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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4 2018-05-30 13:05:14 2
피자의 핵심은 [새창]
2018/05/30 12:39:34
파인애플이 빠졌네요..
12213 2018-05-30 12:29:03 0
여자 팬티 훔치다 걸린 고시원 주민 [새창]
2018/05/30 11:22:29
남녀 구분 없는 고시원은 남자든 여자든 여러모로 참 불편할듯...
12212 2018-05-30 12:25:38 6
옷발 잘받는 체중.jpg [새창]
2018/05/30 11:38:48
디지털도어락으로 바꾸세요. 편해요.
12210 2018-05-30 02:57:28 6
여자를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용사 [새창]
2018/05/29 18:58:36
1드래곤볼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이 캐릭터 디자인을 맡으셨나 보네요.. 어쩐지 옷이 피콜로 같더라니..
12209 2018-05-30 02:52:30 1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관해 [새창]
2018/05/27 19:14:13
불변하는 가치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예, 아니오로 답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확실히, 저는 불변하는 도덕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도덕적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입니다. 도덕적 가치는 분명히 변하는 거죠.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경향성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 할수록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높아져왔고,
이것은 대체로 일방적으로 진행되며 역행하지 않습니다. 현대에는 어떤 사회에서도 노예제는 악이며,
결코 그것이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로 회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역시도,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개개인들이 가진 가치관의 단순합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승자 독식의 다수결은 더더욱 아니구요.
시대에 따라 변하고 모든 개개인이 서로다르게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이 공존 가능하도록 만드는 질서체계가 도덕과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은 항상 변하지만, 그것이 조화롭도록 만드는 방식에는 분명한 발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향성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에는 어쩌면 궁극의 윤리적 이상향이 존재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될지도 모르죠.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떤 사회를 불문하고 살인은 악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자연계를 돌아보면 동족상잔을 벌이는 종은 수없이 많고, 인류의 조상도 그중에 하나였을 겁니다.
그들의 '살인'을 우리는 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 꼭 그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지금에도 어떤 살인은 정당한 것으로, 심지어는 정의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과연 '살인은 나쁘다'는 윤리적 명제는 확고불변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절대적 도덕가치인 걸까요?

글쎄요. 저는 이조차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것이 확고불변하는 도덕가치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고시대로부터 인간은, 살인이 악하다고 말해왔고 그것은 누구나 당연한 사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사람을 죽여 왔습니다. 살인은 악이라는 보편 타당한 진리가,
사람을 죽인다는 악행을 멈추지는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한 윤리적 명제 그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윤리는 주관을 배제한 절대 객관일수는 없으며,어떤 불변의 윤리적 명제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윤리를 실천하는 것은 실존하는 개개인입니다.
그리고 실존하는 개별적 존재인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윤리적 명제 그 자체가 아닌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하다, 거짓말하는 것은 악하다 같은 칸트식 정언 명령은 우리가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것은 타당한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도를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독립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본경찰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올바른가, 인간이 먹기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정당한가.
모든 윤리적 딜레마는 가치있는 것과 가치있는 것의 충돌이며, 우리는 그것을 저울질하고 갈등하며 심사숙고해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 저울에 올라가는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윤리적이라고 믿는, 이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가치만이 아닙니다.
이기심, 자기 자신의 필요, 그리고 내게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필요를 고려하는 것은 많은 경우 윤리적 가치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두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 내 아이를 먼저 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두 아이가 생존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제비뽑기를 해야하는가.
여기서 자신의 아이를 먼저 구한다는 선택을 하더라도 이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식을 위한다는 이기적 동기가 윤리적 저울에 올라갈 충분한 조건이 된다는 이야기겠죠.

우리는 수많은 가치, 욕망, 당위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세심하게 따지며 갈등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과 갈등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안을 갈구하도록,
조금이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하고 어떤 가치를 희생시켜야 합니다. 어떤 동물성 식품도 섭취하지 않기로 선택한 비건은
행복과 삶의 질, 그리고 건강을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식물조차 해하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서서히 말라죽기를 기대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미생물조차 해하지 않기 위해 숨을 쉬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즉시 자살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장 속에서 공존하던 수많은 미생물에게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오겠지만요.

