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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01: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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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사상의 배경에는 지정학적 요인도 충분히 있는 거 같습니다.
중국본토는 중원의 평원지역, 대운하와 황하, 양자강 수운을 벗어나면 확장하는데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지형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국운을 걸고 침략전쟁을 하다 결국은 대충 성공했다 치고 돌아온 걸 봐도, 국력을 쏟아부어도 복속시킬 수 있을 정도의 거리조차 안나오는 거지요. 원나라가 예외였다고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발흥한 국가도 아니고 중화사상도 아니었으니 예외라고 치고...
반대로 중국본토 내에서는 방어에 불리한 지형이 많다보니 패권을 잡는 세력이 통일왕조를 이루는 게 보통이었던 거 같습니다. 위의 내용과 조합해보면 통일왕조를 이룬 중국으로선, 국력은 천문학적으로 강해졌음에도 깐죽대는 이민족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단은 없는 불합리적인 상황에 자꾸 놓이게 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화사상'을 활용하여 주변 이민족들을 제어하기로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조공-책봉관계는 중국이 가진 패권을 인정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겠다는 현실주의적 외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변국은 실리를 챙겨서 좋고, 중국은 패권도 인정받고 외교관계도 안정할 수 있어서 좋으니 상호간에 이익인 거죠. 즉 중화사상은 중국 민족의 특수성, 또는 중국 본토에 풍수지리적 영험성이 있다기보단, 지금의 국제법 관례와 비슷한 작용을 한 거 같습니다.
이후 아편전쟁 이후 중화사상이 붕괴된 것은 중국의 패권상실 자체보다도 국제법의 무정부성을 깨닫게 된 게 결정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인지부조화로 소중화사상으로 퇴화하거나, 이 세상은 똥이야 똥을 외치며 사회진화론으로 흑화하거나, 또는 냉정하게 세계관을 다시 재구성하는 등, 결정적인 선택지에 놓였던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