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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4 2014-11-26 22:25:49 2
나뭇꾼이 도끼를 연못에 빠트렸다. [새창]
2014/11/26 19:17:03
젠장 웃겼어 ㅋㅋ
1093 2014-11-26 18:33: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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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세상은...그리고 이 세상에 보이는 건 참 단순해.
보이는 것만 하면 되거든.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
아무리 보이는 것만, 겉만 포장하고 숨긴다 해도,
속이 드러날까 창피하기도 하고, 들킬까 조마조마하고,
때로는 그런 것이 드러나서 수치심도 느끼거든.

그럼 세상은 참 단순한 게 아니잖아?
그렇지. 세상은 단순하지 않아.
그저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 빗대어, 빌려서 말하는 것뿐이야.
사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지.

네가 내 말을 믿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야.
네가 너의 말을 믿어야지.
봐. 너는 그저 껍데기만 보고 고개를 끄덕였어.
너의 속살은 타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무시하고 있잖아.
세상은 보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지?
1092 2014-11-26 14:40:37 5
오유에서 이정희의원은 여신이라 불리우고 옹호를하는가요?? [새창]
2014/11/26 14:28:50
얕은 수작 부리는 거 다 티나는데 사람들이 참 몰라요.
안녕히가세요^^
1091 2014-11-26 14:07:4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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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21세기의 제3의 물결, 초고속 인터넷, 세계망 구축.
위성을 통한 실시간 데이터 송수신 서비스.
제3의 물결의 끝은 인간의 기계화.
모든 것은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며,
최종 기술 발전은 하드웨어에서 벗어난 무한한 세상인 '온라인'속 소프트웨어.
현재진행중.

매트릭스에서 가상 공간이 나왔듯,
현재도 수많은 작품들이 가상 공간을 예상하듯,
미래에는 온라인 속에서 오직 데이터로만 먹고, 수면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의 본체는 잠들어있고, 하드웨어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그저
걸어다니는 메인서버와 같은 역할만 할 뿐,
가상공간이 주를 이루는 시대가 오지는 않을까?

제3의 물결의 시작은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하드웨어의 발전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초 과학, 수학, 물리학 등 소프트웨어의 기본 지식 외에도 하드웨어와 균등하게 발전해왔고,
2020년 소프트웨어는 그 분야를 완전히 따라잡을 것.
나아가 2030년 하드웨어의 축소화, 간소화가 80%이상 이뤄지고,
30년 안으로 인간의 몸(하드웨어)의 연구를 마쳐, 소프트웨어를 인식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상상해보라.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하드웨어는 더욱 간편해지고, 간소화되고 있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누릴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장점들만 따와서 결국 우리는 움직이지 않아도 근육을 키우고,
영양분을 얻고, 숙면도 취할 수 있다는 상상이 현실로도 이뤄질 수 있다.

중요한 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점.
그점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꾸준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간 말이다.
앞으로 그것은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제쳐두길 원하고, 가능하다면 귀찮은 것들을 모조리 피해버리고 싶다.
200년 뒤에는 기억을 조작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집단이 나타나고,
현재 사이비 종교가 온라인 상에서 똑같이 이뤄질지도 모르지.

나아가 인간의 영역을 우주로 확장하고 (인공위성, 탐사선 등) 있는데
100년 뒤에 지구의 주변에는 수많은 장비들이 둥둥 떠다녀 하늘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지금 21세기 초중반을 살아온 세대가 '마지막 세대'가 될 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21세기 후반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22세기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22세기 이후엔 반드시 인류는 파멸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건 변함없는 진실.
1090 2014-11-26 11:26: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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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기억하라. 너는 누구인지.
떠올려라. 너는 누구였는지.
알아내라. 너는 누구가 될 것인지.
그리고 다시 물어라. 너는 누구냐?
1089 2014-11-26 00:33: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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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사람 답게 살고 싶다.
흔히들 쓰는 말이다.