좀 더 쉬운 선택도 있습니다. 내 몸이 편하고, 내게 가까운 존재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음으로서 충분한 영양을 얻고, 내 아이를 먼저 구하고, 내 가족을 위해 일하고, 내 나라를 위해 싸우고, 인류를 위해 산업을 발전시키는 거죠. 이런 선택은 때때로 이기주의로, 집단이기주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정당하고 올바른 선택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어떤 선택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올바르다고 말하기는 어렵죠.
저울에 올린 가치의 무게감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와 환경,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인간이 만약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덜 탐욕적이고 덜 야만적이었겠죠.
(사실 애초에 광합성을 할 수 있고 욕구가 없다면 그냥 식물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먹을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간다는 가치를 위해 다른 존재의 생존이라는 가치를 희생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윤리적 경향성, 자유와 평등 같은 가치가 점점 보장되는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명백히 인류의 지식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것입니다. 더 많은 선택지가 열리고, 더 적은 희생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지만, 수많은 디스토피아적 이야기들처럼
만약 영구적이고 복구불가능한 형태로 인류 문명과 과학기술이 소멸되고 원시적 인간으로서 자연에 내던져진다면,
인간이 논해온 그 많은 도덕적 가치들, 자유, 평등, 박애, 질서, 안정, 합리 같은 것들은 과연 얼마나 지켜질수 있을까요..

이야기가 좀 새는 느낌이지만..
어쨋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고민과 갈등을 회피하려고 저울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부색이 다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동물에겐 영혼이 없다고, 그것이 고려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자신을 속이고 윤리적 딜레마에서 그러한 선택지를 배제해 버리고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 윤리적 딜레마는 없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거죠.
당장은 별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맘편히 고기를 먹으나, 불편해하고 죄책감 느끼며 고기를 먹으나
고기를 먹는 것은 고기를 먹는 것이고, 어쨋든 소 돼지 닭들은 죽어나갑니다.
그러나 그걸 불편해하고 꺼려하는 개개인의 윤리적 고민이 충분한 무게에 달한다면 사회를 변하게 만드는 힘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2207 2018-05-29 21:37:13 0
ㅂㅅㄱ 퀘스트주수리 방법없을까요? [새창]
2018/05/29 01:16:18
뽕맛을 즐기시려면 승률은 조금 포기해야죠..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ㅎㅎ
12206 2018-05-29 20:04:44 62
여자를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용사 [새창]
2018/05/29 18:58:36
그러네요.저고리 깃에 덧댄 하얀 동정은 한복의 특징인데...
찾아보니 좀 애매하네요. 기모노도 아니고 한복도 아닌 듯한..
하카마라고 하기엔 위아래가 분리된 느낌이 치마저고리같아 보이기도 한데,
치마저고리라고 하기엔 옷고름 없이 오비를 둘러맸고..
머리 모양이나 화장도 일본 헤이안시대 스타일인 것 같고. 그냥 근본없는 짬뽕 옷인듯...
다른 등장인물들도 옷이 다 개연성 없이 짬뽕이라, 꼭 한복을 비하하려고 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12205 2018-05-29 05:02:04 56
대학동기 여사친과 실수로 잠을 자버렸어요 [새창]
2018/05/28 22:19:21
여친도 없는데 누구한테 비밀로 한단 말인고...
12204 2018-05-29 03:01:50 0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관해 [새창]
2018/05/27 19:14:13
글쎄요... 애초에 '잔인하다' '비도덕적이다'라는 판단 자체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의 이야기죠..
윤리란 그 관점을 벗어나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치관은 '나'라는 주관에 의해,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죠.
그리고 윤리와 도덕은 수많은 자기중심적 가치관들을 공존 가능하도록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윤리는 개별적이고 실존적인 '나'의 가치관에 기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책감을 덜 느끼고 싶은 우리의 위선적인 이기심..그게 윤리의 시작점인 거죠.
우리는 본능적으로 감정을 느끼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감정에 공감합니다.
이 감정이 우리가 공존 가능한 질서를 세우도록 도덕과 윤리라는 공통의 가치체계를 만들도록 요구하죠.

따라서 식사에 관한 윤리적 고민의 핵심은 '식물이 고통을 느끼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를 방망이로 때려 죽이는 것과 볍씨를 방망이로 찧어 쌀가루를 내는 것의 도덕적 무게는 같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개를 죽이는 것, 벌레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느끼는 도덕적 무게감 역시 다르죠.
누가 그렇게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낍니다.

