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
2017-06-08 19:40:08
33
1.
책임소지를 냉정히 따진다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이거 거의 제국주의적 관점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사악한 게 아니라 너희가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계몽하겠다는 태도죠. 우리가 비록 아편을 팔지만, 그건 너희가 필요로 하는 거니까 파는 것이다는 식으로 얼마든지 합리화 하는 격입니다. 마치 1000원주고 빵이랑 우유 사오고 거스름돈 500원 남겨오란 거... 게다가 그 1000원이 마약이다보니 삼켰다간 국가적으로 골병이 들죠.
2.
그리고 무역적자가 발생했다고 아편을 수출하는 건 상도덕이나 윤리는 쌈싸먹는 태도입니다. 이를 동의했다간, 트럼프가 한국을 타겟으로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에 마약을 유통하겠다고 하면 대응할 논리가 사라지고 말죠. 마약을 공급하다보면 수요가 자연스레 만들어지니까 그야말로 창조경제; 이럴 땐 일천한 경제논리를 따질 게 아니라 미국 개객기를 외치는 게 맞습니다.
(이건 예시고 저 반미주의자, 트럼프 안티 아닙니다 ㅠ)
3.
추가로 비례의 원칙도 있지요. 협정을 먼저 어긴 건 중국이라지만, 거기에 무한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건 굉장히 불합리한 태도입니다. 피해를 입었으면 정부차원에서 그 피해에 대한 구상권을 요구하면 될 일이지, 상대정부를 무릎꿇리는 건 역시 외교적으로 무분별한 태도입니다.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이 동의했다고 하면... 뭐, 조선은 반대했을 거고, 인도나 베트남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겠죠.
그래도 당대의 시대정신이 그러했다고 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시점에서 당대 사건의 경중을 따지는 의의도 동시에 사라질 겁니다. 한일합병도 부도덕하고 부패한 조선정부에 대한 일제의 불가피한 최종선택이었고, 남경대학살, 위안부도 전쟁에서 의레 발생하는 사건에 불과한 거지요. 역사 속 그 누구도 현대인의 관점에서 비판을 받거나 죄과를 질 이유는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논의에 동조하긴 힘들 거 같습니다. 물론 약자가 선이라는 명제에도 동의하진 않지만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고, 제국주의는 기본적으로 양심이 사악하게 퇴화하는 거 같습니다. 그 위대한 존 스튜어트 밀도 식민지 옹호자였고 하니 당대의 감성이 아주 왜곡된 건 아니었겠죠. 그런데 현대에도 비슷한 주장을 하면 확실히 비판적으로 봐야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