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2021-08-03 20:13:06
20
계단 3칸 이상만 돼도 손잡이 없으면 못 내려가는 중증 고소공포증 환자입니다. 저는 치료를 권유 받았을 정도이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저 높은 곳이 무섭다 정도라면 정신과적인 고소공포증은 아닙니다. 너무 안타까운 게, 사람들이 높은 곳을 좀 과도하게 무서워한다고 고소공포증이네를 남발하면서 실제 고소공포증 환자들은 정신력이 약하다든가, 나약하다 같은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지하철 계단도 손잡이 없으면 못 내려가요. 지하철에 스크린도어가 생겨서 다행이에요. 예전에 스크린 도어 없을 때는 벽에 붙어 있었어요. 앞으로 나가면 죽을 거 같거든요. 지금도 지하철 별로 안 좋아해요. 에스컬레이터 탈 때 몇 번은 지나 보내고 숨 한 번 크게 쉬고 발을 높게 들어올리고 안착시켜야 해요.
3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던 게 아니라 인식이 없으니까 그냥 넘어갔던 겁니다. 대부분 저처럼 심한 수준은 아니니까 무서워~ 하면 어른들이 달래는 수준에서 넘어가 줬던 거고요.
더 정확히 말씀 드리면 80년대 어린 시절 보냈는데 전 그 때도 심했어서 저희 가족은 케이블카나 이런 거 못탔어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리프트 단체로 탈 일 있었는데 같이 탄 친구가 올라가는 내내 저 꽉 붙들고 죽지 않는다고 말해 줬고, 내려올 때는 앞에 양옆에, 뒤에까지 친구들이 붙어서 제 시야 차단해 줬어요.
좋은 점은 일상이 모험 같습니다.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타고 익사이팅과 버라이어티와 짜릿함과 무서움을 다 느낄 수 있고요...(혜성특급은 높은 곳 안 들어간다고 해서 탔다가 관리요원 몇 명이 뛰어나온 적 있네요. 사람 안색이 아니었나 봐요...ㅠㅠ)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만 타도 별나라고 가는 것 같은 아득한 유체이탈을 경험할 수 있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