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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00: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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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과 국민투표
1972년의 유신헌법 제정 국민투표가 92.9%의 투표율에 91.5%의 찬성률을 보였고,1975년 2월12일에 실시된 유신헌법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도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라며 유신헌법에 정당성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신헌법이 이런 지지를 받게 된것은 이런 이유 였습니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에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는 물론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목 아래 계엄을 선포하였고, 이와 동시에 국회를 해산시키고 정당 및 정치활동을 중지시켰습니다.이와 같은 상황에서 구성된 비상국무회의는 즉각 헌법개정안을 제출, 의결하였으며 이를 국민투표에 부쳤던것 입니다. 더욱이 정부는 국민투표 실시에 앞서 특별조치를 선포하고 국민투표와 관련한 정당 및 사회인들의 찬반운동을 일체 금하였으며,투·개표 참관인들도 정당이 추천하는 사람들 대신 투표구 및 개표구 내에 거주하는 유권자 가운데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들을 해당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선정하도록 하였습니다.투표 결과 유신헌법안은 확정되었으며, 개정헌법의 규정 및 절차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한 대통령이 12월 27일에 개정헌법을 공포하였습니다.이런상황에서 유신헌법은 탄생 되었습니다.이거 참 그래서 딸이 아버지의 스타일을 많이 학습한 티가 나는구나 태생은 못바꾸는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는거죠.
유신헌법의 재신임투표.
유신헌법하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제약이 심하게 되자 야당을 비롯한 재야정치인들은 억압정치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심하다며 비난하기에 이르렀습니다.정국이 점차 불안해지자 박정희는 1973년 1월 22일 특별담화를 통하여 북한정권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겠다는 폭력노선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현행헌법을 철폐는 안 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유신헌법 존속에 대한 사항을 국민투표에 붙일 것이며 이를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로 간주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전자와 마찬가지로국민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한 단순한 의견의 개진과 의사의 표시 이외에 일체의 찬성 또는 반대를 위한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야당의 불만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각 정당에서 국민투표에 따른 1인씩의 투·개표 참관인을 허용하였습니다.국민투표는 예정대로 1975년 2월 12일에 시행되었으며, 그 결과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높은 지지율은 당시의 유신헌법에 관한 정부의 일방적인 선전공세와 반대의견을 개진할수 없었다는이유와 유신이라는 자체를 국민들이 깊이있게 알지못한 이유도 있습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박정희 정부의 장기집권에 국민들은 염증을 내기 시작한것 입니다.
그러니까 산업화 이후 국민들이 성숙했다 성숙한 국민이 지지한거니 정당하다라고 하는 건 매우 잘못된 전제인거죠
그리고 독재에서는 그릇된 정보를 받아들일수밖에 없고 반대하면 잡아간다 조사나온다란 억압된 심리가 보편화되었던 세상에서
저 투표율이 합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에서 99% 투표율에 김일성 지지표가 100%다 그러니 북한 정권은 정당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죠
[출처] 유신헌법이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작성자 오쉬쁘만젤쉬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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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견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