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fishCutlet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2-03-17
방문횟수 : 2864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10804 2017-11-06 17:34:29 0
싸움은 피곤합니다. [새창]
2017/11/06 13:00:53
용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서 더이상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서로를 갉아먹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용서입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스스로의 행동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가해자가 면피를 위해 거짓된 사과를 했을 뿐, 진심으로 사죄했다고 판단하지 않을 겁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는 것은 자신이 가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복구하려는 속죄 행위,
또는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반성이겠죠. 저는 이것을 도덕적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도덕적 책임을 저버린다면,
피해자는 상대에게 이런 책임을 강제하기 위해 행동해야합니다. 그래야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죠.

법적 책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상대방이 법적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내가 나서서 고소, 고발하고 싸우지 않으면
세상의 법칙이 저절로 그를 처벌해주지 않습니다.

더구나, 피해자의 용서는 법적인 효력을 지닐수 있습니다.
고소취소, 합의 같은 명시적인 형태의 용서는 법적 책임을 해제하거나 경감해 주기도 합니다.

물론 용서는 하지만 고소취소,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은 복합적인 법률관계에 있을때 손해배상은 받지만 형사합의는 해준다거나,
반대로 민사고소는 하지 않더라도 형사 처벌만은 제대로 받으라고 한다거나 하는 이중적인 관계의 경우고,
또는 단지 형사적인 처벌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가해자의 처벌을 호소하지 않겠다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어떤 경우든, 용서는 결국 책임의 강도와 구속력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게 아니라 법적 분쟁을 계속하면서 마음만은 용서했다고 한다면...
일어난 일에 대해서 더이상 묻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내 에너지를 그 문제에 더이상 쏟지 않는 것도 아니고,
적대관계를 청산한 것도 아니라면, 그것을 용서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10803 2017-11-06 15:25:06 1
싸움은 피곤합니다. [새창]
2017/11/06 13:00:53
물론 용서한다고 해서 법적, 도덕적 책임에서 상대가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 책임의 구속력을 해제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 용서하지 않을 필요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10802 2017-11-06 14:14:19 0
닉언죄)좌충우돌글에 대해. [새창]
2017/11/05 19:56:03
그런 행동 원칙, 기준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충분한 정보에대한 판단이 달랐고,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몰라도 그만이라면 그만이지만, 저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듣는것은 항상 도움이 되죠.
10801 2017-11-06 13:53:22 0
싸움은 피곤합니다. [새창]
2017/11/06 13:00:53
용서하는것이 쉽게 편해지는 방법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사소한 일에 감정적으로 발목 잡혀 에너지를 쏟으며 자신을 소모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죠..
다만, 쉽게 용서해서는 안되는 일들도 있긴 합니다.
자신을 소진해서라도 싸울 가치가 있는 일들이 있죠.
그런 순간을 대비해서라도 자신을 아껴두는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10800 2017-11-05 23:01:39 0
닉언죄)좌충우돌글에 대해. [새창]
2017/11/05 19:56:03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행위를 비난할때 행위를 한 사람과 행위를 분리시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야 귀인이 되는 거죠.
10799 2017-11-05 22:50:31 0
닉언죄)좌충우돌글에 대해. [새창]
2017/11/05 19:56:03
네. 알겠습니다. 개차반이라는 표현은 그런 의도로 사용하신 거군요.
다만 제가 한 문화를 판단할 대표치로 삼기에 적절한지는 의문스럽긴 합니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설령 두분 사이의 논쟁을 전부 다 읽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제한된 정보입니다.
기대에 대한 이야기도 피장파장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 겁니다.
제한된 정보에도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정도의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문제는 단지 충분한 정도의 정보가 어디까지인지는 충분한 정보를 얻기전까지 알 수 없다는 거죠.
님께서 수많은 표본을 바탕으로 저에 대한 어떤 기대를 형성하셨을 때는 그 때까지의 정보가 충분한 정보라고 판단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을 하고 그 기대를 수정하셨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의 정보가 사실은 불충분한 증거였다는 반증이 됩니다.
결국 진정으로 충분한 정도의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그것이 충분한 정보인지 알 수 없다는 거죠.

제가 두분 사이의 논쟁을 전부 읽어본 것은 아니나, 적어도 해당 글의 초점이 '글 삭제 행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저는 그 정도가 '글이 지목하는 대상'이 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는데는 충분한 정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 글이 지목하는 대상이 님이 아니라 할지라도 님에게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님의 반응이 과민반응이라는 제 발언은 철회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너무 공격적인 언사는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공격적인 언사와 불쾌한 감정은 그것을 바라보는 제3자에게도 전달되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님께서 저를 높이 평가해주신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님이 기대한 것과 실제의 저는 다를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님이 저에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셨고 어떤 실망을 하셨는지는 저라는 사람의 실제에는 영향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10798 2017-11-05 22:28:14 0
닉언죄)좌충우돌글에 대해. [새창]
2017/11/05 19:56:03
그 추론 자체는 저의 견해일 뿐입니다. 님 말씀대로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것이고,
제 견해는 개연성에 근거한 한가지 견해일 뿐이죠. 그것을 님에게 무조건 받아들이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글도 제 주장의 타당성을 다시 주장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제 주장의 논지가 '내가 잘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으로 잘못 받아들여지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쓴 글이죠.