괴체의 말들을 잊지 마라.
우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다만, 자신이 짐승이었음을 인정했을 때에만 한해서다.
짐승이었음을 모른다면 우리는 여전히 짐승에 불과하다.
1088 2014-11-26 00:29:5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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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목표만 있는 인간은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을 때 좌절을 맛본다.
그 다음에 분명 다른 목표를 세우기 앞서 목표의 크기를 줄인다.
그리고 또 다른 실패를 맛보았을 때, 목표를 세우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면, 목표는 매 순간 바뀔 수 있다.
그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이라는 방향을 잡았으면, 그 방향이 목표에도 이어진다.
그러나 방향이 없는 사람들에겐, 오직 목표의 결과만을 놓고 성취감만 바란다.
1087 2014-11-25 23:39:03 2
[새창]
개인주의냐, 전체주의냐....
1086 2014-11-25 22:14:21 2
이곳의 가장 큰 문제 [새창]
2014/11/25 21:30:15
오유가 대체적으로 '진보'적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그것을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시지요.
시사 게와 베오베 글만 보고 판단하시죠?
허울만 보지 마시라는 겁니다.
어느 곳을 가서도 조금 둘러보고 다 안다는 듯이 평가하지 마세요.
사람이라는 것은,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멍청해지는 순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좌편향 되어서 모두가 일제히 그쪽으로 따르는 것만 같죠?
그렇다면 꾸준하게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 즉, 소수는 무엇인가요?
그들은 내 의견과 맞지 않으니까 무작정 반대를 준다는 거겠죠?
그런데 사실 상황만 다를 뿐, 늘 소수가 존재해왔고, 그 소수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습니다.

당신은 좌편향이라는 전제로 소수는 우편향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러하게 접근하니까 사람들이 당신에게 욕을 하는 겁니다.
다르게 접근을 했어야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뭡니까?
우리가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써 불리게 된 이유가 뭡니까.
생각하고, 그 생각을 남들과 주고받으며 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맹목적으로 그러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시죠.
다른 사람들 또한 그렇고요.
님이 싸우는 부류는, 님과 비슷한 부류이기에 싸우는 겁니다.
님보다 나은 사람은 님에게 달려들지 않아요.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요.

정말 부질없는 짓이죠?
1085 2014-11-25 00:26:44 1
진지하게, 우리는 그것 밖에 답이 없으며, 용감하게 실행해야 합니다. [새창]
2014/11/24 23:49:08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 지혜는 인생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다.
1084 2014-11-25 00:19:3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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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2:17:37
I'm the king of the world!
1083 2014-11-24 23:17:11 0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은 있을까? [새창]
2014/11/24 18:41:01
본문에서도 나왔듯, 사랑이나 신뢰와 같은 감정부터, 돈이나 물건 따위의 물질적인 것까지,
중요한 건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겠군요.
시간의 비례한다라. 흥미롭네요. 되게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이 저러한 질문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면 참 웃긴 상황이 연출되겠습니다.
서로가 자신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이 더 고통스럽다고 우기는 꼴이 될 테니까요.

다르게 접근하면, 상대방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감정과 이기고 싶어하는 승부욕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오해까지도 받을 수 있겠네요.

결국엔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고통을 더 많이 짊어지게 되겠어요.
두 사람이 그러한 대화를 통해 저런 욕구가 발생할 텐데,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상대방은 고통을 건넨 샘이고,
정작 본인은 그걸 받은 샘이 되는 거니까요.
웃긴 상황이네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평소엔 몰랐는데. 허...

알고보면 매 순간순간이 욕심이네요.
결국 인간은 그 욕심을 어떻게 맞서고, 절제하느냐에 따라 삶의 고통이 줄어들겠지만,
한 번 피하기 시작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은 시간문제니까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현재 맞서지 못하는 순간까지의
그 시간을 통해 측정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것의 오류가 있습니다. 지금 난 살아있고, 그래서 질문하는 거고, 또 앞으로 남은 생이 조금이더라도 남아있기 떄문입니다.

그러고보니 '그것(도망)을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냐?'는 물음이 참 재밌는 물음이네요.
정작 맞서는 해답을 배제해버리고,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하니까요.
그 물음은 곧 나는 맞설 용기가 이만큼 없는데, 너는 얼마만큼 용기가 없는 거냐? 묻는 꼴이네요.

사람은 언젠가는 깨닫게 되는데 그렇다면 도망치기 시작한 지점부터,
깨달은 순간까지의 시간을 놓고보자면,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겠습니다.
바로 후폭풍말입니다. 그동안 도망쳐왔던 삶으로부터 받는 고통.
얼마만큼 도망쳤느냐, 시간에 비례하여 그 고통의 값은 어마어마하게 커지죠.

