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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 03: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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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지리지」를 쓴 반고(班固, 32년 ~ 92년)나, 이에 주석을 단 응소應劭등도 낙랑이 축출되는 313년 이전 사람으로, 당대 기록도 낙랑을 요서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자를 봉한 지역(요서지역)과 연관되서 설명하므로, 후대에 기록했다 하더라도, 평양에 있던 낙랑과 요서에 있던 낙랑을 구분을 못했을리 없습니다. 따라서 요서에 낙랑이 있었다는 기록은 313년 이후 교치된 낙랑군에 대한 기록이라는 강단학계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북연시절 교치요? 북연이 세워졌을 때도 난하 방면에는 유주자사, 기주자사 진이 있었고, 낙랑군은 없었습니다. 그 뒤 432년에 북위는 난하 방면에 평주를 설치하고 요서군(비여,양락,해양 3현)과 북평군(조선,신창 2현)을 설치하였을 뿐이죠.. 즉 난하 방면에는 전한 때 B.C 108~87년경을 제외하고는 난하 방면에 낙랑군이 설치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5세기 전반에 낙랑군이 다시 난하 방면으로 옯겼다는 것이 통설이라는 주장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사학자 몇명이 모여 통설이라고 주장하면 사서 문구와 다른데도 통설이 되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