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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6 08: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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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교든 아니 종교가 아니라 무슨 일이든 제대로 혹은 옳바로 할려면 그 필요성의 인식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위에 대입하면
기독교 신앙은 자신이 죄악된 세상에 속한 죄인임을 인식하고
그 죄에서 자유를 얻게하는 복음을 이해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믿음(신앙)입니다.
자신의 죄(신을 떠나 신을 잊어버린 일)를 인식하지 아니하면
신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신앙생활을 옳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식한 후 그 죄(신을 떠나 신을 잊어버린 일)에서 용서받고 자유로워 지는 유일한 방법이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내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억한 사람이 남의 과실과 원수의 가해도 용서를 할 수 있고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 이웃과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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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abia.net/xe/sermon/544228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거 (마 18:21-35)
현대인들은 1만 달란트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빚을 진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빚이라고 하면 단순히 은행빚, 카드빚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빚은 죄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삶의 태도가 바로 죄입니다.
그 죄가 존재론적인 깊이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통찰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원죄 개념입니다.
원죄 개념을 현대적인 용어로 바꾸면 ‘악의 평범성’입니다.
유대계 독일 여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075)가 나치 친위돌격대장인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보면서 쓴 용어입니다.
아이히만은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집에서 나올 때 아이들을 안아주고, 아내와 키스를 나눕니다.
직장에 와서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못한 채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냅니다.
모든 이들에게 아이히만의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탕감에 대한 기억이 우리의 영혼에 깊이 각인된다고 해서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삶에서는 싸워야 할 때도 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처한 자리에서 판단하고 처리하십시오.
그러나 그 모든 윤리적 판단과 행위는 1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럴 때만 우리의 판단과 행위는 적개심과 자기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그 토대로 작동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평소에 하나님을 더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더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통치를, 그 사랑을, 그 생명의 신비를 더 기억하십시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키십니다.(빌 4:9) 아멘.
대구 성서 아카데미 정용섭 목사 2011년 9월11일 주일설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