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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0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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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정선거 논란의 칼자루는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이 탈취해 간 서버와 당원명부 속에는 13년 동안 입·탈당한 각급 노조와 시민단체 소속 20만 명의 기록이 담겨있었다. ‘앞으로 10년간 공안기관의 밥벌이는 해결됐다’는 말이 나올 만 했다.
게다가 검찰이 가져 간 서버에는 당내경선에서 당원들 각자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까지 담겨있었다. 신당권파가 당권파의 부정을 입증하기 위해 당원 개개인의 투표값까지 열어봤고 이것을 검찰이 탈취해 간 것이다.
검찰은 당연히 당권파의 부정을 잡아내기 위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했다. 전국 14개 지방검찰청 공안부 검사가 총동원돼서 반년 동안 수만 명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무려 1천7백35명을 소환 조사했다.(<경향신문> 2013.3.20.) 검찰은 당원들의 개인 정보, 휴대폰 사용기록, 문자 메시지까지 다 들여다봤다.
그러나 검찰도 소스코드 조작, 서버 접근과 데이터·투표값 조작 등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오옥만 등이 저지른 조직적 부정은 검찰도 알아냈다. 결국 2012년 연말 검찰은 20명을 구속 기소하고 442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구속 기소자는 오옥만, 고영삼, 이정훈 등 대부분 콜센타·대포폰까지 동원해 수백 건의 대리투표를 한 참여계였다. 이들은 부정 의혹을 앞장서 제기했을 뿐 아니라 진상조사위원 노릇까지 했었다. 반면 부정 의혹 때문에 제명과 출당까지 당할뻔한 이석기·김재연은 아무 혐의도 드러나지 않았고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불구속 기소 442명 중에는 당권파 당원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부모, 배우자, 친구, 동료 등의 부탁을 받아 온라인 투표를 대신해 준 혐의였다. 이것은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 ‘강도를 저질렀다’고 해놓고 증거가 없자, ‘그래도 이 사람들이 무단 횡단은 했다’고 우기는 꼴이었다.
이렇게 되자 이제 개혁·진보 언론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원희복 선임기자는 뒤늦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데 우리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분위기에 매몰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기 바빴지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경향신문> 온라인, 2013.3.20.)
‘강도범은 아니었지만 무단횡단범이기는 하다’는 검찰의 기소도 지난해 연말에 빛이 바래고 말았다. 서울중앙지법이 이 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온라인 투표시스템 전문가, 진보당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자, 진보당 선관위 관계자 등을 증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리고 서울지역에서 불구속 기소된 47명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통합진보당 자체조사 및 검찰의 수사 결과로도 인터넷 투표 시스템 자체에 의한 투표결과 조작 등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5형사부 판결문 2013고합274’ 25쪽. 이 재판에 1차 진상조사위를 주도한 참여계 박무가 직접 증인으로 나와 ‘투표값을 확인했지만 부정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인터넷 미숙이나 시간 부족 등 때문에 가족·친척·동료 한두 명의 투표를 대신해 준 것은 도의적으로는 몰라도 법적으로 무죄다.’
(“가족·친척·동료 등 일정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임에 의해 이뤄지는 통상적인 수준의 대리투표는 … 선거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판결문 20쪽)
한편, 이 판결에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 측면이 있다. 재판부는 ‘투표 의사를 위임받지도 않고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진행한 대리투표(“선거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상당한 규모의 조직적 대리투표”, “위임받은 적이 없음에도 위임받은 것처럼 속여서 투표”. 같은 판결문)는 처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즉 오옥만 등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대법원도 이 부분을 유죄로 판결했다. 물론 언론은 이것을 마치 진보당 당권파가 결국 유죄를 받은 것처럼 보도했다.
결국 진보당 당권파가 굴레처럼 쓰고 있던 부정선거 의혹은 한참이 지나서야 일부나마 벗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진실을 모르고 있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당권파가 뭔가 부정을 했을 것’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당권파는 여전히 ‘부정’의 낙인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