한 것인데,
그 속임수라는게 벗어날 수 없는 트랩이라거나, 그 속임수를 깨닫고 트랩에서 벗어나면 예술적 가치가 붕괴된다거나 하는 성질의 트랩은 아니죠.
뒤샹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나 잡지에서 실은 비평에서나 작품의 의도에 대해서 전달하려고 여러차례 노력했습니다. 작품의 의도를 모르게 하는것이 유일한 포인트가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현대 미술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시회장에서 우리가 직접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작품과 작품명, 작가, 제작시기와 재료, 기법 정도가 적힌 간단한 캡션이지만,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전시회의 구성을 기획하고, 벽면에 기획의도를 드러내는 글을 쓰기도 하며, 무엇보다 전시회장에서 제공되는 팜플렛과 도록에는 어떤 의도와 배경에서 작품을 만들었으며 감상 포인트가 어디인지 설명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여전히 작품이 난해한 경우도 많고, 때로는 그런 난해함과 있어 보이는 척을 작품의 셀링포인트로 삼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현대미술은 인스타그램과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현대미술을 소비한다는 것은, 인스타그램에 아무도 진심으로 공감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선망할 법한 허세 가득한 플랙스 셀카를 올리는 것과 비슷하죠. 아마도 님께서 현대미술을 비판하고자 하는 점은 그 부분이겠죠.
그러나 정말 모든 현대미술이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사실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리는 현대미술은 수로 봤을때는 미술계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세상엔 훨씬 많은 대중문화가 넘쳐나고, 미술 또한 대중문화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가가 초고가로 사들여 상속 수단으로 삼아 화제가 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같은 경우에도, 사실 그렇게 심오하고 난해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만화라는 대중예술을 본딴만큼 직관적으로 받아들여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물론 작품의 가격은 직관적이지 않지만, 작품의 가격이 꼭 가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겠죠.

어쨋든,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이 꼭 작가의 의도에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오독을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전에 누군가 성경 따위는 읽어서는 안되며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철저한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이고 성경에 믿음을 두는 것는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성경이 무가치하지는 않다고 반론했습니다.
물론, 성경을 신이 작성했다고 하거나, 신의 영감을 받아 작성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거짓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저자들은 신을 진리라 믿으며, 다른 사람 또한 신을 믿도록 할 의도로 성경을 작성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신을 믿을 요량으로 성경을 읽을 필요는 없으며, 저자들이 의도한 종교적 가치를 배제하고 성경을 보더라도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작성된 시대의 정치와 사회상, 가치관, 법률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역사적 사료이며, 나아가 오랫동안 서구문명 사회를 지배해온 텍스트로서 오늘날 서구사회의 문화를 읽는데 배경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15880 2020-03-26 17:49:18 0
계산에 인생을 갈아넣은 남자, 존 네이피어 [새창]
2020/03/26 02:18:31
교양(?)영상에서 엄격한 역사적 사실만을 추구하긴 어렵죠..
어느정도 흥미도 끌고 이해도 쉽게 하려면 어느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건 알지만, 그래도 역사적 사실을 밝혀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1번 내용은 영상이 사실과 다르다기보단 단순히 영상에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긴 한데, 이어지는 2번 내용에서 티코브라헤가 지수법칙을 의식하지 않고 로그를 발명했다는 점을 명확히하려고 밑밥?을 좀 깔았습니다..
15878 2020-03-26 06:37:34 0
계산에 인생을 갈아넣은 남자, 존 네이피어 [새창]
2020/03/26 02:18:31

쉽게 설명하느라 단순화 한 것 같지만...
역사적 사실과 꽤 다른 부분이 몇가지 있는 것 같아요.

1.당시에도 큰수의 곱셈을 하는 방법은 단순히 곱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삼각함수의 덧셈법칙
cosA×cosB={cos(A+B)+cos(A-B)}/2
등을 이용하 곱셈을 덧셈으로 바꾸어 삼각함수표의 값을 찾아 계산하는 방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상에서도 잠깐 나왔던 타코 브라헤는 이 계산법의 달인이었다고 합니다.