그렇다면 그 당시의 고통이 클까, 후에(깨달은 후) 들어오는 고통이 클까의 문제인데.
전자는 매 순간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날이 갈 수록 그 양이 커지겠지만,
후자는 매 순간 따라다니고 괴롭히지만, 날이 갈 수록 그 양이 줄어드는 차이도 있네요.

처음 그 양이 0이라면, 30까지 커졌다가, 후에 30에서 차감되어 0으로 돌아갈 순 없어도
10까진 줄일 수 있으니, 수치로만 놓고 보자면, 전자가 더 고통스럽겠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돌파한 순간부터 정말 갈 때 까지, 최악까지 간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렇네요. 그렇군..
1082 2014-11-24 22:29:46 0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새창]
2014/11/24 20:16:21
1 사람은 누구나 악합니다.
더럽고, 추잡스럽고, 때로는 비열하고 얄밉기까지 한 것이 사람이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선'을 추구한다고 하여도, 나 또한 그런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매순간 그러한 '악'한 것들이 나를 괴롭혀오죠.

삶은 한 번 뿐이니까. 이 말이 참 웃깁니다.
어떻게 보면 희망을 강조하고, 긍정적으로 보길 권유하죠.
다르게 보자면, 내가 뭘 하던 그게 악한 행위던 간에 내 자유라는 말도 됩니다.
왜냐? 삶은 한 번 뿐이니까.

삶에서 돈에 대한 욕심도, 사람에 대한 욕심도, 사사로운 그런 욕심들도, 절제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내가 절제한다 하여도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추잡스럽게 욕심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 세상은 살만한 걸까요.
정말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는 없는 걸까요.
죽으면 그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신이라는 작자가 우리를 이곳에 벌주려고 떨어뜨린 걸지도 몰라요.
죽어야만 그 고통이 끝나는 말 그대로 고통받는 시한부...

살고자 하는 욕구가 사람들을 망쳤고, 또 번영시켰습니다....
두려움에 맞서지 못해 피한 사람들은 죽어갔고,
추악한 이빨을 드러낸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무섭죠.
1081 2014-11-24 22:17:48 0
자유, 그 고통에 관하여 [새창]
2014/11/24 20:06:13
1 짐이 되는 것들 모두 피해버리고, 포기해버려서 안락함을 누릴 것이냐,
그것들에 하나하나 맞서며 고통스럽더라도 참나를 찾아볼 것이냐....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아 잠깐 쉬고싶어서,
놓아버리는 순간 겉잡을 수 없게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속에서 헤엄쳐 나오는 것 뿐.
그리고 다음 번엔 더 빨리 헤엄쳐 나올 수 있도록 요령을 배우고,
그러다보면 변한 나를 돌아볼 수 있겠죠.
1080 2014-11-22 00:09:40 0
법치의 죽음 [새창]
2014/11/21 12:55:23
형렬이 /
개인적으로 중요한 글을 쓸 때는 키보드를 안쓰고 모나미펜으로 필기를 하는데, 다 쓰면 무조건 태워버립니다. 습관이죠. 글지우는데 반감을 표하셨으니, 굳이 설명하자면 책의 속성(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려는 그 독립적인 속성) 자체를 매우 혐오하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크라튈로스와 쇼펜하우어한테 크게 배운 바가 있습니다.

이 댓글을 보고 무척이나 놀랐네요.
뭐 폄하하고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저런 습관을 가지신 분이 정말 있구나 싶어서요.

본문과 다른 이야기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하는 것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은 언제나 영원합니다. 과거의 지금도, 현재의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의 지금도 나일 뿐이죠.
다만 변하는 것은 외형적으로 늙어가는 것처럼, 내면의 내가 발전하는 것 뿐이라는 거죠.

당혹스럽겠지만 나름 상상력을 펼쳐 소설을 써내려가니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약간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추측이니까 마음 상하진 마세요. 본문과 딴소리해서 죄송한데,
일반 사람에게 느껴지지 않는 모습 덕분에 놀랐었네요....

일전에 쓰려던 글도 님과 비슷한 성격의 인물이었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가 '두려움'에 관한 것인데
그 두려움을 지배하는 진짜 원인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생각을 조금 들어보고 싶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에 대해.

본문과 딴소리해서 죄송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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