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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5 00: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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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의심하시는 바가 철학적으로 타당하긴 합니다. 실제로 그런 게 근대 철학 '인식론'에서 많이 문제시 되었었죠... 경험론이라는 계파는, 우리가 태어날 땐 완전히 무지한 상태고 이후 모든 지식들은 경험으로 얻어진 것이므로 귀납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얻는 과학만이 유일한 진리 추구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걸 중요시했고, 합리론이라는 계파는 1+1=2 같은 수학적인 논리 구조들, 신에 대한 사유 등등의 사변적인 지식 추구 방법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진정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칸트가 둘을 잘 종합해서 인식론의 갈등을 끝냈습니다만 거기까지 여기서 쓰기엔 너무 길고요
자연과학 계열 대학원생 입장에서 과학을 좀 옹호하자면, 많은 과학들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품고 있는 경우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검증되었다고 생각되는 지식들도 언젠가 반증될 수도 있죠. 예를 들어서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라는 명제나, "공중에 던진, 공기보다 무거운 모든 물체는 땅으로 떨어진다." 같은 명제 역시 언젠가 반증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구 역사 50여 억년과 앞으로 올 수십억 년 분량의 모든 아침들을 관찰하거나, 우주의 모든 물질들을 지구의 육지에서 공중으로 던져본 게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학자들이라고 이런 사실들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수학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죠. 뭐 이렇게 비유를 하자면 좀 거친 비유가 되겠지만, 위에서 태양이 뜨는 곳을 예시로 들었으니 그 예시를 그대로 맞추어 보자면,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에 대해 설명할 때, "1000일 간의 관찰 결과 1000일 전부 태양은 동쪽에서 떴다." 와 같은 식의 통계적인 언어들을 섞는 식입니다.
실제로 논문들은 대부분 이처럼 수학적인 언어와 특정 변인만을 조작해서 얻어낸 검증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데이터들로만 쓰입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런 전문적인 언어들을 모두 써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냥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라고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