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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9 19: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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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영 방식을 생각할 때 그 시스템의 효율성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부분이 '운영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 '정의', '평등' 이러한 가치들의 무게와 의미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통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무리 효율적이더라도 인간의 행복 측면에서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등주의가 싫다고 하셨는데, '평등'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무엇일까요?
법 앞의 평등? 분배의 평등?
'노력한 만큼 잘 산다.'는 개념은 사유재산이 허락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불명확한 개념이 아닐까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로부터 강남의 빌딩을 물려받은 소년과 고아원에 버려진 소년이 평등하게 출발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 고아원에 버려진 소년에게 어떠한 어드밴티지도 주지 않고 '법 앞의 평등'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과연 '평등한' 사회일까요?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을 쓴 채로 합의했을 때 만들어지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얘기합니다. 우리 모두가 불합리한 무언가에 대한 '정의의 센스'를 가지고 있으며, 일상에서 어떠한 불공정한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합일된 직관에 기초하여 올바른 정의관을 세우는 작업이 올바른,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을 위해 필요할 겁니다.
롤스가 제시한 정의의 아이디어는 무지의 베일을 쓴 채로 합의한 사회입니다. 그 무엇도 모르는 '무지'의 베일을 쓴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게 될 사회에서 자신이 속하게 될, 혹은 선택하게 될, 사회적 클래스, 조직, 종교, 심지어는 자신의 가치관조차 모르는 상태로 '태어날 사회'에 대해 합의를 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의 결과는 사유재산이 완전히 평등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롤스는 그 사회를 '정의롭다.'라고 얘기합니다.
정의에 대한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평등, 공정에 관한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직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직관은 단순한 질투나 시기로부터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 나보다 힘이 센 어떤 야만인이 함께 사냥한 사슴의 고기를 독차지한다면, 나는 그의 행위가 '불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며,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사슴의 고기는 불공정하게 분배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슴 사냥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서 고기를 분배했다고 쳤을 때, 과연 적은 몫을 얻게 된 힘이 약한 원시인이 느낄 '불공정함'은 완전히 해소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발생합니다.
애초에 그가 힘이 약하게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는 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몸을 원하지 않았을까요? 두 원시인이 자신이 어떠한 몸으로 태어날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서 사슴 고기의 분배에 대해 합의한다면, 정확히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하지 않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훨씬 복잡해집니다. '사슴 사냥에 기여한 정도'는 현대 사회에서 훨씬 더 다양한 factor들과 변수들이 심각하게 꼬여있는 구조를 이룹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슴 사냥에 기여한 정도'를 정확히 계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노력한 만큼 잘 산다.'라는 개념은 그 의미가 불명확한 것은 물론이며, -롤스의 주장에 따르면-우리의 일반적인 직관의 합의로부터 도출되는 정의관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국가 발전에 효율적인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삶의 목표는 '행복한 삶'이지 '국가의 발전'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시스템을 좀 더 철학적으로 수정하고 다듬어갈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