2.네이피어는 1.01의 거듭제곱을 이용해 로그표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네이피어가 발명한 로그는 거듭제곱과는 별개로 삼각함수를 이용한 방법에서 착안하여, 기하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원리를 응용한 로그 계산자는 1970년대까지도 사용됨)
따라서 로그가 처음 만들어 졌을때는 밑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표시도 따로 없었습니다.(자연로그나 상용로그의 밑을 생략하는 것은 여기에서 기원한듯)
네이피어가 만든 로그표의 값은 자연로그 값에 소수점 떼고 7자리수로 나타낸 것에 해당하는데, 이때문에 상수 e는 네이피어 상수라고도 불리지만 네이피어 본인은 로그의 밑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널리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자연로그는 인간이 계산하기에는 불편했기 때문에, 브리그스는 log10=1이 되도록(브리그스 역시 밑이 10이라는 개념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로그표의 수치를 조정하면 10진법 계산에 편리할 것이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3.영상에는 당시에 지수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당시에도 지수의 개념은 존재했습니다.
네이피어보다 약 1800년이 앞선 고대 그리스시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저서 '모래알을 세는 사람'에서 지수의 개념과 지수법칙을 소개했습니다. 다만 네이피어 시대에는 낮은 정수 차수 이외에는 지수가 많이 사용되지 않았고 표기법도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4. 지수의 표기법은 로그에서 발전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각자 따로 발전한 것입니다. 실제 표기법도 서로 닮은 구석 없이 제각각이죠.
네이피어가 로그를 발명했을 때는 지수법칙과 로그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지수의 표기법이 데카르트와 뉴턴을 거쳐 완성된 이후에 수학자 오일러가 지수함수의 역함수가 로그함수임을 정리했기 때문에 따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5877 2020-03-26 01:36:35 18
[새창]
규격이 다른 괴물 어쩌고 나올때
오이오이 믿고있었다구!
네녀석 제법 하잖아!
이러케 끝날줄 알았는데....
15876 2020-03-26 00:32:48 0
예술과 의식에 대한 잡담, 주체와 창작의 허상 [새창]
2020/03/24 02:29:28
우리가 예술은 표현이다라고 하는 것은,
예술의 본질이 객관적 사물로서의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소통에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이라는 것의 의미는 말하는 화자에 의해서만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 청자의 배경지식과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누군가 저지른 말실수에 대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이 변명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하는 이의 의도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를테면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자꾸 쫓아다니지 마"라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좋으면서 튕기네, 10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지'라는 해석을 한다고 그게 옳은 것은 아니죠.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창작자의 의도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단, 그것은 강제가 아니며 절대적이지도 않습니다. 창작자가 무엇을 의도했든지, 결국 관객이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서 마침내 예술의 의미가 완성되는 거죠.
동시에, 관객의 이해가 절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자녀와 함께 영화 '사도'를 보고 나온 어떤 관객이 감상퍌평으로 남긴 "영화에서 아버지 영조의 말을 어기고 공부를 게을리 한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채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도 느끼게 분명 있을 것"이라는 말은
'객관적으로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http://m.inven.co.kr/board/webzine/2097/461318

현대 미술의 경우는 상당히 이상한 경향을 띄고 있기는 합니다. 많은 현대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그럴싸하고 있어보이지만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할 의미를 갖다붙이고, 많은 소비자들(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관객이 아닙니다)은 또한 예술 작품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하면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를 자신은 진심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자신의 품격과 고상함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 작품에 돈을 쓰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런 경향성이 있죠.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세지 자체는 무시하고 메세지를 이해하는 척 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예술의 소통과 표현 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술은 누군가(예술가)의 시선으로 본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내가 본 세상과는 다르고, 때로는 현실과도 다른 왜곡된 모습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 세상에는 나와는 다른 어떤 주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술을 통한 소통은 그러한 다름을 체험함으로써,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세상을 보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예술에 있어서 창작자의 의도와 관객의 이해, 그 어느쪽 하나라도 무시된다면 소통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15875 2020-03-26 00:09:18 0
예술과 의식에 대한 잡담, 주체와 창작의 허상 [새창]
2020/03/24 02:29:28
음...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 대해 수많은 인터뷰를 했던 것은 다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416 417 418 419 420 >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