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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17: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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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반발이 엄청나게 심각할 것 같네요.
만약 대형 전광판에 오늘 죽은 사람은 몇 명입니다. 라고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아마 사람들은 그러한 실태를 상상하며 경악을 금치 못할 것같네요.
죽음을 아주 쉽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저도 자살과 안락사 이런 쪽으로는 조심스럽지만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논외로,
k-pax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외계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주인공이 말하길
그곳에선 인간관계에 대해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쾌락주의를 멸시하며, 우리들의 삶처럼 성관계를 하고, 아이를 만들고 그렇게 가족관계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죠.
그렇게 나온 아이들은 사람들 모두가 책임지고, 기르고, 자유롭게 자란다고 했어요.
제가 그 대사를 보고 느낀게 그 영화의 주제와는 다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우리는 너무나도 집중하고 있으며, 너무 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안락사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본문에 나온 말처럼, 제도가 있고, 시험기간이 존재하며 선별하고 있죠.
물론 요즘엔 존엄사라는 말로, 의학적으로 삶이 끝난 사람에 한해서 삶을 끝낼 기회가 있습니다만,
항상 끊이질 않는 의문 중 하나가 이 사회가 사람답게 살 권리는 보장해주면서
왜 사람답게 죽을 권리는 보장해주지 않느냐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 죽음에 대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은 사회윤리에서 어긋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러한 부분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요?
수많은 철학에서 삶의 연장선,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일전에 상황을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자가 자살하는 것(자살)과,
그런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자의 삶을 끝내도록 도와주는 것(타살)의 차이.
그리고 그러한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그러한 행동을 합니다.
밑에서 정의가 무엇인가? 라는 글에서 정의는 다수가 옳은 것이라고 쓴 댓글을 봤는데
사람들은 그런 치명적인 오류를 갖고있다고 봅니다.
다수의 힘이 소수를 짖밟아버리는 크나큰 오류 말이죠.
물론 본문에서 자살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그 기준은 애매한 것이 사실인데,
따지고보면 우리가 자연 앞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당연히 죽음에도 영향을 미쳐야하는 것 아닌가? 라는 의문도 듭니다.
물론 그 기준에 대해서 확실하게 따지고, 이야기하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필요할듯 합니다.
무작정적인 자살허용은 사람들의 반발을 사기 쉽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불허하자니,
이러한 의문들을 해소시켜줄 수도 없고,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삶을 힘겹게 끝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허나 분명한 것은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다수에 의해 죽어가고 있는데,
다수는 그런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말한 전제대로, 단점보다 장점으로 다가가는 것이 더 많아 보이네요.
분명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부분을 반발하겠고,
사회적으로도 다수의 힘으로 비난행렬을 동반할 것이라고 보네요.
아마도 이런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부모가 내 자식만은 나처럼 불행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을 더 감싸고 보호하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도 그러한 잣대로 오히려 이런 소수의 아픔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도 싶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런 현상이 외면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저는 상당히 괜찮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