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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7 13: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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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제위시절 서기 400년경에 신라를 침공한 왜를 격퇴하면서,
백제북부지역이었던 한강유역, 신라를 포함한 현재의 경상도 지역, 부산인근이었던 가야지역까지 사실상 점유했던 적은 있습니다.
( 전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토를 사실상 점유했던 시기입니다 )
이후 장수왕 즉위연간인 424년에 신라주둔군을 철수시키고, 450년경에 고구려군이 신라군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역은 결정적으로 감소한것으로 추정됩니다 ( 약 3~40년 정도 신라를 실질적인 속국으로 삼은걸로 보입니다 )
고구려가 한반도 전역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5만이상의 병력을 한반도 남부지역에 상당기간 배치하는게 필요한데,
당시 고구려의 북방전선 상황을 감안할때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추정치이지만 고구려 전성기의 최대동원 가능병력은 20만정도로
이 가운데 10만 정도가 본토에 대한 상시방어태세에 소요되었고, 나머지 10만의 대부분이 북방전선 유지를 위한 병력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을 남방에 상시배치하게 되면 북방전선이 무너지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광개토대왕 연간에도 일시적으로 5만병력이 파견되었을뿐 가야를 격파한후 이들은 다시 귀환했습니다.
고구려가 한반도 남부의 옥토 ( 특히 전라도지역 )를 탐냈던 것은 분명하지만, 고구려가 항상 직면해야 했던 양면전선 때문에 이 지역의 완전한 평정은 실질적으로 어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고구려 지속시기 내내 있었던 귀족간의 세력다툼또한 이런 전략적 병력배치를 어렵게 만드는 매우 큰 요인이었습니다 ( 내 영지 방어에 병력을 쓸수 있지만, 해외원정은 댓가가 따를때만 가능한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