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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 14: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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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7년 사귄 여자와 헤어진 직후,
그 전부터 적잖이 들이대던(그래서 거리를 심하게 둔)
8살 연하 여후배가 딱 저 말을 했었어요.
사람은 사람으로 잊어야죠 오빠.
제가 대학을 좀 오래 다녀서 후배 스펙트럼이 좀 넓습니다.
그래도 저 애는 같이 다닌적 까지는 없었고,
졸업 후에 OB 초청모임? 같은 데 갔다가 알게 된 사이였어요.
그 말이 참 당돌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마웠어요.
오랜 연애가 끝장이 나니 그렇게 나를 잘 알고,
나도 모든 것을 내준 여자도 결국 이렇게 됐는데
앞으론 누가 날 사랑할까, 연애결혼은 물 건너갔구나
뭐 이런 자조 섞인 생각을 하고 지낼 때였거든요.
오랜 기간 한 여자만 만나다보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연애 경험도 많지 않았어요.
예쁜 여자애가 싱긋 웃으면서 저 말을 하는데
첫사랑 만나던 때의 풋풋함이 가슴 속 어딘가에서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나도 아재 다 됐나보다 싶었지만, 신선했어요.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는데,
와 그거 사람이 할 짓 아니더군요.
이 애한테 화가 나요.
내가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생각, 사상, 가치관
하나하나 새로 맞춰나가는 게 너무 귀찮은거에요.
사람을 만나는 데 귀찮다니, 다른 자조가 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런 내 짜증을 읽고, 최대한 나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그 애의 모습도 화가 났어요.
내가 아는 한 그런 건 사랑이 아니란 말이죠.
과에서 역대급 맺어짐으로 소문난 우리 사이는
그렇게 반 년도 못 되어 끝났습니다.
장기 연애한 사람은 회복기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정리할 게 무척 많습니다.
단순히 사람이랑 이별한 게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 끝나버린거라서요.
사람은 사람으로 잊어도, 삶의 한 방식은
결국 내가 재정립 해야 하는거잖아요. 누가 못 도와줘요.
그런 사람 만났다간 서로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ㅠ