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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8 16: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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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해야하지? 부모님도 안 계신 놈이
집에 일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직업도 없는 놈이 급한일이 생겼다고 하기도 그렇고,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하지?’
친구에게 줄 생일 케이크 상자를 만지작 거리며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떠올려야 하는 처지가 참 서글펐다.
이 착한 친구는 분명 생일케이크를 받은 보답으로
밥이라도 사려할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 사정도 나만큼이나 빤한데
알량한 생일 케이크 하나로 신세를 질 순 없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머리가 아파올 즈음,
심한 허기가 엄습해왔다.
자연스레 케이크에 눈이 갔다.
생크림 듬뿍 발라진 것 외에 특별할 것 없는 싸구려 케이크.
그나마도 동네빵집이 문닫을 때까지 몇시간을 기다리다
문닫기 직전에 들어가서 떨이로 반값에 산 케이크였다.
이 반값 케이크를 사기 위해 며칠을 굶었는지 모른다.
하루 한끼 먹던 라면도 먹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급식소도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며칠 동안 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끼고 아껴 마련한 케이크인데…
지금은 허기가 뇌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저 달달한 생크림 케이크 한조각이면
며칠 굶은 허기가 당장 사라질 것 같았다.
아니지. 그래도 친구에게 줄 생일선물인데,
온전한 상태로 줘야지.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됐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친구는 감감무소식이다.
휴대전화도 몇달째 끊기다 보니
어디쯤인지, 언제 올 건지 물어볼 방법도 없었다.
그저 약속장소인 까페앞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친구가 나타나길 기라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망할놈의 허기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그 친구는 착해서 한조각 쯤 먹었다고 화내지 않을거야.’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케이크는 정말 달았다.
지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조차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달았다.
달디단 케이크 한조각을 다 먹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무슨짓을 한 거지? 친구에게 줄 선물인데…’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고 창피했다.
허기를 이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그냥 도망가 버릴까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냐?”
“어… 왔냐? 어… 그게…”
“뭠마! 말을 똑바로 해봐. 버벅거리지 말고.”
“아… 그게 아니라…”
“손에 든 건 뭐냐? 케이크냐?”
“어… 이거… 네 생일선물인데…”
“선물이면 빨리 안 주고 뭐하냐?”
“어… 그게…”
“아~ 이새끼가… 줘봠마!”
친구는 내 손에 있던 케이크를 나꿔채갔다.
그리곤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바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어… 그게… 내가 배가 너무 고파서…”
이빨 빠진 케이크를 빤히 쳐다보며 멈춰 있는 친구에게
면목 없게 주억거리며 겨우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친구에게 강제로 이끌려 근처 식당으로 가서
이빨 빠진 케이크를 놓고 조촐한 생일파티를 했다.
그리고, 친구는 나에게 저녁을 사기 위해
돈을 아끼려 걸어오느라 늦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만 주책 맞게 펑펑 울고 말았다.
오늘 그 친구의 생일이다.
우리는 예의 그 까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 손에는 반값 떨이 싸구려 생크림 케이크가 아니라
친구가 좋아하는 비싼 초코케이크가 이빨도 안 빠진채로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