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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23: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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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도 나왔듯, 사랑이나 신뢰와 같은 감정부터, 돈이나 물건 따위의 물질적인 것까지,
중요한 건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겠군요.
시간의 비례한다라. 흥미롭네요. 되게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이 저러한 질문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면 참 웃긴 상황이 연출되겠습니다.
서로가 자신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이 더 고통스럽다고 우기는 꼴이 될 테니까요.
다르게 접근하면, 상대방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감정과 이기고 싶어하는 승부욕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오해까지도 받을 수 있겠네요.
결국엔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고통을 더 많이 짊어지게 되겠어요.
두 사람이 그러한 대화를 통해 저런 욕구가 발생할 텐데,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상대방은 고통을 건넨 샘이고,
정작 본인은 그걸 받은 샘이 되는 거니까요.
웃긴 상황이네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평소엔 몰랐는데. 허...
알고보면 매 순간순간이 욕심이네요.
결국 인간은 그 욕심을 어떻게 맞서고, 절제하느냐에 따라 삶의 고통이 줄어들겠지만,
한 번 피하기 시작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은 시간문제니까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현재 맞서지 못하는 순간까지의
그 시간을 통해 측정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것의 오류가 있습니다. 지금 난 살아있고, 그래서 질문하는 거고, 또 앞으로 남은 생이 조금이더라도 남아있기 떄문입니다.
그러고보니 '그것(도망)을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냐?'는 물음이 참 재밌는 물음이네요.
정작 맞서는 해답을 배제해버리고,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하니까요.
그 물음은 곧 나는 맞설 용기가 이만큼 없는데, 너는 얼마만큼 용기가 없는 거냐? 묻는 꼴이네요.
사람은 언젠가는 깨닫게 되는데 그렇다면 도망치기 시작한 지점부터,
깨달은 순간까지의 시간을 놓고보자면,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겠습니다.
바로 후폭풍말입니다. 그동안 도망쳐왔던 삶으로부터 받는 고통.
얼마만큼 도망쳤느냐, 시간에 비례하여 그 고통의 값은 어마어마하게 커지죠.
그렇다면 그 당시의 고통이 클까, 후에(깨달은 후) 들어오는 고통이 클까의 문제인데.
전자는 매 순간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날이 갈 수록 그 양이 커지겠지만,
후자는 매 순간 따라다니고 괴롭히지만, 날이 갈 수록 그 양이 줄어드는 차이도 있네요.
처음 그 양이 0이라면, 30까지 커졌다가, 후에 30에서 차감되어 0으로 돌아갈 순 없어도
10까진 줄일 수 있으니, 수치로만 놓고 보자면, 전자가 더 고통스럽겠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돌파한 순간부터 정말 갈 때 까지, 최악까지 간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렇네요.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