개인적으로는 주어를 배제하고 대상을 비판하는 것이 꼭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입장을 배제하고 어떤 기준이나 원칙에 그 행위가 부합하는지 생각해 볼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해당 글은 작성시기가 거친 논쟁 직후였고 논쟁 상대가 볼 수 있는 곳에 올라왔다는 점에서
입장을 배제하고 생각하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표현 방식도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제 견해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님께서 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으시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서로 살아온 경위가 다르고, 서로 다른 사고방식으로 도출한 견해가 같을 수는 없죠.
그러나 그 다른 견해를 논파하시더라도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10797 2017-11-05 20:28:51 0
닉언죄)좌충우돌글에 대해. [새창]
2017/11/05 19:56:03
인신공격은 그 사람의 출신이나 사회적 배경 같은 구체적인 신상 뿐만 아니라,
인격, 성격을 들어 비난하는 것 역시도 포함됩니다.
'그놈은 개차반이야' '그놈은 쓰레기야'라고 말하면 구체적인 신상 한마디 없어도 인신공격입니다.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를 비판한다면 이는 인신공격인 겁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 책임도, 최소한의 숙고도, 반성도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화자를 비난하는 말씀이시죠.
물론 님께서는 논쟁이 된 글을 지워버리고 아무일 없었던 척 하는 행위를 비난하려는 의도이겠지만,
님의 글에서는 주장(또는 행동)에 대한 비난과 화자(또는 행위자)에 대한 비난이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이 표현이 지시하는 대상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나의 주장이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나라는 인물에 대한 규정과 비난'으로 읽히는게 일반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0796 2017-11-05 15:14:50 44
고려시대의 성문화 [새창]
2017/11/05 14:24:51
그런 면에선 얼굴도 안보고 결혼시켰던 조선시대가 나을지도 모르죠.
10795 2017-11-05 12:45:07 1
역사상 최연소 유아 용의자 [새창]
2017/11/05 12:16:19
어린이를 혼자 두면 위험하다는게 그래서...
10794 2017-11-05 10:45:43 2
나는 존재한다? [새창]
2017/11/05 04:58:47
다만 데카르트는 그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나'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제시했습니다. 이 부분은 말씀하신대로 논리적 귀결이 엄밀하지 않죠. 그리고 뇌과학, 심리학 연구를 통해 물질적 일원론이 주류가 되면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더이상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10793 2017-11-05 10:38:58 2
나는 존재한다? [새창]
2017/11/05 04:58:47
그게 원어로는 Cogito, ergo sum 인데 직역하면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입니다. '나'는 원래는 들어가지 않는 개념이죠.
10792 2017-11-05 08:42:24 2
나는 존재한다? [새창]
2017/11/05 04:58:47
뭔말인지 모르겠는 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확히 하시는게
좋은 답변을 얻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것부터가 배움의 시작이죠...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매우 명징하고 강력해서 이것만큼은 반박할 수 없습니다.
철학적으로 끝없이 생각해서 의심한다면,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해도 "철학적으로 끝없이 생각하고 의심한다"는 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의심을 한다는 것은 의심하는 존재, 즉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필연이라는 의미니까요.

데카르트는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 찾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은 왜곡될수 있고, 착시와 착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물속에 잠긴 막대는 휘어져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잠기지 않은 막대는 똑바르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성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추론하여
물속에 잠긴 막대는 빛의 굴절로 휘어져 보이는 것뿐
실제로는 휘지않았다는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속에 잠기지 않은 막대가 똑바르다는 사실 역시 우리의 지각으로 확인한 정보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해 마치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는 것처럼,
또는 가상현실의 세계인 매트릭스 속의 네오처럼,
모든 것이 왜곡된 허상의 정보만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는 그 답으로서, 의심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리고 그런 '의심하는 마음', 즉 '이성'이야 말로 우리의 존재와 모든것의 근원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데이비드 흄이 비판한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데이비드 흄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마음, 즉 이성이 존재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부정한 겁니다.
흄은 지각, 즉 경험이야 말로 우리 존재의 근원이라고 봤습니다. 우리가 의심하고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의심할 대상, 즉 보고 듣고 느끼는 지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물에 담긴 막대가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휘었는지 똑바른지 의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흄이 막대가 휘어보인다고 휜것으로 믿으라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흄은 상상력을 강조했습니다. 예를들어 아래 이미지의 도형은 원도 아니고 사각형도 아니고 몇개의 곡선, 몇개의 선분들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원과 사각형을 '봅니다'. 우리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인 만화로부터 이야기를 읽어내고 생생한 현실처럼 느끼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단편적인 여러 현상들을 관통하는 세계의 법칙과 원리를 찾아냅니다.
(참고할만한 읽을거리 https://www.google.co.kr/amp/www.bloter.net/archives/234244/amp)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매트릭스에서 빨간약과 파란약이 주어졌을 때,
데카르트는 빨간약을, 흄은 파란약을 선택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데카르트에게는 '이성'이야 말로 매트릭스 세계를 벗어나 진실로 인도해줄수 있는 빨간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반면, 흄은 보고 듣고 경험하는 세계인 매트릭스를 굳이 허위라고 결론내리지 않고, 파란약을 선택하는 것이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하겠죠.

10790 2017-11-05 00:23:20 0
카드없을때 상대 영웅죽이고 제가드로우보는상황에서 같이죽으면 누가이겨요? [새창]
2017/11/04 15:08:33
기억이 좀 헷갈리긴 한데..누가 먼저 피해를 받느냐랑 관계 없이 카드 하나 냈을 때 발생하는 효과로 둘 다 죽으면 무승부 판정 나올겁니다.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756 757 758 759 760 >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