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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17: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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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너무 비약이 심하신데요, 저는 예술이 사기라는 주장에는 1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필요하다고 모든 것이 사기라면, 철학도, 사상도, 과학도 사기이며
그야말로 세상 모든 것이 사기입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포괄적인 틀이기에,
예술이 사기라는 주장은 '글로 쓰여진 모든 것은 사기다'라는 식의 주장만큼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예술은 분명히 논리적 귀결보다는 직관에 호소하는 비중이 큽니다.
그러나 이해란 논리와 이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직관적 이해도 이해죠.
제가 예술에 있어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직관이 예술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해서, 그야말로 예술 작품을
'보자마자' 온전히 알고 느낄수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오해가 만연하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려 한 겁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오해 때문에 현시대에 예술은 사기라는 잘못된 비난을 듣고 있는거죠.
예술이 직관에 호소한다고 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논리도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칸트를 한번 읽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칸트를 사기꾼이라 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한눈에 이해할 수 없으면 예술가를 사기꾼이라 욕하죠.
아래 링크는 그런 인식이 드러난 한가지 사례입니다.
현대 미술 vs 4살 어린이 그림.jpg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129846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시대의 이성에 대한 맹신과 형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형식 파괴의 예술을 추구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정답을 그리는 예술가는 없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죠.
그러나 이것이 몰이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형식파괴조차 왜 형식파괴를 하는지,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술가들의 추상작품은 4살짜리 꼬마의 낙서와 다를바 없는 겁니다.
따라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렸는지 이해한다는 것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대상으로서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삶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피상적인 감상이 아니라 직관적인 이해가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가의 눈과 손을 통하지 않은 것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광활하고 압도적인 자연의 풍광을 두고 느끼는 감상을 예술적이라고 빗대기는 하지만
그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예술은 단순이 예쁘고 아름다운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통해 이끌어내는 타자(예술가)에 대한 공감이며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고흐의 그림은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흐로부터 얻는 진정한 감동은 그의 비극적이고도 열정적인 삶에 대한 이해에서 나옵니다.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연작은 아름다움이 꼭 구상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선, 면, 색의 비례에서 나온다는 주장입니다.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정복자를 미화하는 프로파간다였으며,
고야의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은 그 정복자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고발이었습니다.
예술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표현하는지로부터,
우리는 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알게됩니다.
우리가 타자를 이해하는데는 정답이 없습니다.
고흐의 비극적인 삶과 처참한 말로가 정답인가요?
다비드와 고야, 둘 중 어느 한쪽만의 시선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나요?
예술에 정답이 있다는 발상과,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