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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3 0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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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설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 오탈자 두어 군데 수정.
2007. 05. XX. 아프가니스탄 동부 최전선.
미로처럼 이어진 골짜기. 산은 헐벗은 가죽이 부끄러운지 키 작은 나무로 말라비틀어진 껍데기 곳곳을 가리고 있다. 하지만 움푹 팬 곰보자국이나 자잘한 생채기를 모두 가릴 수는 없다. 무엇이 두려운지 잔뜩 웅크린 산세는 침략자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미궁이자 수비자에게는 단단한 요새와도 같다.
창문에 잔뜩 먼지가 낀 험비 두 대가 기침하듯 흙먼지를 일으키며 골짜기를 비집는다. 얼핏 보기에 평평한 것 같았던 길은 어른 주먹만 한 돌덩이들과 채 숨지 못한 산자락의 등뼈가 툭 불거져 언제라도 발목을 잡아챌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의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집에 돌아간다. 어때요 하사님, 죽이죠?”
뒷좌석 오른편에 앉은 얼굴이 길쭉한 병사가 앞자리에 앉은 선임하사에게 묻는다. 열린 창문 안으로 흙먼지가 밀려들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차창 밖을 내다볼 뿐이다. 푸석푸석한 눈두덩이 아래에 든 눈알은 쉴 새 없이 능선을 따라 움직인다.
“그게 뭔데.”
“돌아가면 책을 쓸 거거든요. 거기에 넣으려고요. 존나 멋있잖아요. 그쵸? 어쩌면 책 표지에 들어갈 수도 있어요.”
“병신아, 너는 글도 제대로 못 읽잖아. 그러면서 무슨 책을 쓴다는 거야?”
운전석에 앉은 덩치 큰 병사가 핀잔을 준다. 언뜻 순박해 보이는 넓적한 얼굴. 허나 그의 얼굴에 떠오른 건 상대를 조롱할 때의 비릿한 즐거움이다.
맨 처음 말을 꺼낸 병사는 왼손으로 강하게 운전석 시트 모서리를 쳤다.
“*까, 새끼야. 너는 니 엄마 이름이나 쓸 줄 아냐?”
“엄마 이름이 필요하면 엄마한테 써달라고 하면 되지. 그러면 굳이 내가 쓸 필요가 없거든.”
잔뜩 화가 난 병사는 운전석에 앉은 동료의 뒤통수를 죽일 듯한 얼굴로 쏘아본다.
이번엔 그의 시선이 옆 자리에 앉은 병사에게 향한다. 팔짱을 끼고 멍하니 차창 밖을 응시하는 그는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야, 후아레즈. 넌 어때 내가 방금 말한 거 존나 쩐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렇지?”
“멧, 그만 해라. 그러다가 대가리에 구멍 나도 난 모른다. 경계나 똑바로 해.”
“조금만요. 야. 듣고 있냐?”
상관의 제지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멧은 왼팔을 뻗어 동료의 어깨를 치려했지만 차량이 좁은 탓에 중기관총 사수의 엉치뼈 부근을 때리고 말았다.
“씨*. 뭐야?”
걸쭉한 에보닉스 억양. 짙은 눈썹을 한 흑인 병사가 간신히 고개를 꺾어 차 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멧의 얼굴을 확인한 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씨* 뭐냐고. 어떤 새끼가 감히 날 건드려?”
“별 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T.J”
“또 너지. 허여멀건한 인종차별자 새끼. 한 번만 더 건드렸다간 탄통 하나 싹 비운 다음에 총열을 네 후장에다 쑤셔 박아버린다.”
“T.J. 하던 일 해.”
“하사님이 어떻게 좀 해보십쇼. 도대체 어떤 미친 새끼가 흑인에 멕시코인에 빨간 머리가 있는 분대에다 저런 *같은 정신병자를 태운단 말입니까?”
“...”
“T.J! 나는 거기다 끼워 넣지 마라!”
운전병이 낄낄대며 T.J의 말에 반박했다. 그 뒤로도 T.J는 멧에게 몇 마디를 더 쏘아붙였다. 조수석에 앉은 하사는 한숨을 크게 쉰 뒤 왼손 검지와 엄지로 눈꺼풀 위를 꾹꾹 눌렀다.
기관총만큼이나 빠르고 화끈한 욕설의 집중포화가 끝나고 차 안은 잠잠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멧은 T.J의 엉덩이를 건드리지 않도록 살살 팔을 뻗어 후아레즈의 방탄모를 툭 쳤다.
후아레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멧은 입 모양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멧을 바라보고는 해괴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그가 다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무시당한 멧은 몇 번 더 그를 자극하려다가 결국 T.J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다시 한 번 휘몰아치는 욕설의 폭풍. T.J가 홧김에 휘두른 오른발이 조수석 시트를 쳤다. 그러나 하사는 그들에게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차 안은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조용해졌다.
그때, 짧은 노이즈와 함께 무전기의 스피커가 울렸다.
