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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7 04: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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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노는 사실 개념적으로는 소작농에 가까워서 결혼도 하루 있고 재산도 가질 수 있었지만, 실제 삶은 노예에 가까웠다고 하는군요.
농노들도 토지를 가질수 있었지만 가진다고 해봤자 소규모에 불과해서, 당시 농업기술로는 3,4년 주기로 땅을 쉬어주어야 했기 때문에, 자력으로 생존할 수 없었던 거죠. 그렇기에 방대한 영토를 지닌 지주(영주)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그 대가로 세금과 노동력을 빌려주고 경우에 따라선 무장을 하고 전쟁에도 끌려가는 등, 예속된 삶을 살았던 거죠.
초야권에 대해선 중세에는 실존하지 않았던 제도라는 견해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중세 이전 게르만 유목민족시절의 풍습으로 기원 300년 무렵에 로마의 기록이 남아있고, 이후 1000년동안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1300년 무렵 문학작품에 등장한 이후로 여러 기록에서 초야권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1300년경 중세 유럽은 기독교에 지배되는 사회였기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주를 이루었고, 혼외 성관계는 매우 불경한 일로 여겨지던 시대이므로 공공연히 초야권 같은 법률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결론은, 1000년 동안 실제로는 초야권이 존재하지 않았고, 고대에 이런게 있었다더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써낸 이야기가 당시 종속적인 삶을 살던 농노들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냈기 때문에 널리 퍼진것으로 추정됩니다.
초야권은 없었지만 결혼세는 있었다고 합니다. 장원 내에서 농노끼리 결혼할 경우는 관계 없지만, 다른 영지의 농노와 결혼하는 경우, 여자 농노가 영지를 떠나게 되면 발생하는 노동력 손실에 대해서 상대편 농노, 또는 그 영주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해요.
농노들이 종속적인 삶을 살긴 했지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거나 도시로 도망쳐 1년이상을 잡히지 않으면 자유민이 될수 있었고, 영주 입장에서도 농노들이 가혹한 노동과 수탈에 찌들려 죽거나 도망쳐버리면 노동력이 줄어들어 되려 손해를 보기 때문에,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은 이상 농노들의 생활 수준을 일정수준으로 유지시키려 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