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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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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부연해서 조금 쓰자면,
일본 군의관들이 중국 현지의 위안소에 중국 현지의 어린 소녀들을 쓰자는 이야기를 안하고,
조선에서 어린 소녀들을 조달해다가 쓰자고 한 데에는,
조선이 유달리 정조관념이 강한 게 동양 3국에서도 유명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은 유교의 창시국이지만, 유학의 교리와 논리는 신사계급이라든가 상층부에서 주로 교육되고 통용되었습니다. 중국의 평민이나 서민들 (예를 들어 소작농 계급들)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 정조관념 같은 것들이 조선만큼 강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실상은 펄벅 여사가 묘사한 '대지'의 왕룽 일가 같은 것에 가까웠죠.
일본에서도 조선의 정조관념이 강한 것은 유명해서,
1930년대에 성병 우려가 없다고 조선의 어린 처녀들을 납치해갔고,
숫처녀의 처녀를 가져가면 전쟁에서 부상을 입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조선에서 온 처녀 위안부는 장교에게 먼저 상납을 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전지에서 군 수뇌부는 "군대에서의 위안부는 장병의 의지를 고취시켜, 성전 완수 상, 없어서는 안되는 병기"라고 평가되고 있었고, "숫처녀의 처음 손님이 되면 전쟁에서 부상을 입지 않는다"며 미경험자는 우선 장교에게 보내지고, 일반 병사도 생환의 부적으로서 위안부의 음모를 뽑아갔다고 몇명인가 증언하고 있어 할 말을 잃었다."
from "매매춘과 일본문학" by 오카노 유키게, 와타나베 스미코,하세가와 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