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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02: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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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하는 가치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예, 아니오로 답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확실히, 저는 불변하는 도덕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도덕적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입니다. 도덕적 가치는 분명히 변하는 거죠.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경향성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 할수록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높아져왔고,
이것은 대체로 일방적으로 진행되며 역행하지 않습니다. 현대에는 어떤 사회에서도 노예제는 악이며,
결코 그것이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로 회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역시도,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개개인들이 가진 가치관의 단순합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승자 독식의 다수결은 더더욱 아니구요.
시대에 따라 변하고 모든 개개인이 서로다르게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이 공존 가능하도록 만드는 질서체계가 도덕과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은 항상 변하지만, 그것이 조화롭도록 만드는 방식에는 분명한 발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향성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에는 어쩌면 궁극의 윤리적 이상향이 존재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될지도 모르죠.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떤 사회를 불문하고 살인은 악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자연계를 돌아보면 동족상잔을 벌이는 종은 수없이 많고, 인류의 조상도 그중에 하나였을 겁니다.
그들의 '살인'을 우리는 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 꼭 그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지금에도 어떤 살인은 정당한 것으로, 심지어는 정의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과연 '살인은 나쁘다'는 윤리적 명제는 확고불변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절대적 도덕가치인 걸까요?
글쎄요. 저는 이조차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것이 확고불변하는 도덕가치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고시대로부터 인간은, 살인이 악하다고 말해왔고 그것은 누구나 당연한 사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사람을 죽여 왔습니다. 살인은 악이라는 보편 타당한 진리가,
사람을 죽인다는 악행을 멈추지는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한 윤리적 명제 그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윤리는 주관을 배제한 절대 객관일수는 없으며,어떤 불변의 윤리적 명제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윤리를 실천하는 것은 실존하는 개개인입니다.
그리고 실존하는 개별적 존재인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윤리적 명제 그 자체가 아닌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하다, 거짓말하는 것은 악하다 같은 칸트식 정언 명령은 우리가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것은 타당한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도를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독립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본경찰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올바른가, 인간이 먹기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정당한가.
모든 윤리적 딜레마는 가치있는 것과 가치있는 것의 충돌이며, 우리는 그것을 저울질하고 갈등하며 심사숙고해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 저울에 올라가는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윤리적이라고 믿는, 이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가치만이 아닙니다.
이기심, 자기 자신의 필요, 그리고 내게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필요를 고려하는 것은 많은 경우 윤리적 가치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두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 내 아이를 먼저 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두 아이가 생존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제비뽑기를 해야하는가.
여기서 자신의 아이를 먼저 구한다는 선택을 하더라도 이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식을 위한다는 이기적 동기가 윤리적 저울에 올라갈 충분한 조건이 된다는 이야기겠죠.
우리는 수많은 가치, 욕망, 당위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세심하게 따지며 갈등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과 갈등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안을 갈구하도록,
조금이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하고 어떤 가치를 희생시켜야 합니다. 어떤 동물성 식품도 섭취하지 않기로 선택한 비건은
행복과 삶의 질, 그리고 건강을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식물조차 해하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서서히 말라죽기를 기대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미생물조차 해하지 않기 위해 숨을 쉬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즉시 자살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장 속에서 공존하던 수많은 미생물에게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오겠지만요.
좀 더 쉬운 선택도 있습니다. 내 몸이 편하고, 내게 가까운 존재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음으로서 충분한 영양을 얻고, 내 아이를 먼저 구하고, 내 가족을 위해 일하고, 내 나라를 위해 싸우고, 인류를 위해 산업을 발전시키는 거죠. 이런 선택은 때때로 이기주의로, 집단이기주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정당하고 올바른 선택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어떤 선택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올바르다고 말하기는 어렵죠.
저울에 올린 가치의 무게감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와 환경,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인간이 만약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덜 탐욕적이고 덜 야만적이었겠죠.
(사실 애초에 광합성을 할 수 있고 욕구가 없다면 그냥 식물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먹을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간다는 가치를 위해 다른 존재의 생존이라는 가치를 희생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윤리적 경향성, 자유와 평등 같은 가치가 점점 보장되는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명백히 인류의 지식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것입니다. 더 많은 선택지가 열리고, 더 적은 희생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지만, 수많은 디스토피아적 이야기들처럼
만약 영구적이고 복구불가능한 형태로 인류 문명과 과학기술이 소멸되고 원시적 인간으로서 자연에 내던져진다면,
인간이 논해온 그 많은 도덕적 가치들, 자유, 평등, 박애, 질서, 안정, 합리 같은 것들은 과연 얼마나 지켜질수 있을까요..
이야기가 좀 새는 느낌이지만..
어쨋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고민과 갈등을 회피하려고 저울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부색이 다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동물에겐 영혼이 없다고, 그것이 고려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자신을 속이고 윤리적 딜레마에서 그러한 선택지를 배제해 버리고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 윤리적 딜레마는 없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거죠.
당장은 별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맘편히 고기를 먹으나, 불편해하고 죄책감 느끼며 고기를 먹으나
고기를 먹는 것은 고기를 먹는 것이고, 어쨋든 소 돼지 닭들은 죽어나갑니다.
그러나 그걸 불편해하고 꺼려하는 개개인의 윤리적 고민이 충분한 무게에 달한다면 사회를 변하게 만드는 힘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