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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7 18: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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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했던게 님이었군요...
왕따라는 단어의 정의가 달랐던 거였죠. 그때 님께서도 1:다수의 분쟁일 뿐 따돌림은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1:다수의 분쟁 그 자체와 표면적으로 드러난 SNS의 문구들만으로도 왕따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 거구요.
그리고 본인이 왕따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인의 이해관계와 부합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한거죠.
현재진행형인 논란에 휘말려 있는 것은 화영 본인의 연예게 활동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이미 다 지난 이야기이고 좋게 마무리 되었다고 포장하는 것이 이익이 되니까요.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원정화 간첩사건의 경우 원정화가 북한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직파간첩이 아니라는 정황증거들이 여러가지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심지어 비공개 인터뷰에서 자신은 보위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간첩은 더더욱 아니라고 인터뷰를 한바 있음에도,
지금은 자신이 간첩이라는 모든 혐의에 대해서 인정하며 과거 인터뷰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주장이니 그가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보위부 소속 엘리트 간첩이라는 주장을 전부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간첩 사건이 조작된 것이며 원정화가 협박과 회유에 넘어갔다는 음모론을 믿어야 할까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명확히 알수는 없지만, 저는 적어도 간첩사건이 조작이 있으며 원정화가 협박과 회유에 넘어갔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는 합리적 의심이라고 봅니다.
티아라 사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비슷한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물론 화영 본인이 회유와 협박에 넘어갔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티아라 멤버들과 진흙탕 싸움을 이어가면서 피해자 이미지를 유지하는게 손해면 손해지
화영 본인에게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그런 맥락에서 화영 본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황적 증거를 바탕으로 의심을 가지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그때도 여러번 반복했지만, 티아라에 대한 무차별적 인신 공격에 문제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왕따 사건과 무관한 과거사로 티아라를 인신공격하는 사람에게 그건 지나치다고 비판했습니다.
다만, 그것과 왕따 사건은 또한 별개고, 왕따 사건 자체에 대해서 도덕주의적 비난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본 것이고,
그런 인신 공격이 발생하지 않은 현장에서까지 인신공격에 대해서 비판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것 뿐입니다.
대중의 비난과 비판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고,
저는 물론 인신공격은 허용되어선 안되지만, 도덕주의적 비판은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SNS에 표명된 글들이 님께서는 유치한 감정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셨지만, 저는 그것 또한 폭력이라고 보았고,
더군다나 소속사의 합의 없는 일방적인 퇴출이라는 불합리한 조치는
'이것을 단순히 유치한 감정싸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는게 제 주장이었죠.
이에 대중이 비판을 하고 보이콧 운동을 하는 것은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는게 제 주장이었습니다.
도덕주의적 비난은 허용될수 있지만, 허위 사실에 대해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문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단지 님과 이야기 하는 도중에 인신공격에 대해서 강하게 비난하고 비판하지 않았을 뿐이죠.
제가 님에게 인신공격을 해선 안된다고 강변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런 인신공격들에 문제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판단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편가르기 이야기가 티아라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티아라에 대해서 적대적으로 느끼지도 않고, 화영에 대해서 우리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티아라 비판자들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티아라 옹호를 한다고 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과 편을 가르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입니다. 의견이 다르면 대립하기도 하고,
의견이 같으면 옹호할 수 도 있지만, 그것이 같은 편이기에 옹호하고 적이기에 부수려하는 것과는 다른 거죠.
비판이 곧 편가르기가 아니고, 균형과 견제가 적대행위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포용이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죠.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포용해야 하는지,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명확한 기준은 공존입니다.
우리는 공존 가능한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공존하기 어려운 다름은 비판하고 논쟁함으로서 공존할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죠.
견제와 균형은 상호간의 입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때 합의점을 찾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비록 서로 각을 세우고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공존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게 정치죠.
그리고 끝끝내 공존을 거부한다면 배척하고 배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