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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9: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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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님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평소 생각하는 바가 있어 사족을 달아 봅니다.
우리가 '이유'라고 부르는 것에는 크게 두가지, 원인과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가 죽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한다면, 그건 사인, 즉 죽은 원인을 묻는 것이죠. 죽은 목적이 아니라.
한편 A를 죽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한다면, 죽인 목적을 묻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매우 다르지만, 흔히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예를들어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할 때,
흔히 '높은 나무가지의 이파리를 쉽게 뜯어먹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죠.
보다 정확한 설명은 '긴 목을 가진 기린이 더 높은 곳의 먹이까지 확보할 수 있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얼핏 보기엔 이 둘은 비슷한 말이지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원인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목적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진화엔 경향성이 존재할 뿐, 목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적이 존재하지 않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목적은 분명히 존재하죠.
각 개체가 생존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번식하고자 하는 열망은 분명히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 목적 역시도 진화라는 현상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은 생존, 또는 발전은 진화의 목적이 아니며,
생명체의 목적 또한 생존, 또는 진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생존, 번식은 우연적 운명의 결과로 각 개체가 가진 목적일 뿐입니다.
생존, 번식이라는 목적 의식을 가지지 않은 개체 또는 유전자가 도태되는 것은 진화론적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그 개체, 또는 유전자가 어떤 거대한 자연의 질서의 목적에 위배되는, 비가치적인 성향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현상일 뿐이죠.
제 주장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분명히, 인간,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데에는 '목적'은 없습니다.
단지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이 결합된 결과 행성이 생성되고 생명이 탄생하고 복잡성을 더하는 경향성을 보이며 진화했다는
'인과'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데에는 목적이 존재합니다. 그 목적은 생존이나 번식일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 진화론적 경향성에 따라 다수의 개체가 그러한 목적을 지니게 되었지만,
우리는 우연적 운명에따라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목적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 그리고 인간을 목적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써 목적이기 때문이며, 인간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의미는 인간 스스로가 목적을 부여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