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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0 20: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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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산안을 결정하는 비용-편익분석에는 회계적 비용이 아닌, 경제적 비용을 기준으로 생각해봐야합니다. 금전적으로는 동일하게 치환할 수 있다해도 인적자원의 육성시간, 숙련도와 노하우, 안보에 대한 시민의식, 예비군 자원 등까지 감안한다면 모병제는 꽤 비관적으로 다가오지요. 이 때문에 최근 선진국은 되려 모병제에서 징병제를 가미하거니 회귀하는 정책을 내곤 합니다. 안보위협이 각별하지 않더라도 징병제, 즉 국민개병제에는 회계적 비용만으로 대체하기 힘든 효과가 있기도 합니다.
2. 미사일 만능주의와 같은 폐단이지요. 전쟁이 나면 결국 보병이 깃발을 꽂아야 진정으로 점령이 완료됩니다. 그리고 첨단전이어도 수행하는 건 병력이며, 일단 머릿수가 많으면 전술/전략적으로 선택지가 많아지므로 나쁠 건 없습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가상적국들이 죄다 강군인데다 통일과정에서 유사시에는 막대한 병력을 투입해야할 수 있으니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비대한 육군 병력을 축소하는 건 꺼려지는 선택지입니다.
3. 남녀차별해소는 징병제 운영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남녀 공동병역으로 개선할수도 있고, 병역에 대한 복리 및 보훈혜택을 보장해주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되겠지요. 남녀평등만을 위해 모병제를 도입한다면 이미 군역을 마친 사람에 대해선 협소한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4. 이건 오히려 징병제에 대한 더욱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징병제를 달리보면 국민 전체에 대한 세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유층이든 빈곤층이든 2년을 지불해야하는데, 부유층의 2년은 빈곤층의 2년보다 금전적인 가치가 있을터이므로 소득재분배의 효과까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경제적인 효율성만 보면 돈이 많은 부유층은 돈을 내고, 시간이 많은 빈곤층은 몸으로 때우는 모병제가 보다 효율적입니다. 이렇게 되면 빈곤층만 병역을 치르게 되니, 모든 국민들이 스스로 국가를 지킨다는 민주국가의 이상과 배치됩니다. 더 나아가 모병제도 필요없고 용병(PMC 등)으로 때우자는 주장도 가능할터인데, 그렇게 해서 말아먹은 국가가 고대부터 한 둘이 아닙니다. 조선조의 방군수포제가 괜히 폐단이 되었을까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편 병력이 축소되면 작계 또한 축차적 방어작전보다는 종심타격 위주의 공격작전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부에서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낭비하는 전략은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즉 방어선 중심의 전략은 많은 병력이 요구되는 만큼, 모병제 하에선 국민을 방패로 세우고 화력에 의존하여 전과만 쌓는 식의 소극적인 전술을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자 쪽이 첨단군의 행태와 부합하겠지만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별로 탐탁한 대처는 아니겠지요.
5. 우리나라에서 특히 경계해야할 모병제의 문제점이라면, 군의 우경화의 심화가 있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모병제를 시행하면 세금을 지불하기 힘든 하층민들이 주로 군에 지원을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군인의 사회적 지위는 지금보다도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군의 우경화는 더욱 심해지며, 우경화된 군을 사병화하는 것도 훨씬 용이할 겁니다.
징병제 하의 현대 한국에서 성공한 쿠데타가 두번이나 됩니다. 군의 사병화가 이루어지기 쉬운 모병제 하에선 무신정권이 다시 도래하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이건 경제적 기회비용 이상으로 심각한 정치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겁니다. 국민 전체가 감시할 수 있고, 그럴 의무를 부과하는 징병제 쪽이 군부가 타락할 가능성이 그나마 적을 겁니다. 미국조차도 군에 대한 문민정부의 우위를 계속 확인하는 게 아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