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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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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군주는 국가의 총 책임자 이전에 일개 개인입니다. 개인의 탁월성이 유전자에 각인된 것도 아니고, 그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군주도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행복을 바랄 수도 있는 것이죠. 그걸 허용해주지 않다보니 왕가의 사람은 항상 불행했던 거 같습니다.
그 불행을 헌신으로 승화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룩한 이도 있었으나, 평범한 재능으로 평범하게 고생만 하다 간 경우도 많고, 자신의 불행을 핑계로 세상을 타락시킨 자들도 있었지요. 의무감만 가지고 왕관의 무게를 버티라고 하기엔 꽤나 가혹한 이야기가 되겠네요. 아니면 미치광이들만 왕좌에 앉히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하다못해 세종대왕도 외가쪽은 정략적으로 완벽하게 숙청되었고, 과중한 업무로 인해 평생을 지병에 시달렸죠.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는 4군 6진 개척도 당대엔 엄청난 비난과 실패를 거듭하여 이뤄낸 일입니다. 왕좌의 권위를 떠나 보통의 정신으로는 당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왕 이전에 개인으로서 초인이어서 가능했던 업적이었겠죠.
그래도 왕으로서의 품위를 요구한다면, 국민을 현혹하여 착취하거나 나라를 통으로 팔아먹는 행위나 안하면 족한 겁니다. 그 이상의 영역은 사안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여 비교해보는 게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로 족할 거 같습니다.
게다가 현대인 입장에선, 자결을 택했으면 역사적 평가를 냉정하게 내리는데 방해가 되기 십상일 거 같습니다. 저승만이 4.19혁명에서 참살되거나 자결했다면 혁명의 과격성만 부각되고 의의가 굉장히 훼손되었겠죠. 고종도 자결을 했다면 현대에 와서 고종의 공과와 대원군의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겠죠. 근데 공양왕은 그딴 거도 없고 다 죽였을 거 같군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