[맨티스1, 맨티스1. 여기는 맨티스2. 그쪽 사수가 고개를 넣었다 뺐다 하던데 무슨 일인가.]
하사는 한숨을 푹 내쉬고 송신 버튼을 눌렀다.
[맨티스2. 여기는 맨티스1. 무좀이 재발했다고 한다. 교신 종료.]
하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차창 밖을 응시했다. 운전병은 상관의 농담에 키득거렸다.
멧은 그것이 분위기가 누그러진 증거라고 받아들인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헬리콥터나 몇 대 불러서 싹 조진 다음에 휴가나 갔으면 좋겠네. 기왕이면 탈레반 새끼들 사지 날아가는 것도 좀 찍을 수 있으면 좋고.”
“넌 변태 새끼가 틀림없어. 멧.”
“그러면 존나 비싸게 쳐줄 거라고. 하나도 못 건지면 비싼 돈 들여서 카메라를 사온 이유가 없잖아.”
멧은 조금 전과 달리 시큰둥한 말투로 끔찍한 단어들을 쏟아냈다.
“생각해보면 존나게 웃긴 거야. 헬기 탄 새끼들은 지들이 얼마나 안전빵인지 모르고 있겠지? 씨* 누구는 IED 하나 터지면 걸레짝 신세인데, 누구는 휙 날아와서 로켓이나 몇 발 쏘고 가면 그만이잖아.”
“그건 우리가 조종사들 귀지보다도 싼 목숨이라 그런 거야. 걔네들이 똥 닦은 휴지도 우리보다는 비쌀 걸?”
운전병이 키득거렸다. 멧의 푸념이 계속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헬기 조종수나 될 걸 그랬어.”
“넌 글씨를 못 읽어서 안 된다니까.”
“*까, 애런!”
멧이 운전석 시트를 다시 한 번 세게 쳤다. 그럼에도 애런은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적당히 해라.”
하사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멧은 채 열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상관의 조용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사님도 그렇잖습니까. 고작 몇 푼 벌겠다고 이런 염병할 개똥밭에 온 거잖아요. 솔직히 하사님도 대학물 먹었으면 장교로 왔을 텐데요. 그쵸? 병신 같은 소대장보다 우리 하사님이 훨씬 더 나은데.”
“멧.”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솔직히 무서워 죽겠다니까요. 하사님도 봤어야 해요. 그렉 다리가 날아갔을 때 소대장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그런 새끼는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24시간 후장이나 벌리고 있어야 한다니까요. 저는 탈레반이 습격하면 소대장을 미끼로 주고 도망칠 겁니다. 계집앤 줄 알고 달려드는 동안 말예요.”
“더 이상 헛소리를 지껄였다간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솔직히 저만 그런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요. 하사님은 다 좋은 데 그게 문제라니까요. 혼자서만 착한 사람인 척 하는 거."
“닥치라고 씨* 새끼야!”
근처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노성이 차 안을 가득 메웠다. 남은 건 험비의 엔진이 그르렁대는 소리와 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초소로 돌아갈 때까지 입도 벙끗하지 마. 한 마디라도 더 꺼내면 네 머리통을 험비로 짓이긴 다음에 사고라고 보고할 거니까.”
“알겠습니다.”
멧은 순순히 하사의 명령에 수긍했다. 그때였다.
“2시 방향, 능선 부근. 염소 떼랑 사람이 있습니다.”
T.J가 몸을 구겨 숙인 후 하사에게 보고했다. 하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총을 차창 밖으로 꺼내 4배율 조준경으로 문제의 염소 떼를 확인했다.
비교적 야트막한 산의 9부 능선 근처에 십 수 마리의 염소떼와 각기 체격이 크고 작은 사람 그림자 한 쌍이 보였다.
하사가 재빠르게 움직이자, 입술을 우물거리며 불만을 속으로 삭이던 멧 역시 소총을 차창 밖으로 내밀었다.
[맨티스1, 무슨 일인가?]
[2시 방향 능선 부근에 염소 떼와 사람이 있다. 보이는가?]
[확인했다. 초소까지는 15km 정도 남았다. 속도를 좀 올려야 할 것 같은데.]
[도로에 폭발물이 매설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지금처럼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알겠다.]
능선 부근의 사람 그림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두 대의 험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사는 눈조차도 깜빡이지 않고 어쩌면 적일 지도 모르는 그림자를 응시했다. 지난 번 매복에 당했을 때는 염소 떼 틈바구니에서 꺼낸 RPG-7에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다리가 잘렸다.
“11시! RPG!”
T.J의 고함과 함께 지붕에 거치된 기관총 맹렬하게 탄띠를 빨아들였다.
대구경 기관총이 뿜어내는 굉음은 골짜기에 스며 있던 적막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일행이 탄 차량의 10여 미터 앞에 떨어진 탄두의 폭발음은 그 소리를 아주 간단히 집어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