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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4 21: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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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올누드로 뛰어가는 사람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만,
우리는 그러한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음.
표현의 자유을 한 사람의 행동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그 자리에서 우연하게 그런 불쾌함을 보게된 상황이 잘못된 걸까?
도대체 어느 쪽에 편을 들어주어야할까?
다시 문제로 돌아와서,
열중 다섯은 속으로 욕하고 있을 것이고,
나머지 넷은 그런 행동에 분노하여 그를 뒤쫓고,
나머지 하나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하며 안타까워 할 것.
아쉽게도 나는 아량넓은 사람이 아니라서 몹시 불편하다고 꺼져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논외로, 다른 이야길 하자면,
우리는 어떤 언론을 선택할지 자유를 보장받지만,
그 언론들이 제공하는 컨텐츠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담합하여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하여도 문제되지 않는다.
특히 법은 그런 언론에게 더 관대한데, 그들은 그런 잘못에 일체 사과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권력과 자본 앞에 무릎꿇고 기생하게 된다면,
공정성보다는 실리를 위한 컨텐츠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jtbc뉴스룸에 알렝 드 보통의 인터뷰에서도 그가 말했다.
이러한 언론은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컨텐츠 수용자들에게 방향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공정성을 기초로 하여, 그들에게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여야 한다며,
늘 달라지는,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그들에게 알아서 판단하라고 보류하는 행동이 바로 언론의 오류다.
왜냐면 사람들은 기피할 것이고, 결국 그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꺼낸 말에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것.
하지만 너나할 것 없이 우리는 책임을 듣는 사람에게 떠넘기고, 당신이 판단하라! 요구한다.
그러한 행위 또한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 참 아이러니한게,
그 절을 물들게 만든 잘못을 한 사람이 떠나야지, 애꿎은 중들에게 떠나라고 부추기니 그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이며, 나는 그런 것을 보지 않은 권리가 있다.
누군가 내게 그렇게 불쾌감을 만들 권리는 없다.
그런데 남이 불편하건 말건, 나는 나만의 표현의 자유를 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의 자유는 도대체 어디까지 보장되는 것인가?
지x맞은 아이러니다.
얼마전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떠들썩하게 만든 '샤를리 엡도' 사건....
그 테러가 발생하자 사람들은 테러의 원흉인 무슬림을 욕했고, 반무슬림 여론이 일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무슬림에 태도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위와 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언론들은 말한다.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달라.'
사실, 테러를 일으킨 사실만 놓고보자면 그들은 테러를 일으킨 개자식들이지만,
다른 면에선 뭐 그들도 사람으로써 종교적으로든 뭐든 모욕감을 느꼈기에 그렇게 행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선 두 가지의 아이러니가 나오는데,
언론이 그런 무슬림의 대한 비판과 또 사건이 일어난 후 그들의 행동에 대한 모욕과 차별 섞인 비판에 정당성과
무슬림이 애초에 테러를 일으킬만한 준비가 되어있었고, 또 그들이 또 다시 자신들을 과시하려고
테러를 일으키려 한다는 정당성이다.
얼마 전 호주 인질극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호주 언론은 자극적이지 않은 컨텐츠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 '배려'를 위한 차원이었다.
때로는 그에 반하는 강력하게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언론사를 보면 특히 군부정권에 대항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존재했었는데,
그건 순전히 순기능을 온전히 한 좋은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조금의 배려가 있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이미 터진 사건이야 되돌릴 수 없고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광장을 올누드로 뛰어다니는 남자가, 옷을 벗다가 중간에 남들이 불쾌하진 않을까?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피해를 본 것은 온전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박혀있는데,
누드로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게 됐으니...
그런데 그 사람에게 마냥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질서는 개뿔 나도 벗자! 이래선 안되는 건 당연한 상식이고,
조금의 배려를 갖춰 열중 나머지 하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 그래서 법이있고 공권력이 존재하는 거겠지만...
이번 프랑스 사건도 마찬가지로 조금만 배려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애초에 독재자들이 욕심을 내려놓았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겠지만...
뭐 그런 이상은 유토피아가 아니고서야 없다는 걸 알기에 할 말 없다.
언론이 자극적이고 편향섞인 보도를 조금 자제했다면, 그들이 모욕감과 차별을 느끼지 않았을 것.
무슬림도 마찬가지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이란 것을 생각했다면 지금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하지만 이런 것을 그냥 이상에 불과하다고 지나칠 수 없다.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사회는 배려심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조금 따듯한 말 한 마디로, 서로 좋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을.
한편으로는 다른 의미로 극과 극의 비율이 존재하기에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이런 지식을 보다 간편하고 널리 습득하고 제공할 기회가 없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은 더욱 간소화돼가는데, 사람과 지식은 그렇지 못한다...
표현의 자유는 분명히 보장받아야 하지만,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마음 없이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는 막아야한다.
마치 히틀러를,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또 누군가에게 종교를 들라고,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그러한 잘못된 표현의 자유는 규제를 받아야 한다.
분명한 건 이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인 '배려'에 대해서 우리는 더 많이 접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언론을 선택하는 자유는 보장되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컨텐츠를 수용하는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뭐 그들이 제공하는 컨텐츠가 싫으면 보지 말라는 소리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그에 따른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한 그들의 거짓된 논리일 뿐이다.
따라서 알렝 드 보통의 말처럼 비단 언론들 뿐 아니라 우리들도 그러한 배려심을 더 나눠야한다.
표현의 자유는 이 사회가 추구하는 선에 대해서만 한해서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악행에 대한 자유 이런 물음을 떠나서
현 사회에 도덕적, 윤리적 의식에 따른 상식에 근거하자면 말이다.
누구나 분노한다. 사실 분노가 제일 다스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희노애락중 노가 가장 큰 감정이라고 우스겟소리로 말하듯, 그만큼 화를 다스리긴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합리적인 지식을 통해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적어도 무분별한 분노표출은 막을 수 있는 것처럼, 그것 또한 막연한 이상이 아님을 나는 안다.
일전에 분노표출을 위해 쓴 글이 있었다.
그 글에 사람들은 반대를 주고 똑같이 불쾌감을 느낀만큼 욕을하고 갔지만,
한 사람은 달랐다. 배려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작은 움직임이 큰 것을 바꾼 힘을 가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