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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3 00: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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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라면 당연히 지속되기를 저도 원합니다.. 저는 절대 이 토론이 감정적인 부분으로 발전하길 원치 않는다는 점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혹여 제 문장이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미리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규범이 말씀하신 바처럼, 소프트하든 강력한 것이든 제재나 구속력을 전제하며, 어떤 일률적인 가치 기준을 모든 개인에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의 원칙과 위배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 사회에서 경제학적인 사조의 의미를 상당히 포함하게 된 자유방임주의나 신자유주의 같은 '현대적인 자유주의'들에서 논의되는 것들이라기보다는, 존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즉, 신자유주의나 자유방임주의를 사용하지 않는 아주 '강력한 복지국가'를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복지국가에서는 인터넷에 올린 글을 삭제할 자유와 댓글 단 이들의 삭제당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유방임주의vs공동체주의의 대결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그것입니다.
결국 요지는 자유 대 자유의 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의 '자신의 글을 삭제할 자유'와, 댓글 쓴 이의 '내 댓글이 삭제당하지 않을 자유'의 대결이죠. 사실 작성자님이 이전에 제게 말씀하셨듯이 "그런 가치관으로 글 삭제하고 싶으면 해라. 대신 욕 먹을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욕 먹는다는 책임을 전제하면 다원주의 원칙이 개인의 가치관으로 포장해서 이러한 상황들을 용인해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개인적인 철학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요. 저는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한 개인의 행위 가능한 범위의 외연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맘대로 하는 것' 이라는 자유의 사전적인 의미에서부터 출발했을 때, 우리는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자유롭지 않은 것이 되고, 우리가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게끔 하는 '어떤 것'은 우리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약 조건이 될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글을 쓰고 거기 댓글들이 달렸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단순히 그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본문을 삭제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고 할 때, 저는 제 욕망을 어떻게 실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본삭금 같은 시스템들이 없다고 가정해보죠. 저는 댓글 단 사람의 '자신의 댓글을 잃지 않을 권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제 자유를 포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의 자유에 대한 욕망이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하고 제 자유를 실현할 수도 있죠.
제가 후자를 선택할 때 작성자님은 아마 저를 본인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권리와 사회적 규범을 짓밟았다는 이유에서 비난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과연 저는 정말로 자유로웠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댓글도 살리고 제 글도 지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지 못했고 자유롭지 않았어요. 모든 글을 지우고 비난을 사던지, 내 욕망을 포기하던지, 두 선택지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댓글을 살리고 본문만 삭제하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본삭금을 개발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러한 문제를 사회 규범vs.개인의 자유 구도로 만드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왜냐면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집단, 공동체, 사회 안에서 제약되기보다는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애초에 이 철학게에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오유라는 집단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죠. 이러한 집단이 생기기 전에 제가 욕망했던 것, "어떤 사람 많은 게시판에 내가 생각하던 것을 써서 보이고 싶다."는 실현될 수가 없었을 겁니다. 비록 본문과 댓글 전부 삭제하는 것과 아무것도 삭제하지 않는 것, 둘 중 하나의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상황을 강제당하여 부자유한 상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상태는 오유라는 집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더 자유롭습니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바대로 행위할 수 있는 것이 약간이라도 늘었기 때문입니다. 즉, 내 '행위 가능한 범위의 외연'이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공동체의 규범과 대결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와 양립불가능한 개념이 아닙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 하나는 파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부연 설명 하자면, 우리는 선험적으로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그런 자유를 여러 규범과 법으로 제약하는 주체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밀이 이런 인식에 책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자연인으로서의 한 개인을 황무지에 떨어뜨렸을 때, 그가 가지는 행위 가능한 범위의 외연은 문명 사회 속의 개인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떨어집니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힘에 의해서 무한히 확장되는 것이며, 공동체는 그런 개인들의 자유를 더 확장하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자유에 대한 제 생각의 요지입니다. 우리가 댓글을 제외하고 본문만 삭제하는 시스템이나 본삭금을 개발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가 볼 때는 게시판에서 글을 함부로 삭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거나, 개인의 글 삭제한 자유를 이유로 다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제 개인적인 사유 세계 안에서는 구시대적(이라고 하면 죄송하지만)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본삭금 이상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겠죠.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여전히 글 삭제를 억압하는 규범(비웃음 정도의 소프트한 구속력을 가졌더라도)의 존재한다거나, 혹은 그것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