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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7 00: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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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모두 미래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봤으니까 생기는 느긋한 평가라는 거죠. 당대에는 그렇게 명백하게 판단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1번은 소련의 혁명 이전부터 공산주의는 팽배했었고, 이미 마르크스 당대에도 비판까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1차대전으로 인해 공산주의가 사그러들었으나 결국 소련의 등장으로 현실화 되었을 뿐, 끓는 점 이하에서 공산주의가 없었다고 보긴 힘들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제도를 정비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그 공산주의 하 계획경제는 히틀러의 팽창을 막는 최고의 체제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2번은 가능성일 뿐이니까 그러려니 해야겠지만, 박죤늬의 엉성한 쿠데타가 성공한 걸 봐선 용공분자의 쿠데타도 비슷한 형태로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는 북한에는 통일에 동조하는 세력이 남아있었으며 공업생산력은 남한을 능가했었지요. 당대의 관점에서는 역시 가능한 영역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공산주의 체제 자체에 잠재된 모순과 위험성을 결정적으로 인지하진 못했을지도 모르죠.
3번은 양당제 국가가 아닌 한 항상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당시엔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에서 상대를 꿇리고 흡수할만한 대세따윈 없었습니다. 그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DJP연합을 끌어냈으니 좋은 교육이 되었다고 할지... 군부정권을 종식시킨다는 대의, 이것도 미래시점에서의 결과론입니다.
4번은 댓글 내에서 결론이 나왔네요. 당시는 노무현의 개혁으로 인해 피로와 염증이 커졌으며 큰 물줄기가 반동이었습니다. 그게 대충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부정하긴 힘듭니다. 지금에 와서 이상주의자가 옳았음이 밝혀졌을 뿐이죠.
기실 역사의 대세와 정의라 해도 물밑에선 기득권층의 나눠먹기가 대다수이며, 정작 그 대세가 뭐라 정의하기도 애매합니다. 다수결이라 하면 어맹뿌와 ㄹ혜도 시대정신이라 해야할테니 뭔가 억울하고, 그렇다고 '내가 정의다'라고 말하면 좀 웃길 겁니다. 결국은 후세의 역사가들이 양심을 갖고 평가해주길 바라야 할 뿐이겠죠. 그저 사람들의 평균에서 반발짝 앞서 가는 게 고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