물론, 그런 기준으로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을 세우고 오늘날 기준으로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매우 많이 저질렀습니다.
자기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해서 노예로 부리고 죽이거나, 인간 외의 동물들은 영혼이 없다며 잔인한 실험을 자행하기도 했죠. 그러나 현대 사회는 결국 그런 행위들이 비윤리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는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을 겁니다. 민주적인 원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해,
피지배자의 저항으로 인한 손실이 마침내 그들을 착취해서 얻는 이익을 넘어섰기 때문일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회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단적으로, 오늘날 동물실험이 폐지되는 추세인 것은 동물들이 저항했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요구하는 것은, 그 감정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편하자고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진실을 덮어버리지 말고 직시하라는 겁니다.
그 이후의 윤리적인 판단은 결국 개개인의 몫입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을 알지 않으려 하고, 알고 있는 것을 잊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 알고자 하고, 최선을 다해 느낀 이후에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은 '고통'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여
'뇌사 상태의 인간은 먹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식물'이 일반적으로 윤리적 감정이입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존재이기에...
이들이 만약 고통을 느낀다면 경계선 안으로 포용하기 위해서 하는 질문인 거죠.
반면에 인간은 그 경계선 안에 있던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이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와 관계 없이
우리는 이들을 윤리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물론...극단적으로 우리의 윤리감정을 확대한다면, 식물을 먹는 것도 비윤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국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렇게 무제한으로 팽창한 윤리기준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입니다.
이를테면, 바위를 쪼개고 반듯하게 잘라서 건축자재로 쓰는 것 또한 바위가 고통을 느끼지는 않지만 부자연스럽고 잔혹한 일인가? 같은 거죠.
글쎄요..극단적으로 무생물까지 윤리적 대상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본적도 있긴 합니다만, 실제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윤리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무제한적인 팽창은 오히려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 자신에게, 내 가족에게, 내 친구와 이웃에게 더 큰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들과 빼곡히 심어진 곡식에 같은 윤리적 무게를 느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인류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인공비료를 만들어 뿌리는 것에도 윤리적 문제의식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님께서 도덕이란게 박살나버린 인격 파탄자이라는 말씀은 농담이시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비도덕이라고 느끼며 죄책감을 느끼고 갈등하는게 윤리적 인간인거죠.
그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먹는다는 선택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면의 상황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윤리적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려서 갈등조차 하지 않는 것이 비윤리적인 거죠.

마지막으로 공장식 육식문화가 너무 거대해져서 구조 개편이 불가능한가...글쎄요.. 이건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가축에게 고통을 덜 주는 소위 자연친화적인 목장들이 꽤 잘 발달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나오는 축산물들의 가격은 의외로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습니다.
물론 대규모의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어쨋든 공장식 축산을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개선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2202 2018-05-29 01:36:04 0
나만갖고있을거야 [새창]
2018/05/29 00:29:57
옛날에 집에 하나 있었는데 빨랑 써야 하는데 열리는게 너무 느려터져서 답답했음..
12201 2018-05-29 01:22:29 6
보고 눈물 쏟았던 장면 만화 [새창]
2018/05/28 23:34:15
카미나가 죽었을 때..?
12200 2018-05-28 23:16:07 0
노자와 무위자연 [새창]
2018/05/28 22:37:38
엄밀하게 따지면 어디까지가 무위고 어디서 부터가 인위인지 구분하기 어렵죠.
애초에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며 뭘 엄밀하게 정의하고 구분 짓는 사상이 아니니...

그냥 적당히 알아먹자면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닙니다.
'무리해서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말아라, 순응하고 적당히 살아라'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노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와 사상 전반을 살펴보면 그가 말한 인위란게 뭘 말하는지 대충 나오죠.
거대한 제국이 쇠퇴하고, 수많은 제후국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며 싸우고,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혼란 스러운 정국에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하는지 논하던 시대...

노자가 꿈꾸던 이상 사회는 소국과민이라는 말로 잘 나타납니다. 작은 국가, 적은 백성.
제후국들이 세력을 확대해 더 많은 백성을 통치하려고 싸우던 것과 정 반대의 이상향이죠.
노자가 말하는 인위란 더 많은 권세를 누리려고, 더 많은 부와 명성을 얻으려고 아득바득 싸우고 사람을 죽이며
치열한 아비규환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거꾸로 무위란, 그런 쓸데 없이 과도한 탐욕을 버리고 자연 앞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먹고 사는데 필요한 일들만 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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