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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6 16: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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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웠는가?
그러면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외우지 않았는가?
그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기억하라.
결과적으로 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외울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달달이 외워서 그저 학교 시험을 볼 목적으로 외우지 말라는 소리지.
사색을 즐기라고.
지난 밤 만났던 역학배운다는 그 사람을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올라 쉴틈없이 떠올렸지.
나의 말에 공감한다며 들어주었던 그는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언젠가 그 싸움이 결국 끊임없는 미로속에 마주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된다면,
그는 포기해버릴까? 어쩌면 수많은 선택의 길 앞에서 그는 현실을 택해버릴 지도 모르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수많은 외압으로부터 이겨낼 자신이 있을까?
그러한 인간관계가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게됐을 때, 그는 뿌리쳐낼 수 있을까?
영화 Mr. 노바디의 나오는 주인공처럼, 우리는 결국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혼란을 겪을 것.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내게 행복을 주는가였다.
등쌀에 밀려, 어거지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불행의 길을 스스로 걷진 않을까 가장 걱정이다.
10살이되면, 이제 다 컸다고 스스로 학교도 가고, 밥도 먹고, 숙제도 한다.
20살이되면, 어른이라고, 혼자 살고, 술, 담배도 접하고, 거의 방치 수준에 이른다.
30살이되면, 그런 투정부리는 것정도야 어린애도 아니면서라는 말로 무마시킨다.
그 때 쯤이면, 그러한 고민은 이미 수없이 엎질러진 상황에서 수습하기 바빠 제쳐두기 마련이다.
애초에 바로잡아 시행착오를 겪었다면, 그러한 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물론 그때도 늦지 않았는데, 그러한 선택이 결국 죽을 때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남아있겠지.
그런 삶은 끝에 다다라서 후회만을 남기고, 결국엔 자신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미련만을 남기지.
그때 왜 그러지 못했는가, 오직 그때에만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겠지.
시대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으니까.
결국엔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워 이도저도 아닌 마무리를 하게된다.
그 무게를 내려놓고 싶어 일부분을 포기해버린 대가다.
사실 그 삶의 무게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매 순간, 그리고 언제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짊어져야겠지만,
가끔 보면 그러한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아프다고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먹고 잠깐 아픈거 낳는거 말고,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결과를 나타내는지, 또 비슷한 것과 공통점을 가진 건 무엇인지.
이러한 사고를 거칠 수 있는 방법 말이야.
스스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