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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22: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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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과게에서도 달았던 댓글인데요.
현대의 우리가 아는 다양한 품종의 개들을 만들어 낸 인위적 육종 작업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 영국 귀족들의 취미에서 본격적으로 촉발된 겁니다. 과거의 자연적 육종은 단순히 인간의 주거구역(국가의 구분, 대륙의 구분, 섬과 같은 지리적 단절)에 의한 자연적 결과, 혹은 인간 생활과 결부된 특정 용도를 위한 목적형 육종(사냥개, 양치기개 등) 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그 용도 내에서의 자연적 교배였지, 외모의 틀 속에 가두는 인위적 유종은 아니었죠.
근데 이게 근대 이후의 영국에서 귀족들의 취미로 육종 문화가 정착되면서 급속도로 견종의 혈통 구분과 분류가 이뤄졌고, 이를 바탕으로 한 반려/가축 동물 육종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순종 위주의 육종은 당연히도 세대별로 반복 시행될 수록 인위적으로 상정된 순종적 특성이 더욱 강해지게 되는데요, 20세기 초의 애완견 순종 사진을 보면, 지금의 순종견들의 외모보다 훨씬 순종적 특성이 미약하게 나타납니다. 지금과는 상당히 외모가 달라요. 당연히 지금의 순종견들은 순종적 외관이 더욱 뚜렷해졌고, 더불어 특정 순종 유전자 풀에서 나타나는 선천적인 병리적 유전자도 함께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족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주걱턱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근친혼의 결과였던 거죠. 개들도 그런 병리적 유전자를 '순종'이라는 미명 하에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그런 과장된 유전적 특질들을 좋아하고, 또 비싸고 귀중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혈통을 도저히 추적할 수 없는 똥개야말로 유전적으로 가장 튼튼한 개체입니다.)
참고로 당시의 이런 육종 문화를 보고 찰스 다윈이 "아니, 이렇게 단시간만에 인위적 육종만으로 외형이 달라지는데, 이걸 지구 전체 역사의 규모로 확장하면 생명의 분화는 어떻게 될까?"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진화론을 주창한 역작 '종의 기원'은 쓰여집니다. 실제 '종의 기원' 책을 보면, 다윈이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개나 비둘기 육종 문화를 자연선택 아이디어에 관한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