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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8 0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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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화성군의 공세는 멈출 줄 몰랐다. 시가지 전투에서 군과 경찰은 땅에서 끊임없이 솟아올라
움직이는 모든것을 먹어치우는 화성군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청진항으로 피난을 가는 경로는 두 가지였다. 육로를 통하던지, 해상길을 통하던지.
대부분의 사람은 육로를 택했지만 해안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해상길을 택하길 선호했다.
울산시청 소속 공무원들과 향토예비군을 포함한 군인 경찰들은 장생포 울산항에서 태화로터리를 지나
무거동까지 이어진 피난민의 행렬을 받아들이기 위해 삼일 밤낮을 교통통제에 힘썼다.
아이러니 하게도 무거동 이후로는 울산항으로 향하기 위한 피난민의 행렬을 찾기 힘들었다.
어제까지는 분명히 천상리까지도 그 행렬이 이어져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김완흠 경장이 조용히 생각을 하다, 생각을 하길 또 멈췄다. 죽거나 뒤졌겠지.
사람을 실어나를 배가 부족했다. 고봉준급 구형 LST선까지 동원해 피난민을 실어날라야 했지만
100톤짜리 어선조차 해상전선으로 투입되는 마당에 피난민의 존재는 그저 짐덩어리와 같을 뿐인 듯 했다.
어제 울산항에 입항한다던 LST선은 부산여객터미널로 회항했다. 통영 삼성중공업으로 예인되어
헬리캐리어로 개장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부 시민들이 청천벽력과 같은 그 소식을 듣게되자
폭동을 일으키며 정부에 대한 비난과 욕설을 아끼지 않았다.
김완흠 경장은 또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면, 누가 됐든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현 정부에 대한 욕을
엄청나게 하던지, 당선되면 현 정부에 관련된 군 인사들을 죄다 잡아 족치겠다는 공약을 걸던지 해야 한다고.
피난민들에게 제공된 배는 크고 튼튼한 LST가 아닌 바지선이였다. 만재배수량과 먼 바다에서의 조파저항으로 인한
선적물 아니 선적인원의 침수까지 고려해 몇 가지의 보강을 마친 바지선이였다. 그나마 이쪽은 사정이 좀
나았다. 4번 부두에 있는 바지선은 그냥 바지선에 불과했다. 조파저항이고 나발이고 뒤집어지면 그대로 다 뒤집어지는
배였다. 그나마도 없어서 못탔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바지선으로 몰려들었다.
- 따다다다당!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총소리가 들렸다. 또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단발사격 두 발이였다.
김완흠 경장이 그곳으로 뛰어갔다. 가까운 곳이였다.
"이 씨팔... 이새끼들 다 태우면... 우리는 뭐 타고 가... 이새끼들 다 죽여버려! 그래야 우리가 살아!"
향토예비군 소속의 한 병사가 연기를 내뿜는 M4 소총을 손에 든 채 소리질렀다.
"총 내려 이새끼야!"
같은 부대 소속 현역 병사들이 그에게 수십개의 총구를 겨눴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총구의 사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비규환으로 내달렸다.
"너네도... 너네도 솔직히 그렇잖아. 얘네 다 죽여버리고 우리끼리 배 타고가면... 알잖아...? 전쟁중에는 누구나 죽어...
이새끼들 통제 안따라주니까 죽인거... 아냐? 나는 얘네들이 내 통제에 따르지 않아서 죽였다? 그런데 그거 아냐?
작년 여름에 출근해서 먹으려고 했던 아이스크림 그거 누가 먹었는지 아냐? 박차장 그 씨발새끼가!! 내껀데!!"
"닥쳐 병신아! 총 내려!"
"너네가 씨발! 보석바 쳐먹고 바밤바 받았을때 기분을 아냐고!"
- 꽝!
화성군 해귀류 기행체 하나가 부둣가에서 솟아올랐다. 알 수 없는 말을 피토하듯 외치던 그 병사는 해귀류의 거대한 지느러미에
짓이겨졌다.
"발포! 발포!"
급작스러운 상황이였지만 군인 포함 경찰들은 미친듯이 총을 쏴 대었다. 게중 항만출입소에 설치된 M92 대전차 미사일과
무반동총에서 불을 뿜었다. 아무리 거대한 해귀류 기행체라지만 대전차미사일에는 속수무책인 것 같았다. 머리의 반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해귀류는 줄행랑을 치듯 도망쳤다.
김완흠 경장은 자신이 뭔가를 지켰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도 이걸로 시민들이 조금은 자신들에 대한 불신을
누그러뜨리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채 시민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해귀류가 도망칠 때 까지만 해도 환호성을 지르거나 기뻐 울던 목소리들이 들렸는데, 그들을 웅성웅성 하며 점점 뒷걸음질 쳤다.
어떤 여자는 안고 있던 아이를 바닥에 던지다시피 하고 군중속으로 사라져 도망쳤다.
김완흠 경장이 날씨가 시원해 질 정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고 생각해 뒤를 돌아본 순간, 엄청나게 커다란,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해귀류가 울산항
앞바다를 뒤덮었은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20분전에 출발한 수십척의 바지선과 예인선이 그들에게 통째로 먹히고 있었다. 사람이 후두두둑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소형 해귀류 기행체가 바다에 떨어진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호수공원 같은데 가면,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미친듯이 먹는 잉어의 모습과 같았다.
일련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군인과 경찰, 시민들은 모든것을 놓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은 사방좌우 할 것 없이 그들의 먹이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