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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3 16: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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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1차
내가 동생에게 소개팅 좀 시켜달라고 할 때마다 "양심이 있으면 거울 좀 봐.", "소하고 개는 만나게 해줄 수 있지만, 차마 사람을 만나게
해줄 수 없다" 라며 거절하던 동생이 내가 사회초년생이 되어 목돈을 만진다는 소식을 접한 뒤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외로웠고, 당시에는 멍청하게도 돈만 있으면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소개팅할래?"
"누구? 근육질 남성 소개팅해 주려고?"
"아니 내 친구. 여자야 여자!"
"니가 웬일로 그런 기특한.."
"아니 오빠 서울에서 혼자 지내고... "
오래간만에 기특한 언행을 하는 동생이 기특했다. 약속 장소는 홍대 입구에 위치한 모 고깃집..
"야.. 무슨 소개팅을 고깃집에서 해? 카페나 빵집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소개팅하기 싫어?"
"아니지! 고깃집이면 어떻고 정육점이면 어때! 사람만 만나면 되지!!"
결국 홍대 주차장 거리에 있는 모 고깃집에서 동생과 소개팅 녀를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고 고깃집에 혼자 불판에 손을 쬐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생과 사장님은 '자리도 없는데.. 저 자식이.. 고깃집에서 혼자 캠프파이어하고 있네..'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
같아 돼지갈비 1인분과 사이다를 시켜서 먹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어봤다. 못할 거 같았는데
뺏어 먹는 사람도 없고 괜찮은 것 같았다. 잠시 후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정말 미안해! 오늘 우리 못 갈 거 같아 급한 일이 생겨서.. 설마 혹시 고깃집에서 혼자 있는 거 아니지?"
"응. 당연히 아니지 밖에서 담배 피우고 있었어.."
그날 그 전화를 받고 혼자 1인분을 추가시키고 공깃밥(서비스로 된장찌개도 줬다. 젠장) 그리고 소주를 한 병 마셨다.
혼자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동생에게 진심으로 고맙긴커녕 다음에 보면 불판에 구워버려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