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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0 17: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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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기사와 명종실록, 일본 자료인 고려해전기 일부를 인용합니다.
먼저 국방일보와 명종실록을 참조하면, 당시 화포는 폭발력이 없는 투사체를 날리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 명확합니다.
http://muye24ki.com/zb41pl8/zboard.php?id=work&no=399 / 국방일보 13년 12월 19일자
그런 조선 시대의 전투 장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총통에서 발사한 발사체가 적선이나 적진에 떨어져 엄청난 폭염과 함께 터지는 장면이다. 요즘의 군사용어로 말하자면 착탄과 동시에 터지며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충격 신관의 모습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선 시대에는 그런 폭발물 자체가 없었다. 당시에는 돌덩이를 둥글게 연마하거나 쇳덩이를 발사체로 사용했다. 그래서 임진왜란 이후에도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길이 227~250㎝, 지름 116~124㎜의 초대형 화살형태의 대장군전을 쏜 것이다. 이런 충격 신관형 폭발물은 서양에서도 19세기 중반 이후에나 등장한 근대식 무기에 해당한다. 물론 비격진천뢰와 같은 지연식 폭발물을 개발해 사용한 적은 있지만, 착탄과 동시에 폭염이 발생하는 것은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戰船左右前後, 排設天·地·玄字銃筒, 整備器械, 人伏板屋之下, 不露形體, 而疾棹直進, 迫近賊船, 隨其高下, 一時齊發, 則豈有不破之理, 亦豈有人被鐵丸之患乎?
전선의 전후 좌우에 천·지·현자[天·地·玄字] 총통을 설치하여 기계를 정비하고 사람들은 판옥板屋 밑에 숨어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서 빨리 노를 저어 곧장 적선에 가까이 다가가 그 높낮이에 따라 동시에 일제히 발사했다면, 어찌 격파하지 못할 이치가 있었겠으며 사람들이 철환을 맞을 염려가 있었겠느냐?
(『명종실록』 명종 14년(1559) 6월 6일)
......(전략)......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경(酉ノ刻)까지 번갈아 공격하여 (아군 배의) 고루(高樓)며 통로며 발을 보호해주는 방어시설까지 모두 부수었다. 그 대포는 약 150cm(5尺) 길이의 단단한 나무 끝을 철로 두르고 철로 된 날개도 삼면에 붙이고.......(중략)......화살을 붙인 무기이다. 불화살은 끝에 철을 둥글고 튼튼하게 붙인 것이다. 이런 화살을 약 6~10m(3~5間) 거리까지 다가와 쏘았다. 구키 님은 니혼마루(日本丸) 배의 고루에서 조총(鐵砲)을 쏘셨는데, (적이 쏜) 대포를 한 발도 맞지 않았으니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겠다......(후략)......
(『고려해전기』(계간지 『문헌과 해석』(문헌과 해석사) 57호(2011년 겨울호)에 게재)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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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고려해전기의 6~10m 사거리 기사를 감안하면, 당시 화포의 수준이 어땠는지가 드러납니다.
6~10m 거리에서 폭발이 없는 투사체 발포 화포를 사용하면, 수십발을 발사해도 적선을 침몰시키는게 어렵습니다.
거의 반강제적인 접근전이 불가피합니다.
여기에 고려해전기를 언급하신 분의 분석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선 수군의 전투에서 화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처럼 크지는 않음. (화약도 없고, 운용 수준이 낮아서 명중률도 조악하다) 사용해도 6~10m라는 기록이 보여주듯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사용.
2. 함포사격을 하긴 했지만, 적함을 격침하기보다는 인명살상이 주 목적이었고, 따라서 화포를 발사할 때도 대형화살이나 포탄보다는 소형탄환을 주로 사용. 단, 인용한 안골포해전의 경우는 일본군의 니혼마루가 높은 누각을 가진 구조이기 때문에 시설물을 부수기 위해 차대전 사용.
3. 해전에서 주된 무기는 화포보다는 활이 메인.
조선군이 화포를 비롯한 각종 화약무기를 사용했다고 해도, 이때는 16세기 막바지. 함포의 비중이 높아질려면 서구에서도 백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순신에 대해 함포사격을 주로 하는 근대해전의 효시로 보면서 일방적으로 일본군을 이긴 것처럼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순신은 함포를 위주로 하는 근대해전보다는 노선과 함포, 궁시류를 사용하던 노선시대 마지막인 갤리어스 단계의 해전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노선시대 마지막 단계 전술의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었고, 전략적으로는 노선시대에 범선시대에 구현된 주요 전략을 모두 구사하며 제해권을 장악했다는게 전쟁사적으로 이순신이 가지는 진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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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화포운용'이라는 프레임웍에 이순신장군을 가두는게 더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평가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